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 관객이 800만명을 넘었다는데, 일조를 못하고 있다.” 김종현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영화제 개막 10일을 앞두고 만났다. 영화제 사무국은 아리랑시네센터 안에 위치해 있었고, 사무국 코앞에선 <도둑들>의 포스터가 펄럭였다. 그럼에도 김종현 집행위원장은 개봉영화를 보러갈 여유가 없었다. 업무는 밤 11시, 12시가 돼야 겨우 끝났다. 중·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었던 그는 14년간 영화제를 꾸려오면서 제대로 여름방학을 지내본 적도 없다. 7, 8월이면 외국의 교육 현장을, 영화제를 찾아다녔다. 어떻게 하면 이 땅에 사는 청소년들의 영혼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는 늘 고민하고 있었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청소년만을 위한 영화제가 아니라는 점을 계속 강조해왔다. =14년 전에 영화제를 시작했을 때도 그랬는데 지금도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의 화두는 여전히 입시다. 청소년들은 언제나 사회의 변방에 놓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영화제가 할 일이 많다. 청소년영화제가 그들이 발산하고 싶은 목소리를 일정 부분 대변할 수 있었으면 했고, 그런 사회적 기능에 충실하려 했다. 그 과정에 기성세대의 역할도 크다고 생각한다.
-지난 14년 동안 청소년영화제가 이룬 성과를 평가한다면. =한국에서 가장 먼저 미디어교육에 대한 기반을 가지고 영화제를 시작했다. 각국 미디어교육 전문가들을 많이 초빙했고, 영화제를 통해 다양한 성장영화도 소개했다. 특히 국제청소년영화캠프라든지 국제포럼, 국제세미나를 통해 국제적인 교류를 강화해왔다. 국내에서도 캠프나 영화제를 통해 영화인으로 성장한 친구들이 꽤 있다. 박보영, 한효주처럼 스타가 된 친구도 있고. 나름 한국영화계에 디딤돌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올해는 국제청소년영화캠프가 열리지 않는다. =많이 안타깝다. 예산이 부족했다. 서울시 예산도 줄었고 국고도 줄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잠시 숨 고르기 한다고 생각하고 내년 15회 때 꼭 캠프를 열 수 있도록 하겠다.
-올해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뭔가. =예산이 줄어 힘든 부분이 있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 청소년영화제가 없던 나라에서도 새로 청소년영화제가 생겨나는 추세다. 청소년영화제가 점점 소중한 영화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청소년영화제가 담당하는 사회적 기능들이 있지 않나. 정부나 지자체가 앞장서서 청소년영화제를 유치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우리나라에선 그런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기업의 기부문화도 여전히 인색하다. 지난번 기자회견 때도 말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청소년입시영화제를 하면 대박나겠다는 얘기도 한다. 그럴수록 더 알차게 영화제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 대한 인지도는 해외에서 어느 정도인가. =사실 우리 영화제는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역사가 긴 체코의 즐린영화제나 이탈리아의 지포니영화제에 비견할 바는 못되지만, 15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역동적으로 성장한 영화제라는 인식이 있다. 규모 면에서도 아시아에서 가장 크지만, 내용 면에서도 전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영화제로 성장했다. 국제캠프에 참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줄을 설 정도다.
-14년간 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지냈다. 이제 그만 영화제에서 손을 뗄 때가 됐다는 얘기를 한 적 있다. =너무 긴 세월을 청소년영화제에 바친 것 같다. (웃음) 국고를 지원받는 6개 영화제 중 월급을 받지 않고 일하는 위원장은 나 혼자일 거다. 그래서 더 자부심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젠 좋은 후배들을 물색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 스스로 걸어들어오는 사람은 없을 거다. 런던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범 선수가 말한 것처럼, 죽기 아니면 살기가 아니라 죽을 각오로 내년 15회 영화제를 준비하려 한다. 그렇게 기반을 잘 닦아놓은 다음 능력있는 후배들에게 영화제를 물려줄까 한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미디어교육도 확대해야 하고 영화를 통한 국제교류도 더 활발해져야 한다. 또 청소년영화제가 한국영화계의 디딤돌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더 확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좋은 성장영화를 잘 프로그래밍해서 온 가족이 즐기는 영화제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상영작 중 위원장으로서 강력 추천하는 작품이 있다면. =‘스트롱 아이’ 섹션의 <디태치먼트>와 개막작 <카우보이>. 또 클레르몽 페랑 키즈 특별전은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