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이상하게 계절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음악과 계절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계절은 음악의 스피커가 되어 소리를 더 잘 들리게 하고, 음악은 계절의 공기가 되어 향기를 더 잘 맡을 수 있도록 해준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태풍이 몰아치면 늘 듣던 음악이 다르게 들린다. 몇주 전, 겨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소개했던 로지피피의 노래가 지금은 다르게 들릴 것이다. 계절은 바뀌었다. 이제 봄이다.
어떤 노래를 듣느냐에 따라 봄의 기운도 달라진다. 이지형의 <봄의 기적>에 스며 있는 아지랑이 같은 봄도 있고, 가슴 아리고 눈물 나는 <봄날은 간다>의 봄도 있고, 추적추적하고 끈적끈적한 <봄비>의 봄도 있고, 롤러코스터와 김현철이 함께한 <봄이 와>의 경쾌하고 나른한 봄도 있다. 수많은 봄 노래 중에서 이상하게 나는 <고향의 봄>만 들으면 마음이 아련해진다. <고향의 봄>은 누가 불러도 마찬가지다. 신영옥 버전도, (이정선, 이광조, 한영애, 김영미의) 해바라기 버전도, 심지어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이 부르는 <고향의 봄>도, 듣고 있으면 코끝이 찡하다. 그게 아마 멜로디의 힘이겠지. 이보다 더 봄에 어울리는 멜로디는 없는 것 같다.
요즘 자주 듣는 봄 노래는 빅 베이비 드라이버의 <Spring I Love You Best>다. 듣고 있으면 산들산들 봄바람이 부는 뒷동산에 누워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은 오후 한시쯤이고, 햇살은 따뜻하고, 마을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봄은 지금 막 뒷동산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중이다. 마을 사람들은 봄이 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 노래가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도 등장했다는데,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어떤 분위기였는지는 모르겠다.
최근에는 이 노래가 ‘오프더레코드’의 라이브 버전으로도 나왔다. ‘오프더레코드’ 시리즈라는 이름을 듣고 ‘블랙 캡 세션’(택시 안에서 노래를 부른다)이나 ‘테이크 어웨이 쇼’(야외에서 노래를 부른다)처럼 특별한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주는 기획을 상상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조용한 카페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만 담겼다. 빅 베이비 드라이버가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지만 심심한 감이 없지 않았다.
‘테이크 어웨이 쇼’에 등장했던 본 이베르, 앤드루 버드, 플릿 팍시스(세팀의 공연은 꼭 보시길!)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그 공연들을 몇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길거리의 사람들 사이로 스며든 노래는 강렬했고, 부드러웠다. 소리는 깨끗하지 않았지만 울림이 컸다. 빅 베이비 드라이버가 기타 한대 들고, 봄바람 부는 뒷동산에 올라 <Spring I Love You Best>를 불렀으면 어땠을까. 노래를 바람에 실어 봄과 함께 마을로 내려보냈으면 어땠을까. 괜히 혼자 상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