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영하의 날씨
[영하의 날씨] ‘사전 표절’의 진실
김영하(소설가) 일러스트레이션 김현영(일러스트레이션) 2013-05-06

전주국제영화제 ‘숏! 숏! 숏! 2013’의 원작 단편들

여기는 전주의 한 호텔방. 도시는 지금 영화제가 한창이다. 영화제에는 감독과 배우와 제작자와 그 밖의 영화 관계자들이 모여든다. 나와 같은 문인은 관객으로나 올까, 공식적으로는 올 일이 거의 없는 자리다. 그런데 올해는 전주와 나의 인연이 깊다.

올해 새로 프로그래머를 맡은 이상용씨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아마 신년 초였을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숏! 숏! 숏! 2013’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에 참가할 의사가 있는가, 정확히 말하자면 원작으로 단편소설들을 제공할 의사가 있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상업 장편영화도 아니었던 터라 별 토를 달지 않고 동의를 했다. 그러자 얼마 뒤에 세명의 감독을 선정했으며 그 감독들이 각각 내 소설 세편을 원작으로 골랐다고 했다. 어떤 감독들이냐고 묻자 ‘형제 감독’, ‘8월의 일요일’, ‘재능’, ‘촉망받는’ 등의 단어들이 등장했지만 막판에 등장한 ‘엄마는 창녀다’, ‘아버지는 개다’라는 문장에 모두 묻혀버렸다.

“잠깐만. 전작 제목이 <엄마는 창녀다>라고요?”

이상용 프로그래머가 불길한 조짐을 감지하고 열심히 이상우 감독을 옹호했다. 나는 단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엄마는 창녀다> 같은 제목을 감당하려면 얼마나 대단한 영화여야 할까.

“<엄마는 창녀다> 감독이 선택한 작품이 뭐라고요?” “<비상구>요.”

뭔가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상구>를 처음 써서 발표할 때의 기분을 오랜만에 연상시켰다.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장난에 뛰어들 때의 기분이랄까.

내 기억이 맞다면 <비상구>는 1997년 여름에 쓴 소설이다. 청탁을 받고 쓴 것도 아니었다. 늘 술 마시러 다니던 신촌의 거리에는 ‘삐끼’들이 많았다. 그들을 보고 돌아온 어느 날 밤, 가볍게 써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달렸다. 하지만 다음날 읽어보고는 ‘이건 도저히 발표할 수 없는 글이다’ 생각했다. 나의 첫 독자인 아내에게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이 소설은 프린트되어 내 서랍 속으로 들어가 거의 1년을 거기서 잠을 잤다.

왜 발표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우선 그 소설은 그 무렵의 한국문학의 분위기와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시작하자마자 대뜸 여자친구의 음모를 면도하자고 덤비는 어린 삐끼, 내일이라고는 없는 삶에도 마냥 태평한 그의 여자친구, 밤에는 거리에서 좋은 말로 손님을 꾀다가 수틀리면 퍽치기로 지갑을 터는 주인공의 친구. 이런 인물들부터가 먹물들이 주류이던 당시 소설들과는 달랐다. ‘드레스코드’가 달랐다고 할까. 아무리 봐도 근엄한 문예지에 실을 만한 소설이 아닌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지만 그때는 좌절한 지식인들이나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의 여성들(이들 역시 대부분 대학물을 먹었다는 의미에서 남자 주인공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이 소설 주인공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지식인이 아니면 (‘각성된’) 노동자이기라도 해야 하는데 <비상구>의 주인공들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심지어 ‘조직된’ 건달조차 되지 못하는 존재였다.

이 소설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한 계절에 세편의 단편을 ‘납품’해야 했던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해서야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마감 직전까지 겨우 두편의 단편을 끝낸 나는 서랍 속에서 잠자던 ‘실패작’들을 뒤질 수밖에 없었는데 상황의 절박함 때문이었겠지만 오랜만에 다시 읽어본 <비상구>는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는 위험해 보이지 않았고 문예지에 발표한다 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에서 만난 기자들이 ‘숏, 숏, 숏’에 대해 가장 많이 물은 것도 원작자로서 <비상구>를 어떻게 보았는가였다. 사실 나는 그 소설의 초고를 써놓고도 1년 가까이 서랍에 두었던 데다가 발표한 뒤에도 작품집으로 묶을 때 말고는 다시 들춰본 적이 거의 없었던 터였다.

“어떤 기분이냐고요? 글쎄요. 오래전에 저지르고 잊어버린 범죄를 누가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내왔을 때라고나 할까요.”

기자들은 당신 마음 이해한다는 눈길로 다들 웃어주었다. 전주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엄마의 창녀다>의 감독이 단편 <비상구>의 아슬아슬한 부분들을 상징적으로 처리하고 지나가리라는 매우 비현실적인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감독은 내가 상징적으로 처리했으면 하는 부분들만 골라서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곧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원작자로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매우 괴로운 경험인데 그 원작이 <비상구>라니. 원작자가 영화를 보는 일이 괴로운 것은 그가 원작을 고칠 수(도 있었고, 어쩌면 아직까지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15년 전에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내 ‘조금 더 잘 쓸 수 있었는데’라든가 ‘저 문장은 역시 뺐어야 했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15년 뒤에 <엄마는 창녀다> <아버지는 개다>를 연출한 분이 <비상구>도 연출하게 될 줄을 알았더라면 아마 이렇게 적나라하게 쓰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영화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내게 말했다.

“이상우 감독 영화 중에서 이번 작품이 수위가 제일 약한 편이에요. 그리고 이게 제일 나아요.”

보르헤스의 어떤 단편에 보면 노작가 보르헤스가 강변을 산책하다가 어떤 젊은이를 만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이야기가 있다. 한참 뒤에야 노작가는 그 젊은이가 바로 젊었을 때의 자신임을 깨닫게 되지만 처음에는 서로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노작가가 길을 걷다가 젊은 자신을 만나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원작자가 되어 오래전에 쓴 작품이 다시 생생하게 눈앞에 마치 범죄의 증거처럼 제시되는 상황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것은 불편하면서도 인상적인 경험이다. <비상구>뿐 아니라 <피뢰침> <마지막 손님> 모두 오래전에 쓴 이야기들이어서 마치 젊은 시절의 나를 마주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이상우 감독과는 전주에서 술을 딱 한번 같이 마셨다. ‘숏! 숏! 숏! 2013’에 참가한 감독들, 배우들, 관계자들이 모인 술자리에서였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나를 껴안고 뺨에 입을 맞추더니 앞으로 형이라고 부르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그의 형이 되었다. 이 ‘무서운 동생’과 과음하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바야르의 ‘사전 표절’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표절이라는 게 사후에 행해지니까 표절인 것인데 피에르 바야르는 그 반대도 있다고 능청스럽게 주장한다. 미래에 쓰여질 글을 미리 표절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들의 전형적인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논지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먼저 썼다고 해서 주인 행세할 필요가 없다는 것, 먼저 쓴 사람이 모든 책임을 다 떠안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사전 표절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영화를 보는 원작자의 마음은 한결 편해진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1997년의 김영하는 2013년 전주영화제에서 발표될 세편의 영화를 ‘사전 표절’하여 세편의 단편을 발표했던 것이라고.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