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넌이 정신과 의사에게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다비드 포앙키노스의 <레논>은 그런 상상을 통해 쓰인 장편소설이다. 존 레넌이 서른다섯살에 은퇴하기로 결심한 뒤인 1975년 9월21일과 한 정신 이상자에게 살해당하기 전날인 1980년 12월7일 사이에 그가 돌아본 자신의 삶은 어떤 광경이었을까. 음악, 엄마, 섹스, 마약, 농담, 언론, 오해, 침묵, 오노 요코…. 다비드 포앙키노스는 존 레넌이 노래하는 목소리와 물건을 집어던지는 소리가 동시에 책장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은 소설을 완성했다. <레논>의 한국어판 발간과 서울국제도서전에 맞춰 내한한 그를 만났다.
-한국에 출간된 당신의 전작들인 <시작은 키스> <내 아내의 에로틱한 잠재력>과 비교해보니 <레논>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전작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낭만적이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들이라면, 이번 책은 실존 인물인 존 레넌에 대한 이야기이고, 묵직하게 읽힌다. =언제나 존 레넌에 대한 책을 쓰고 싶었다. <시작은 키스>를 비롯해 여러 책들을 쓰고 나니 이제 쓸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해 쓴 책이 이미 많이 있지만 나는 그와 오노 요코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의 인생 자체가 소설 같았다.
-<시작은 키스>는 당신과 형이 직접 영화화했다. 처음 쓰면서부터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나. =영화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건 아니었고, 형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영화화하면 좋겠다고 했다. 시나리오는 내가 직접 썼는데, 그 작업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이전에도 시나리오 작업을 해본 적은 있지만 이번이 나 스스로 만족한 첫 시나리오였다. 알바니아에 갔을 때, 통역자가 <시작은 키스>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한 적이 있었다. <시작은 키스>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 죽지 않고 시작하는 이야기라고. 살아남은 줄리엣의 이야기라고 말이다. 그 이야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형과 함께 영화를 연출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 =스테판이 원래 캐스팅 감독으로 굉장히 유명하다. 형이 영화화를 제안했다. (스테판 포앙키노스는 영화감독, 캐스팅 디렉터, 시나리오작가로 활동 중이며 장 뤽 고다르의 <사랑의 찬가>,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캐스팅 디렉터로 활약한 것을 비롯해 프랑수아 오종, 피터 그리너웨이 등 많은 감독들과 협업했다.-편집자)
-역할 분담이 있었나. =우리는 여러 면에서 보완적이었다. 시나리오는 내가 썼다. 촬영을 시작하면서는 형이 배우들을 담당하고 나는 기술팀을 맡았다. 나는 이야기와 미장센에 관심이 많았다.
-소설쓰기와 영화 연출이 각각 다른 면에서 흥미로울 것 같다. 작업을 할 때 다른 점이라거나 매력이 있다면.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고독을 좋아한다. 단어를 갖고 노는 게 즐겁다. 영화는 여럿이 함께하는 작업일 뿐 아니라, 소설을 쓸 때 내 상상에서만 존재하던 캐릭터가 영화에서는 오드리 토투라는 구체적인 한 사람의 여배우가 된다는 게 재밌다.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한 것도 좋았다. <시작은 키스>의 노래를 부른 뮤지션 에밀 시몽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뮤지션이다.
-당신의 책들을 읽어보면 관능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생명력인 동시에 유머라는 느낌. 때로는 사랑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같고. =그렇다. 관능이 감성적이라면 사랑은 보다 이성에 가까운 것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우리를 분석하게 만들지 않나. 관능은 머리로 판단하기보다는 느낌에 기대는 것이고.
-<레논>은 음악에서 시작한 이야기다. 책을 쓰면서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었을 텐데. 새 책을 쓰기 시작할 때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어떤 것인가. =12권의 책을 쓰면서 매번 달랐다. 대개의 경우 하나의 이미지에서 시작한다. <시작은 키스>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미지에서 시작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키스를 퍼붓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장면에 살을 붙여가며 썼다.
-<레논>은. =존 레넌과 오노 요코와의 사랑에 늘 관심이 있었다. 센트럴파크에서 둘이 걸어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시작했다. 인터뷰에서 인용한 구절을 책 처음에 인용한 것은 그래서다. 그의 노래 가사나 인터뷰를 보면, 그는 멋진 시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첫장에는 존 레넌이 1970년 제임스 S. 웨너와 가진 인터뷰가 인용되어 있다. 질문은 이랬다. “당신에게 <When I’m Sixty-Four>가 어떨지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레넌은 답했다. “아뇨, 없어요. 아일랜드 해변이나 뭐 그 비슷한 곳에 정착해 우리를 사로잡았던 광기의 내밀한 사진첩을 뒤적이는 참한 노부부가 되었으면 좋겠군요.”-편집자)
-오해를 많이 받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변호해주고 싶다는 느낌도 있었나. =존 레넌은 워낙 많은 말 속에 살아야 했다. 나는 그를 변호하고 싶었다기보다 가장 진실에 가까운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그의 내면에 있었던 아름다운 것, 어두운 것을 다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폭력적인 면을 포함해서.
-<레논>이 영화화된다면 존 레넌 역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배우가 있나. =그에 관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내 책으로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존 레넌의 청년기를 그린 영화 <존 레논 비긴즈: 노웨어 보이>를 봤는데, 그 배우(애런 존슨)도 굉장히 좋더라. 음… 비틀스 멤버들의 아들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왜 존 레넌을 정신과 의사에게 보낸다는 설정을 했나. =존 레넌에 대한 책이 너무 많아서 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서 존 레넌의 독백을 통해 스스로 말하게 하자고 생각했다. 존 레넌은 1975년 이후 칩거에 들어갔는데, 그 기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의 유머와 말투를 살리고 싶어서 그가 직접 말하게 했다.
-존 레넌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당신이 이 책을 썼다면 그에게 가장 묻고 싶은 것은. =나는 늘 그가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70년대에 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파시즘과도 싸웠다. 그가 지금 살아 있다면 노벨평화상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한국에 와서 남북문제를 해결했을지도 모르지. (웃음)
-가장 좋아하는 곡은. =존 레넌 곡으로는 <Mind Games>, 비틀스 곡 중에는 <I Am the Walus>. 하지만 사실 한두곡만 고르기는 어렵다. 책을 쓰는 몇 개월간 존 레넌의 노래만 들었다. 그는 자전적으로 가사를 썼다. 노래를 들으면 그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다. <Ballad of John and Yoko>의 가사만 해도 그런 식이다. “네덜란드나 프랑스로 가려고 사우스햄튼 부두에 서 있었어”라든가 “파리에서 암스테르담 힐튼 호텔까지 차를 몰고 갔어”라든가.
-당신이 책에 인용한 존 레넌의 인터뷰 질문을 당신에게 던지고 싶다. “당신의 ‘When I’m 64’가 어떨지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한국 여자랑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고 있지도 모른다. (웃음) 나쁘지 않은 삶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