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정성일, 인터뷰 거부선언했던 김기덕을 만나다 (5)
2002-02-14

“가학적이라고? 난 처음부터 종교적이었다”

사악함과 죄의식의 충돌

사실 마지막에 트럭을 타고 떠돌면서 매춘을 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사악한 장면이잖아요. 근데 그 순간에 감독 자신이 복음성가를 구태여 들려주고 있습니다. 김기덕 감독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광경은 사악한데 들려주는 노래에는 죄의식이 있어요. 사악함과 죄의식의 충돌 속에서 당신이 바라는 건 구원인지 희생인지가 궁금해지는 거예요. 또는 그 두 가지가 한 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저는 이것이 다음 영화에 대한 하나의 출발점이고, 김기덕 감독 영화 전체에 대한 키워드 중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악어>부터 종교영화라고 생각을 해요. 종교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고, 지금도 힘들 때면 사도신경을 많이 외워요. 제가 갖고 있는 기독교관은 모호해요. 오히려 도올 김용옥 선생이 말했던 것 중에 두 가지가 기억나는데, 일제시대 유관순 누나가 믿었던 기독교와 지금의 기독교는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신이 아니라 그 시대의 철학자, 선각자이고 운동가이지 않을까. 유관순하고 똑같을 수 있다, 하는 얘기였거든요. 요한복음에 나오는 얘기는 어쩌면, 신화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저도 했어요. 그런데 가끔 놀라는 것은 내가 그렇게 어떤 것들을 부정하면서도 때로 사도신경을 읊는다는 거예요. 사도신경에는 분명히 삼위일체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내 영화는 위악과 독선과 자해가 혼재되어서 누구든지 골라먹을 수 있는 것처럼 보여요. 내 안의 불분명한 정체성 중에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저는 모르는 거예요. 저는 그중에 무엇을 고르기 위해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래서 <악어>부터 종교영화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물론 종교영화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죠. 스스로 행해가는 의식적 자연과 물리적 자연을 저는 동일한 것으로 보거든요. 그건 다시 말하면 순수에 대한 회귀거든요. 지금은 너무나 많은 인공적 공법들이 그런 걸 해체했어요. 그래서 어느 시대보다 많이 고민을 하고, 많은 것을 동원하며 살아야 해요. 야생의 원시시대에는 의식보다는 어쩌면 시선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태초라면, 신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거죠. 명확하진 않지만, 이런 이야기가 김기덕이 아닐까, 하는 거예요. 복잡하죠, 들어보니까. 제가 물리적으로 가스펠송을 쓰니까 종교적이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악어>부터 저는 원래 종교적이었어요. <악어>에서 위악적인 인간한테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이었을 것 같아요.

순결이데올로기에는 관심 없다

조금만 앞으로 다시 돌아와서 이 영화의 유일한 섹스장면 얘기를 해보죠. 선화가 첫 손님을 받는 장면이죠. 제가 이 장면에 무언가 낯선 인상을 받은 이유가, 대부분의 한국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을 그릴 때 처녀인 선화가 순결을 잃는다는 것에 대해서 관심들을 가지고 있을 텐데, 김기덕 감독은 관심이 없어요. 정작 선화가 남자친구가 모텔에 가자고 하자 거절하는 장면을 분명히 보여주고서, 그리고 선화가 매춘을 하게 되자 처음은 애인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것까지 그려낸 이 감독이 순결을 잃었다는 것보다는 매춘을 시작했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 저는 한국영화 속에서 어떤 단절의 지점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영화는 분명 순결이데올로기에 관심이 없어요. 순결이 아니라 매춘에 방점을 둔 것이 아까 얘기했던 ‘계급의 추락’과 일맥상통하는 일관성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데요.

글쎄요, 일단은 저는 영화에서 노출에 의미를 두거나 관객이 성욕을 느끼는 게 불편해요. 저는, 심지어 그 장면 찍을 때 안 봤어요. 밀실에서 돌아서서 액션하고 컷만 불렀어요. 그냥 비명소리만 들었어요. 벽을 보고. 정말 볼 자신이 없었어요. 그 장면을 기어이 보고 저를 비판하는 평론가들은 분명 저보다 잔인한 사람들입니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선화가 손님 받고 나서 “잠깐 화장실 좀 갔다올게” 하고 화장실 가서 손가락으로 처녀막을 찢는 게 들어 있었어요. 그것은 하나의 배려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그게 너무 슬펐어요. 그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어요. 아주 얄팍한 동정이더라고요. 그래서 뺐죠. 그 다음에 넣은 게 그 남자친구였어요. 차선책이었죠. 남자친구하고 하는 걸로 돼 있었어요. 근데 또 뺏어요. 굉장히 비겁하게 느껴졌어요. 결국에 뭐냐면, 여자의 순결이라는 것에 나 역시도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예요. 여자들이 순결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김기덕이 너무 긴장하고 있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냥 쉽게 가기로 한 거예요. 슬쩍 넘어가 버리자. 그래서 그 장면이 짧지만 김기덕 감독이 고민하는 게 많이 들어 있거든요. 그 장면 찍을 때 선화의 비명소리를 듣고 내가 ‘컷’을 하는데, 조재현이 내 입을 막았어요. 조재현은 그 잔인한 장면을 끝까지 봤어요. 나한테 중요한 것은 여자 팬티 벗기는 것도 아니고 그 처절한 거부감과 자지러지는 듯한 절망감, 계급이 파괴되는 과정의 뉘앙스였어요. 근데 카메라맨과 실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물리적인 장면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소리만 듣고 컷 하려는데, 조재현이 입을 막더라고요. 그리고 자기가 1분 있다 컷을 했어요. 근데 결국은 소리로 컷할 때까지만 썼어요. 조재현은 자기가 컷한 데까지 썼다고 오해하고 있는데, 아니에요. 그 행위 자체가 어디까지 갔을지는 안 봤지만 다 알아요. 팬티 브래지어 다 벗겼을 것이고. 근데 저는 정말 힘들어요, 슬프고. 그것이 은유되는 수많은 일들이 이 세상 곳곳에 있었을 것 아니에요. 장소가 그런 곳이든 아니든 간에. 여성이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지배받는 그런 순간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게 여기서 똑같이 재현되는 것이죠. 그게 영화더라도. 그래서 두려웠던 장면이었고, 스치듯이 쉽게 가고 싶었어요. 그래야만 내가 나중에 그 여자를 망가뜨리는 데 유리할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연기자가 굉장히 잘해줘서 짧게 끝났는데, 안 그랬으면 굉장히 지저분하게 갔을 거예요. 제가 편집할 때 옆에 여자 스크립터가 있었는데, “이 장면 슬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얘가 파랗게 질려 있어요. 그 장면 볼 때만. 많은 여자들이 사실 그 장면에서 치욕을 느낄 거예요. 순결이란 그 자체도 무시를 해버리니까. 뻘건 피 한 방울 이불에 남겨놓아 좋을 건 없지만, 많은 여성들이 아직까지도 결혼을 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너무나 어이없이 지나쳐 가니까 그랬겠죠. 영화 만드는 사람이 받는 가장 큰 자괴감이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김기덕이 즐기는 가학으로 보기도 할지 모르지만.

정신적이기만 한 것은 없다

반면에 한기라는 인물을 보면 굉장히 금욕주의자 같은 느낌까지 들어요. 한기는 누구하고도 섹스하지 않거든요.

아니요, 해요.

하긴 하는데, 하지 않는 것처럼 넘어가잖아요.

맞아요.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죠.

그냥 실패해버리고 마는 것으로 나오죠.

저쪽 여자에 대한 복수랄까, 간접적인 그런….

누구나 다 하는 질문입니다, 한기가 심각한 언어장애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다른 인터뷰에 보니까 한기가 온갖 삶을 살면서 목에 칼자국도 있으니 후두에 상처를 입어서 그렇다, 만으로는 제가 보기에 충분하지 않은 거 같아요.

그건 영화라는 매체가 빌려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말많은 인간으로 했을 때, 그 말들이 얼마나 진실해 보이겠어요. 수많은 수작에 불과했을 거예요. 그걸 감독은 철저하게 배제해야 했을 거예요. 처음에는 대사가 다 있었어요. 대사를 다 넣은 이유는, 배우한테 그 말없음이 그 대사들의 은유라는 걸 말하기 위함이었어요. <섬>에서도 원래 대사가 다 있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 대사 몇번 읽은 다음에 제가 다 빼버렸어요. 다이얼로그에 집착을 하게 되면, 그 감정이 못 쓰게 돼버려요. 깊은 상처가 있기 때문에 가볍게 말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걸 저는 원했어요. 일부 관객에게 그건 주효했다고 봐요.

한기가 후두암에 걸린 것처럼, 김기덕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것은 신체적 훼손에 대한 관심이거든요. 이를테면 <수취인불명>에서도 기어이 철사를 먹고 다시 배변을 해서 그것을 꺼낸다거나, <섬>에서는 낚싯바늘로 끌어당기고, <악어>에서도 그러합니다. 거꾸로 여기서 신체적 훼손을 통해 자유를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건, 아까 말한 사디즘-마조히즘하고 관련이 있어요. 우리가 자꾸 섹스쪽에서만 얘기를 하는데, 총체적인 육체 속에서 보면 자학과 가학이거든요. 해체시키려고 하는. 저는 영화 속에서 이야기를 하는 중요한 시각이라고 생각해요. 남을 혹은 자신을 때린다는 것하고 다를 게 없죠. 그 골이 깊을 뿐이지. 정신이 앞지르지 못할 때 나오는 것이 육체적인 자학과 가학이죠. 선화가 보는 데서 한기가 다치는 게 두어번 돼요. 한기가 다칠 때 꼭 선화 컷을 집어넣었거든요. 난 이런 놈이야, 난 이렇게 살아왔어, 이런 걸 대변하지 못하는 이를 여자한테 ‘말해’주는 장치가 아닐까. 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절감되는 것을 설득시키는 것이 아닐까. 이 사회에는 정신적 충격에 비해서 육체적 충격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어요. 난 그렇게 보지 않아요. 정신적이기만 한 것은 없다는 거예요. 항상 물리적인 것과 병행을 하죠. 뇌만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 돼요. 저는 관객이 어떤 육체적인 훼손을 보면서 서서히 영화 속 인물을 이해해 가기를 바라는 거예요. 조재현이 한 말인데, 이 영화 찍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되뇌었던 말이 “이놈은 나쁜 놈일지도 모른다”라는 거였어요. 나쁜 놈이 아니라, 일지도 모르는. 그리고 내가 그에게 준 연기에 대한 힌트는, “넌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는 눈빛을 해라. 내가 뭘 잘못했지, 하는 표정을 해라. 잔인한 표정을 하면서”라고 했어요. 그게 바로 그가 감옥에 있을 때 담배 피우면서 짓는 표정이에요. 자꾸 눈알 치켜뜨는 것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랬고 본인도 동의했죠.

<나쁜 남자>는 모두 몇회 촬영하셨어요?

21회 촬영했고요. 세트에서 25일 정도 찍었고, 구룡포 로케 신을 한 5일 찍고, 모두 한달 정도 걸렸어요.

NG가 가장 많이 난 장면은 어느 것이었나요?

처음 키스하는 장면. 첫날 찍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실패였어요. 왜냐하면 조재현이가, 악어처럼 팍 하지 않았어요. 여배우를 봐줬어요. 그게 너무 보였어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장면이에요. 거기서 저는 ‘이 여자를 먹어버릴 것 같다’라는 느낌을 주기 원했어요. 입술을 온통 덮어 가지고 빨아들여서 여자의 얼굴 근육이 밀려들어오는 그런 것을 저는 원했는데, 그냥 입만 부비더라구요. 몇번 얘기를 했는데, 처음 찍는 그 여배우를 보호하려는 것 같더라고요. 왜 그렇게 안 했는지 난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웃음) 어차피 여배우는 준비가 돼 있었는데.

일곱편의 영화 중에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가장 당신에게 다가간 영화는 어느 건가요?

<수취인불명>이죠. 나 자신이 가장 잘 들어 있는 영화죠. 거기 분명히 김기덕이라는 사람이 들어 있거든요, 지흠이라는 역할로. 총 만들어 자기 다치는 나약한 소년. (그는 정말 흉하게 허연 살이 되어 남은 흉터가 선명한 왼손 엄지손가락을 내보였다) 총 만들어서 다친 자리가 이렇게 아직도 있어요. 이게 오래된 상처인데 이렇게 남아 있는 걸 보면 알겠지만, 그 당시는 엄청난 상처였어요. 그리고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은 <실제상황>이에요. 사람들이 인정을 안 하는 걸 억지로 인정을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김기덕의 예고편격인 작품이에요. 제가 앞으로 영화로 만들려는 모든 소재가 그 안에 다 들어 있거든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이벤트에 너무 함몰돼 있는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어요. 언젠가는 다시 끄집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죠.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거의 다 드렸고, 하시고 싶은 말씀이 더 있나요? 오늘은 일종의 오프닝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김기덕 감독을 사람들한테 이해시키는 쪽에 방점을 두었거든요. 악랄하지 못했죠? (웃음)

저는 정 선생님이 악어 같을까봐 준비한 게 있는데…. (거기서 <씨네21> 337호에 실린 나의 글을 펼쳤는데, 그곳엔 글에 대한 ‘평’들이 가득했다. 정말 그는 단단히 준비하고 나왔다) 각오를 했죠, 오늘은. 그런데 참 ‘착한’ 인터뷰였어요. (웃음)

우리는 저녁을 맛있게 먹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충무로역에서 서로 헤어졌다. 우리는 서로 반대방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작별인사를 하자, 그는 구태여 내가 가는 모습을 보고 가겠다고 말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고작 한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나는 경험적으로 안다. 헤어질 때 등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상처받아온 자기의 등에 걸린 슬픔을 보여주기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헤어지고 가다가 불현듯 가방 안에 김기덕 감독이 내게 오늘 선물한 면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면티는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 (적어도 나에게는) 무시무시한 해병대 면티였다. 그는 내게 선물하면서 수줍은 얼굴로 멋쩍게 “이 면티에 그려진 스쿠버 해병대, 군대 있을 때 제가 그린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걸 받으면서 그가 언제나 세상에 대해서 그렇게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갖는 정직함 때문에 상처받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기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건 인터뷰하는 내내 그러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김기덕(의 영화들)을 싫어할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틀렸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가 갑자기 멍한 표정을 짓다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나 없이도 세상의 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라고 말할 때 그건 그의 진심이다. 그 진심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영화를 끌어안고 함께 세상의 모순을 물어보아야 한다. 바꾸는 것은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며, 세상을 바꾸기 힘들다고 그걸 껴안은 영화를 매장시키려는 것은 결국 실재의 귀환을 불러올 것이다. 김기덕과의 대화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글 정성일 대담정리 최수임 [email protected] 사진 정진환 [email protected]▶ 정성일, 인터뷰 거부선언했던 김기덕을 만나다 (1)

▶ 정성일, 인터뷰 거부선언했던 김기덕을 만나다 (2)

▶ 정성일, 인터뷰 거부선언했던 김기덕을 만나다 (3)

▶ 정성일, 인터뷰 거부선언했던 김기덕을 만나다 (4)

▶ 정성일, 인터뷰 거부선언했던 김기덕을 만나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