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3월31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문의: 1588-0688
1966년 시민회관 무대에서 공연된 예그린 악단의 <살짜기 옵서예>는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의 효시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초연은 전속 오케스트라와 무용단, 합창단, 배우 등 100여명이 출연하고, 4일간 무려 1만6천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직 뮤지컬이란 장르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던 당시 공연계 상황을 돌이켜볼 때 이는 단순한 성공을 넘어 우리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의미있는 시도였다. 그로부터 47년 뒤,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한 <살짜기 옵서예>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재개관작으로 다시 찾아왔다. 원작의 흥겨움, 화려함은 그대로 가져오되 새로운 배우와 무대, 다양한 기술로 관극의 재미를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제작진의 의지가 잘 반영된 무대다.
<살짜기 옵서예>는 우리 고전 <배비장전>을 바탕으로 하되 양반의 위선을 꼬집는 원작의 풍자 대신 애틋한 사랑과 해학적 요소를 더욱 강조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매우 단순하다. 죽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절을 고집하는 배비장을 골려주기 위해 제주 신임 목사와 일패기생 애랑 그리고 방자가 작당을 해 그를 애랑의 매력에 넘어가게 만든 뒤 혼쭐을 내준다. 하지만 결국 애랑 역시 배비장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는 줄거리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양반의 허세’, ‘거짓 사랑’ 등으로 대표되는 위선과 이를 넘어서는 진정한 사랑, 본성의 대립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죽은 아내의 정표를 몸에서 떼지 않은 채 수절을 고집하는 배비장은 유교적 사회 윤리의 위선과 아집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하지만 결국 배비장은 개구멍으로 기어들어가고 뒤주 속에 숨는 등 양반의 체면을 사정없이 구기면서까지 애랑의 사랑을 얻고자 하고, 애랑 역시 내기의 승패에 관계없이 배비장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위선과 허세 그리고 내기.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이들의 사랑은 결국 사회적,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어떤 것보다도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이 더욱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주제는 자연의 힘이 가장 센 곳이자 자연의 아름다움이 펼쳐져 있는 곳, ‘제주도’란 배경 속에서 더욱 강력하게 드러난다. 제주도의 자연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담아낸 무대와 김선영, 홍광호 등 주연배우들의 열연은 이러한 주제를 더욱 선명하고 힘있게 떠받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