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다. 정다정 작가는 차분하고 생각이 깊었다. 네이버 웹툰 <역전! 야매요리> 속 빵 터지는 ‘드립’은 작품 속에만 존재했다. 요리를 할 때 소금을 ‘소금소금’ 치고 당근을 ‘탕!근, 탕!근’ 써는 그녀니까 인터뷰를 할 때도 농담을 ‘농담농담’해서 웃음이 ‘웃음웃음’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런 기대는 이내 사라졌다. 개량 따위는 필요없다며 ‘부친수저’로 간을 하고, 정통 프랑스 요리도 가정용 밥솥으로 ‘취사’ 두번 눌러서 만들어내는 ‘야메요리사’ 정다정 작가와의 만남은 작품 속 ‘야메요리’와는 다른 정갈하고 영양이 가득한 가정식 밥상 같았다.
-<역전! 야매요리>를 연재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고등학생 때 유학을 띄엄띄엄 갔다오는 바람에 졸업이 2년 정도 늦어졌다. 2011년, 21살에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대입을 준비하던 차에 공부를 안 하고 요리 블로그를 열었다. 그게 인터넷에서 반응이 좋았다. 네이버 웹툰 담당자한테 사진으로만 되어 있던 걸 웹툰으로 발전시키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건가. 만화적인 그림을 잘 그린다. =옛날 블로그를 보면 알겠지만 요리 과정이 사진으로만 나오기 때문에 이걸 만화로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림 그리는 건 예전부터 좋아했다. <역전! 야매요리> 자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것들의 콜라주 같은 느낌이랄까. 사진 찍고 글 쓰고 요리하고 그림 그리고 스토리 쓰고 이런 것들.
-유학 생활이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쪽 친구들은 학교가 빨리 끝나니까 자기 생활을 할 시간이 많아서 사고방식이 여유롭고 자유롭다. 친구 생일이면 집에서 큰 빵을 구워와서 나눠 먹는다.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그때부터 요리에 슬슬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베이킹쪽으로.
-<역전! 야매요리>에 인터넷 짤방 활용이 많아서 ‘잉여생활을 좀 했나’ 싶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온 다음에 잉여생활을 했다. 사실 지금도 일 없으면 그냥 잉여생활한다. 게임도 하고. 약속이 없을 때는 그냥 자고 그런다. 피곤해서.
-이런 상상도 해봤다. 어떤 개그 드립을 떠올리고는 혼자서 키득키득거리는 장면 말이다. 작업할 때는 어떤가. =만화는 솔직히 단순노동의 반복이다. 콘티 작업 때 대사를 다 정해놓는다. 그걸 짤 때 ‘이거 빵 터지겠다’ 하면서 혼자 피식하는 정도다. <역전! 야매요리>는 그림 연출이 중요한 만화가 아니라서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시나리오처럼 ‘야매토끼 무슨 대사를 한다’ 이런 작업을 한 다음에 바로 디지털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데 이 작업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그러면 이게 재미있는지 없는지 감이 안 온다. 작품이 올라가고 리플을 보고 ‘아~ 재밌었구나’ 알게 된다.
-그럼 스토리를 다 짜놓고 요리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건가. =그럴 때도 있지만 요리를 먼저 해놔야 마음이 편하다. <역전! 야매요리>는 요리 사진도 들어가니까 사진이 나오지 않으면 스토리가 안 나오더라. 심리적으로 불안해서 그런가.
-스토리가 좋은 것 같다. <별주부전> 같은 고전을 변주하는 능력도 있고 ‘경제학 덕후들의 대화.txt’ 같은 인문학적 요소도 보인다. =아니다. 만화 커뮤니티에 스토리가 유치하다고 나를 ‘까는’ 글도 있다. 진짜 스토리를 잘 쓴다는 생각은 안 한다. 이번에 한 거북선(‘67화 충무공에게 생신빵을’) 같은 경우, 기획이 좀 괜찮네 싶은 정도다. 인문학쪽에 관심이 많기는 하다. 고등학생 때 10시까지 ‘야자’시키면 친구들이 수학문제 풀고 있을 때 문학 교과서나 자습서를 다 읽어봤다. 그걸 패러디해서 웃긴 버전으로 다시 쓴다든지 그런 식의 쓸데없는 걸 많이 했다. 쓸데없는 잉여 창작활동,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은 것.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약간 자양분이 됐던 것 같다.
-요리 실력은 좀 늘었겠다. =늘었다. 소질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요리를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느는 스타일이다. 감으로 소금을 넣었는데 염도가 딱 알맞다든지…. 그리고 내가 하는 요리는 웬만하면 다 맛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한 요리는 대부분 맛있어한다. 내 입맛에 맞게 해서 그런 건지 묘하게 성취감이 느껴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걸 남에게 먹였을 때가 문제다.
-요리 소재는 늘 고민이겠다. =연재를 급하게 들어갔다. 만화에 대한 기반 없이 쉬지 않고 1년 정도 하니까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휴재 공지를 내고 3월 한달 정도 쉬었다. 그 기간 동안 천천히 생각하고 여유도 되찾고 내년 2월까지의 소재를 다 짜놨다. 이제는 소재에 대한 걱정은 없는데 그래도 매주 요리랑 만화랑 어우러지게 신선하고 재밌게 꾸려나가야 하니까 그것에 대한 의무감이랄까 그런 건 있다.
-그래도 여유가 있겠다. =지금은 여유가 좀 있다. 그런데 만화 연재가 아니라도 광고 만화 일이 많아서….
-연재 말고 광고 일도 많이 하는 줄은 몰랐다. 어떤 일들을 했나. =빙그레 바나나우유, 파리바게트, 청정원…. 웬만한 요식업체는 한번씩 다 거쳐간 것 같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건 농심 안성탕면이다. 넥슨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등 게임업체와도 일했고 사이버대학 광고 만화도 그린 적이 있다.
-꽤 바쁘게 지내는 것 같다. (인터뷰 당일에도 광고주와의 미팅을 앞두고 있었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나. =지금은 만족한다. 대학에 안 갔지만 대학에 간 친구들이 오히려 부러워한다. 아마도 약간의 환상도 섞여 있을 거다. 친구들과 달리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지낸다는. 사실 나는 견뎌내야 할 것이 많고 힘든 부분이 많다. 만화에서는 늘 유쾌하고 재밌고 이런 이미지라서 고민이 없을 것 같지만.
-대체로 개그만화 작가들이 실제로는 엄청 진지하고 그렇더라. =맞다. 보통 자기가 하는 만화랑 반대인 경우가 많다. 나도 생각 많고 차분하고 예민한 편이다. 오히려 슬픈 로맨스 만화 그리는 분들을 실제로 만나면 빵 터진다.
-<역전! 야매요리> 이후의 계획이 있나. =<역전! 야매요리>는 장기적으로 계속할 것 같고 병행작 비슷한 개념으로 6월쯤에 하나 더 할 것 같다. 다른 내용과 다른 컨셉의 사진 없는 일상툰 같은 느낌의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