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병이 나서 안과에 갔다. 건대입구역 2번 출구에 있는 안과였는데 예약은 안되고 오후 6시30분까지만 병원에 도착하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간호사는 말했다. 마침 인근 롯데시네마에서 <7번방의 선물> 일반시사회에 가야 하는 상황이라 평창 집에서 원주를 거쳐 고속버스를 타고 시간 맞춰 병원을 향해 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가면서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서 6시29분에 전화를 했다. 딱 5분, 아니 3분만 기다려달라고 사정했다. 간호사는 확신은 못하겠지만 일단 의사에게 말은 해두겠다고 했다. 헐레벌떡 병원 문 앞에 도착하니 왠지 의사일 것 같은 느낌의 30대 후반 남자가 막 문을 나서고 있었다. 내 직감이 맞았다. 모자를 들어올려 시뻘건 왼쪽 눈알을 보여주며 “이렇게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은데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선생님? 원주에서부터 오느라 3분 늦은 거예요. 제발 처방전이라도 좀 써주세요. 모레 중요한 면접이 있거든요” 하고 통사정을 했다. 그런데도 의사는 환자가 원칙을 안 지켰으니 자기는 잘못이 없다며 그냥 가버렸다. 순간 눈물이 났다. 의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몰인정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순간 분노심이 솟구치며 그런 이들에게 나의 생명과 건강을 의지해야만 하는 현실이 슬프기까지 했다.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내 금쪽같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 곳에서 부당한 서비스를 받았을 때 어떤 식으로든 싸우는 인간과 조용히 참는 쪽을 택하는 사람. 한국 사람들은 대개 전자를 결코 손해보곤 못 사는 다혈질, 혹은 좀 피곤한 트집쟁이의 이미지와 동일시하고 후자를 순응적 평화주의자나 사람 좋은 소심한 시민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후자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모두 불평불만 잘하는 전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오늘날의 의사들은 몇몇 소수의 의로운 이들을 빼놓고 대부분은 그저 자신의 의료 행위를 판매하는 세일즈맨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피부과, 치과, 안과, 성형외과 의사들이 그렇다. 그런 의사들에게 부당한 서비스를 받았다면 당연히 개선할 수 있도록 뭐가 잘못됐는지 똑바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환자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서 아예 의료 서비스를 받은 게 없으니 딱히 불평할 것도 없었다. 그저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그 병원에 대한 불만스러운 글을 올리는 정도로 분풀이를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워낙 장사가 잘되는 길목이라 그런 걸로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여러 날 곰곰이 생각하다가 의사에게 ‘당신에게 치료받지 못한 각결막염 환자’라는 이름으로 책 한권을 선물하자고 마음먹었다.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존 버거의 <행운아>라는 책. 점점 더 궁핍해지는 시골 공동체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든 달려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걸 자신의 의무로 생각하는 한 의사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저 타인에게 봉사하는 삶이 아니라, 총체적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스스로 ‘나는 행운아’라고 말하는 의사 이야기. 물론 그 안과 의사가 내가 보내준 책을 읽고 더 좋은 의사가 될 확률보다는 책을 읽지 않을 확률이 더 크다. 그래도 난 보낼 거다. 나도 ‘오직 행동만이 더 인간적인 사회를 창조한다’고 믿는 ‘행운아’가 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