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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우리가 사는 시대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펴낸 소설가 공선옥

“봄밤이었다. 라일락꽃이 한창인 봄밤이었다. 4월의 밤이었다.” 코끝에서 향이 느껴지려는 찰나,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는 이런 문장을 툭 이어붙인다. “그가 군인들에게 이유 없이 당했다는 5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공선옥의 장편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는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하지만 80년의 그날이 아닌, 그 전후의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선연히 그려낸다. 책 속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한국 현대사를 비추는 거울 앞에 서 있음을 문득 깨닫게 만드는 책을 쓴 소설가 공선옥을 만났다.

-얼마 전 개봉한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는 제주도 사람이 말하는 4.3 사건이고,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역시 그 땅의 사람이 말하는 5.18 민주화운동이다. 왜 지금 이 시점에 다시 그 사건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폭력이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 일종의 비상경보가 아닐까 생각했다. =폭력의 양상이 예전에는 직접적이었다면 지금은 더 교묘하고 세련되어졌다. 개인이 감당해야 할 폭력이 굉장히 고약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 폭력만큼 심각한 게 자본에 의한 폭력이지 않나. 폭력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다. 이 소설을 쓴 이유라면… 사람들이 가까운 과거에 대해 폭력적일 정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고는 자기들이 책임지지 않아도 될 조선시대 이야기, 먼 과거 이야기에 빠진다. 서대문형무소에 가보면 일제시대에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을 고문하던 얘기에서 끝난다. 정부 수립 이후 간첩으로 몰린 사람들이 얼마나 그 안에서 죽어갔는가는 싹 지워버렸다. 한마디로 해원이 안된 거다. 5.18도 그렇고 4.3도 그렇고.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를 보면 피해자가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 5.18로 인해 고초를 겪은 남자와 사는 묘자, 그리고 진압을 위해 투입되었던 군인과 사는 용순을 보면 5.18과 같은 역사적 사건에 의한 피해자라는 규정이 그 주변 사람들까지 포함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그게 충분히 말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되돌아오는 것이다. =사회적 폭력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양상으로든 우리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내가 광주를 말하면, 광주 사람들은 너무 아프니까 말을 못하고 서울 같은 데서는 사람들이 다 불편해한다. 웬 광주? 아직도 광주? 이런 분위기. 무엇보다 작가를 포함한 예술가들이 너무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몇년 전 독일에서 잠깐 살았는데, 거긴 우리하고 너무 다른 거다. 자기들의 역사, 과오에 대해 끊임없이 다각도로 얘기한다. 그러니 나치 시대의 이야기, 분단 시대의 이야기가 정교해지고 세련되어질 수밖에 없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는 5.18의 장면을 직접 그리지 않고 그 시간 전후를 그린다. 그렇게 한 이유는. =5.18로부터 5년 전과 1년 이후의 이야기다. 마지막은 현재고. 폭력이라는 게 단순히 5.18 그 한순간만 존재한 게 아니니까. 또한, 문학이 실제를 그렇게 그대로 그려줄 필요는 없잖나. 내 글을 통해 사람들이 ‘내가 지금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디쯤에 와 있나’를 가늠해보면 좋겠다. 가난함과 소외, 폭력과 슬픔을 정작 그 안에 있는 사람들조차 외면하고 대상화해 바라보는 것이 당연시되는 게 문제다. 그런 무관심이라는 폭력성이 굉장히 반문명적이고 미개한 태도다. 그리고 그걸 싹 윤색해서, ‘먹고살 만하면 된 거잖아?’ 하는 식으로 몰아가고.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면 이 작품을 위해 취재도 했나. =광주에서는 취재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널려 있다. 그런데 그걸 다 적기가 너무 힘들더라. 그래서 환상, 신화적인 것을 끌어들였다. 내가 시골에 살 때만 해도, 현실 옆에 신화적 삶이 반드시 있었다. 진짜 온전한 삶은 현실과 신화가 공존하는 삶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너무나 현실이 깊이 들어와서 신화가 없어진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소설 속 광주와 시골을 보면, 도시에서 받는 거대한 고통에 대한 안식처로서의 역할로 시골이 묘사되지는 않는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문제지 농촌이냐 도시냐의 문제는 아니다. 어디에나 약자는 있다. 구조 속에서 상대적 약자와 상대적 강자가 있을 뿐이다. 거칠고 단순하게 이분법해버리면 안된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이 폭력의 원천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도시가 그렇고, 누군가에겐 둘 다 그렇다. 단순화할 수 없는 문제다.

-이 책을 보면 운다는 말이 노래한다는 말과 동의어처럼 쓰이고, 침묵한다는 말한다와 동의어처럼 느껴진다. =살아야 하니까 노래를 하고 버티는 거지. 사람들이 이 소설, 불편해할 거다. 밥맛없어 할 거다. 그렇다고 해서 안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2010년 5.18 기념식 때 <방아타령>이 나온 거 기억하나. 5.18을 희화화한 거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이 삭제됐다가 번복됐다. 박근혜 정부의 보훈처는 5.18 공식추모곡 제작을 위해 4800만원이라는 예산을 받았다. 30년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4800만원짜리 ‘신곡’이 불릴지도 모르는 거다. 정말 무서운 건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 시대에 사는지 사람들이 잊어버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꼭 제대로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그거 많아. 너무 많아. 난 인상 쓰는 소설을 쓸 수밖에 없다. (웃음) 얼마 전에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요”라고 누가 나한테 묻더라. 그런데 내가 그 대답을 못하겠더라. 그래서 다시 물었어.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요, 하고. 그런데 그 사람이 침묵하더니 눈이 빨개지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라. 그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그 질문을 너무 안 하고 살았다고. 끊임없이 나한테 질문해야 한다. 남한테 대답만 구하지 말고.

-그게 멘토 붐과 연결되는 것 아닐까. 밖에서 대답을 구하려고 하니. =그놈의 멘토 전성시대. 넘쳐나는 강좌들. 왜 이렇게 위로가 넘쳐나나? 다들 자기 연민은 해도 자기 질문은 하지 않는다. 말은 넘쳐나지만 아무 말도 못했는지도 모른다. 진짜 말에 굶주려 있는지도 모른다. 말이 넘쳐나는데 아무것도 없을 때보다 더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지. 넘쳐나는데, 사실 혼자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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