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10월28일까지 장소: 대학로 아트원시어터 1관 문의: 1577-3383
막이 오르기 전, 무대는 그야말로 텅 비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격자무늬의 바닥과 벽이 전부다. 배우들이 하나둘 무대로 등장한다. 모두 모이자 바람소리, 풍경소리와 함께 배우들이 제자리를 찾아 달리기 시작한다. 뮤지컬이 시작된 것이다. 시간은 수백년 전 조선시대로 거슬러 흐른다.
한여름 밤 궁궐 안, 중전이 술로 긴 밤을 버티고 있다. 그 쓸쓸함도 잠시, 보모상궁의 외마디 비명에 궁궐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 찬다. “세자마마가 사라졌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본격 시작한다. 배우들은 바람소리와 함께 또 달린다. 이번엔 뒤로 달린다. 앞에 본 장면으로 되감기된다. ‘플래시백’이다. 되돌린 장면에서는 중전의 말동무를 하고 있던 나인 자숙이 중궁전에서 나와 한 사내를 만난다. 동궁전 내관 구동이다. 이어 그 둘을 각각 우연히 맞닥뜨린 감찰상궁, 눈을 피해 만난 구동이 자숙에게 살구를 건네는 장면 등이 여러 번 되감기된다. 관객은 같은 상황을 각 등장인물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현장 속으로 반복해서 들어간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을 지배하는 것은 상상력이다. 세트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극 한편을 보는 듯하다. 끊임없이 달리는 배우들의 동선에서 겹겹이 싸인 구중궁궐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극의 주된 매개체인 살구나무도 허공을 향해 뛰는 구동의 모습에서 바람에 흔들린다. 빈 무대를 빛과 소리, 움직임으로 채우는 서재형의 연출 솜씨가 놀랍다. 음악은 추리극 흐름에 걸맞게 휘몰아치는 리듬으로 가득하다. 특히 빠른 속도의 극 전개와 긴장감을 높이는 민속타악기가 내는 효과음은 박진감이 있다.
추리극으로 달려가던 극은 중반이 지나면서 실체를 드러낸다. 왕세자가 실종되던 시간에 처소와 근무지를 이탈했던 자숙과 구동이 용의자로 지목된다. 문초 과정에서 다른 진실이 떠오른다. 살구를 따는 한 사내가 그려진 뮤지컬의 포스터를 봤다면 제목이 주는 미스터리함 뒤에 숨은 사랑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은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다. 즉 뮤지컬은 ‘왕세자 실종’이란 사건을 던져놓고 내관과 궁녀의 사랑이란 대중적 이야기를 입혔다. 그리고 그 사랑을 드러내는 데까지 치밀한 추리적 서사를 따른다. 이 점이 이 작품의 진가다.
기발한 상상력을 구현해낸 극단 ‘죽도록달린ㄴㄴㄴ다’는 극단 이름이 의미하듯 “창작 본능”을 향해 계속 달리는 중이다. 그들이 앞으로도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