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참 빠르다. 또 느리다. 때론 덧없고, 때로는 지겹다. 어떤 시간은 흐려지고, 어떤 시간은 또렷해진다. 그런 시간을 걸어와서 여기에 이르렀다. 어떤 시간은 봉우리가 되었고, 어떤 시간은 깊이 패어 있다. 돌아보면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꽤 많다. 높아서 보이지 않고 패여서 보이지 않는다. 연말이 되어 송년회를 하고, 한해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그런 시간의 굴곡을 편평하게 만드는 일이다. 시간의 평탄화 작업을 해두지 않으면 훗날 그런 굴곡들이 우리를 삐뚤어지게 만든다. 봉우리의 흙을 덜어내 팬 웅덩이에다 채우고, 자만하거나 괴로워하지 말자. 똑같은 1년이었고, 어김없이 또 1년을 살아야 한다.
연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결산을 한다. 올해의 앨범, 올해의 영화, 올해의 인물, 저마다 올해의 ‘땡땡’을 정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거, 참 사람들, 연말이면 꼭 저런 걸 하네. 촌스럽게’라고 혀를 차면서, 나도 하고 있다. 얼른 해야지, 그럼, 연말은 그러라고 있는 거지요, 그렇고 말고요.
본격 영화 주간지 <씨네21>에 글을 쓰고 있는 필자답지 않게 영화는 자주 보지 못했고, 본격 영화 주간지 <씨네21>에 어쩌자고 가요 칼럼을 쓰고 있는 필자답게 음악은 많이 듣고 지냈다. 팝도 많이 듣고 가요도 많이 들었다. 올해의 개인적인 결산을 빙자해 그동안 소개하지 못했던 노래와 앨범을 소개하려고 한다.
지면이 지면이고 제목이 제목인지라 팝을 소개한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꼭 소개하고 싶은 노래들이 있다. 혹시 시간 되면, 프랭크 오션, 데이비드 번 & 세인트 빈센트, 앤드루 버드, 캣 파워, 샤론 반 이튼 등의 2012년 앨범은 꼭 한번 들어보기 바란다. 좋은 곡들이 많다. 최신가요 못지않게 강력한 한방이 있는 노래들이다.
이번엔 본분에 충실한 지극히 개인적인 가요상 수상. 우선 올해의 걸그룹상에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 올해의 신인걸그룹상에는 ‘스피카’, 올해의 그룹상에는 ‘3호선 버터플라이’, 올해의 가장 많이 듣게 된 노래는 솔루션스의 <Lines>, 올해의 앨범상은 이이언의 ≪Guilt-Free≫가 차지했다. 1년 동안 이 앨범을 몇번이나 들었을까. 그동안 이이언의 노래를 소개하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최근 새 앨범의 노래 <자랑>을 선공개했다. ‘못’ 시절의 노래를 다시 부른 것인데, 좀더 간결하고 우울해져서 한해의 마지막 날에 들으면 멋질 것 같다. 제목과 가사의 반전 때문에 갑자기 슬퍼져서 펑펑 울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일이 일어난 2012년이었다. 모두들 건강했으면 좋겠다.
힘 빠지는 일이 생길 때면 늘 되새기는 말이 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 작가의 말에 나오는 말이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즐거워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모두모두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