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필레기와 그의 아내 고(故)노라 에프런 감독.
1960년대 라스베이거스에서 돈을 세는 단위는 액수가 아니라 무게였다. 카지노 회계부서의 직원들은 카운트룸에 들어서기 이전에 저울에 올라서야 했고, 퇴근할 때도 매니저가 지켜보는 가운데 다시 몸무게를 재야 했다. 아침과 저녁의 몸무게가 눈에 띄게 다르면 몸 수색은 피할 수 없었다.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의 각본을 쓴 니콜라스 필레기는 <카지노>에서 ‘라스베이거스 팩트’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라스베이거스 시스템이 자동화되기 이전에 정립됐을 이 팩트는 돈의 값어치에 해당하는 지폐의 무게를 환산한 공식으로, 100만달러는 100달러짜리 지폐로는 9.3㎏, 20달러짜리 지폐로는 46.3㎏, 5달러짜리 지폐로는 185㎏, 25센트 동전으로는 21t이다.
라스베이거스 팩트는 <CBS>의 새 TV시리즈 <베이거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보이 카지노 카운트룸의 새 매니저 미아 리조(사라 존스)는 출근 첫날 저울에 올라서서는 직원들이 평균적으로 빼돌리는 액수를 말해 모두를 긴장하게 한다. <베이거스>는 1960년대 꿈과 환상의 도시라기보다는 와일드웨스트에 가까웠던 라스베이거스를 무대로, 카지노를 운영하는 마피아 빈센트 사비노(마이클 치클리스)와 무법천지의 도시를 산탄총 한 자루로 접수한 보안관 랄프 램(데니스 퀘이드)이 이루는 대결구도에서 출발한다. 재미난 점은 법을 수호하는 랄프가 오히려 무법자처럼 그려지고, 마피아인 빈센트가 신사처럼 보인다는 점과, 두 사람이 때로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합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각자 선과 악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종류인 둘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로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일하는 여자는 모두 쇼걸이나 다름없던 시대에 지방검사보(캐리 앤 모스), 카운트룸 매니저의 역할을 여자로 설정한 것도 극에 재미를 더하는 요소이며, 과학수사나 변호사를 내세운 심리전 없이 윽박지르기와 탐문수사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새삼스럽지만 흥미롭다.
빈센트와 랄프의 캐릭터에서 짐작했겠지만, <베이거스>는 니콜라스 필레기가 만든 범죄수사물이다. 1933년생인 필레기는 각본가로 데뷔하기 이전에는 뉴욕에서 기자로 활동했는데, 마피아와 관련된 범죄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취재하며 알게 된 헨리 힐에 대한 이야기를 <Wiseguy: Life in a Mafia Family>라는 책으로 출판했는데, 이 책이 바로 <좋은 친구들>의 원작이다. <좋은 친구들>을 통해 마틴 스코시즈 감독과 연을 맺으며 할리우드에 입성한 그에게 스코시즈는 “4년의 시간을 줄 터이니, 라스베이거스의 마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청을 하고, 필레기가 취재한 이야기는 스코시즈에 의해 <카지노>(1995)로 영화화되었다.
이쯤 되면 아무래도 비교는 피하기 어렵다. 사실 <소프라노스>의 테렌스 윈터가 만들고 <HBO>에서 방영 중인 <보드워크 엠파이어>와 니콜라스 필레기의 <베이거스>는 공간과 시간이 다를 뿐 비슷한 이야기다. 하지만 공중파라는 한계 때문에 <베이거스>는 <보드워크 엠파이어>와 달리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노출과 범죄묘사에 대한 수위 역시 낮은 편이다. 하지만 말초신경을 쭈뼛쭈뼛 서게 하는 선혈이나 노출 없이도 <베이거스>는 시청자를 TV 앞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고, 2013년까지 21개 에피소드가 방영될 예정이다. <타임>은 “시즌1을 끝으로 사라지게 될 또 하나의 특색 없는 수사물”이 될지 모른다며 따끔한 일침을 놓았지만, 에피소드 8편까지 지켜본 바로는 <베이거스>의 노선은 좀 달라 보인다. 수사물의 형식을 취했지만 수사보다는 빈센트를 둘러싼 범죄조직의 세력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손을 잡고 등을 돌리는 역학관계에 좀더 집중한 모양새다. 사실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를 떠올려보면 <베이거스>가 단순한 수사물로 남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