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떤 설득의 기술이 있었을까. 언니네이발관의 기타리스트 이능룡이 <설마 그럴리가 없어>의 주연배우로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이다. 무대 위의 이능룡은 늘 차분하고 침착하게 기타를 연주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외로움에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고, 소개팅 사이트에 접속해 프로필을 등록하는 로맨스영화의 남자주인공으로 나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영화에서도 이능룡 특유의 무덤덤함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은 무수한 궁금증을 안고 <설마 그럴리가 없어>의 이능룡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
-영화배우로서 작품 홍보도 하고 인터뷰도 하니 소감이 어떤가.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그런 생각이 든다. (웃음)
-어떻게 캐스팅됐나. =언니네이발관 6집을 준비하던 중 스폰지이엔티 조성규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영화를 만들 건데 출연할 생각이 없냐고. 그래서 하겠다고 했다. 영화에 출연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설득 과정은 없었다.
-조성규 감독과는 원래 아는 사이였나. =전혀. 영화 때문에 처음 뵙게 됐다. <설마 그럴리가 없어>를 준비하며 남자주인공 역할은 배우가 아니라 뮤지션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더라. 그래서 추천을 받아 날 캐스팅하신 건데, 처음 만난 자리에서 “능룡씨는 음악 하는 사람 같지가 않네요” 하셨다. 말에 가시가 있더라. (웃음) 아마 조금이라도 음악 하는 사람 냄새가 나길 바라셨을 텐데, 나는 평범하다 못해 맹맹한 느낌이니까.
-언니네이발관 기타리스트 이능룡이 영화 속 뮤지션 이능룡을 연기한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일지 궁금했다. =능룡이의 말투나 눈빛은 연기라고 할 것 없이 내가 지닌 것이었다. 능룡이가 소개팅 사이트 업체에 전화 걸어 항의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도 평소 내가 잘하는 행동이다. 휴대폰 요금 꼼꼼하게 챙겨보고 이상한 점 있으면 전화해서 물어보고 그런다. 다른 점은 영화 속 능룡이 좀더 자존감이 없는 캐릭터라는 거다. 극중에서 저작권료를 챙겨줄 테니 영화음악을 대신 작곡해달라는 친구의 요청에 주저하고 망설이는 모습은 나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실제로 그런 부탁을 받았다면 가차없이 거절했을 거다.
-이상순, 임주연, 몬구 등이 영화 속 동료 뮤지션으로 등장한다. 이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주연은 오랫동안 함께 음악을 해온 친구지만 몬구랑 상순 형은 처음 만났다. 특히 몬구와는 인사만 나누던 사이였는데 영화에서 절친한 친구로 나와야 하니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촬영 며칠 전에 “몬구야, 우리 당장 친해져야 하니까 내가 말 놓을게” 하고 따로 만나서 연습하며 친해졌다. 신기한 점은 음악 활동을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친해지지 못했던 뮤지션과 영화를 며칠 찍고 나니 원래부터 친했던 사이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설마 그럴리가 없어>라는 메인 테마곡은 “설마 그럴 리가요”라는 능룡의 마지막 대사에서 구상한 건가. =그렇다. 그 대사를 가사에 넣고 싶었다. 삶에 지쳐 있던 능룡이 윤소의 존재를 알게 되고, 새로운 반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느낌을 담아 곡을 만들었다. 문제는 가사였다. 늘 같이 연주하던 언니네이발관 멤버들이 아니라 상순 형, 중엽, 링구 등과 합주를 해야 했고, 그러려면 가사를 빨리 써서 곡을 넘겨줬어야 했는데 가사가 안 나오는 거다. 고민하다가 합정역 근처 여관에 들어가 새벽 네시까지 가사를 썼다. 되게 집중이 잘되더라.
-로맨스영화인데 여주인공 최윤소와 엔딩 신에서 비로소 만난다. =안 그래도 언니네이발관 멤버들이 영화에 출연한다니 가장 먼저 물어본 말이 “여배우와 키스신은 있냐”였다. (웃음) 그런데 전혀 만나는 장면이 없고, 감독님이 리얼리티를 살려야 한다며 촬영 당일날 우리를 처음 만나게 해서 아쉬웠다. 그래도 손을 잡는 마지막 장면에선 느낌이 참 좋았다. (웃음)
-영화음악과 언니네이발관 작업은 어떻게 다르던가. =목적이 있고 없고가 다른 것 같다. 언니네이발관의 경우 만들고 싶은 곡을 작업한 다음 ‘선택’을 하지 그게 ‘어떤 곡이어야만 해’라는 생각은 안 한다. 영화음악은 곡의 특정한 느낌을 먼저 잡은 다음 작업을 해야 한다.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평소 샤방샤방한 여자 보컬의 밝고 통통 튀는 노래에 애정이 있었다. 그런 노래는 아무래도 밴드의 색깔과 맞지 않아 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작업으로 뮤지션으로서의 다른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