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혹은 서바이벌 프로그램 중에 <TOP밴드>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여전히 음악에다 점수와 등수를 매기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새로운 음악들을 많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TOP밴드>에는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수없이 들었던, (그래서 따라 부르라면 따라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은) 팝발라드, 1980~90년대 가요, 알앤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세상에나!)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부르고 통과하는 밴드가 있는가 하면 ‘신중현과 엽전들’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인디언 인형처럼> 같은 노래를 새로운 버전으로 부르는 밴드도 있다. 공중파에서 그런 노래를 들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즐겁다(지난주에는 ‘포브라더스’가 나의 ‘페이보릿 밴드’ 킨크스의 노래를 불러주기까지!). 시즌1에 비해 참가자들의 수준이 훨씬 높아진 덕분에 인디밴드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를 발견하는 순간도 흥미롭다. 이를테면 ‘장미여관’의 <봉숙이> 같은 노래. 크크크, 생각만 해도, <봉숙이>의 가사만 생각해도, 웃음이 터진다. (‘데낄라 시키돌라 캐서 시키났뜨만, 집에 간다 카는’ 봉숙이를 향해) ‘못 드간다, 못 간단 말이다/ 묵고 가든지, 네가 내고 가든지’라고 부드럽게 외치는, 그 와중에 술값 생각하는, 이 남자들이 얼마나 솔직하고 귀여운지 모른다. 그래, 봉숙아, 네가 좀 너무했다! 마, 사과해라!
<봉숙이>가 재미있게 들리는 이유는 경상도 사투리 때문이다. 전라도 사투리보다- 양동근의 노래에서 말고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듯- 경상도 사투리를 노래에 더 많이 쓰는 이유는 발음이 세서 더 자극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봉숙이>에서도 ‘시키돌라’와 ‘시키났뜨만’, ‘묵고 가든지’ 같은 사투리의 (언뜻 들으면 불어 같기도 한) 센 발음들을 부드러운 멜로디와 엮어놓으니 갑자기 노래가 코믹해진다. 사투리와 노래와 유머를 잘 버무린 강산에의 노래 <와그라노>에 이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들어본 것 중 ‘사투리 노래’의 최고봉은 ‘MC 메타와 DJ 렉스’의 <무까끼하이>(는 경상도 사투리로 ‘무식하게’에 근접한 말)였다. <와그라노>와 <봉숙이>와 달리 <무까끼하이>의 가사는 살벌하다. 음악을 시작하던 즈음의 자신들의 생각과 상황을 랩에 담은 것인데, 듣다 보면 사투리와 비트와 감정선이 너무나 절묘하게 심금을 울려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나만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하이라이트인 ‘사는 게 이런 기가, 무까끼하이’를 외칠 때면 가슴에서 뭔가가 끓어오른다. 그들의 솔직한 마음이 심장을 파고든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곳곳에서 지금도 누군가 노래를 만들고, 또 부르고 있을 텐데, 이런 사투리가 담긴 노래들도 꽤 있지 않을까? 사투리 노래들이 좀더 수면 위로 올라오고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좋지 않나, 이런 솔직한 감정과 꾸미지 않은 말투들. 사투리 쓰는 게 뭐가 나빠! 아, 제가 괜히 울컥했군요. 죄송합니다. 이래 봬도 저, 마음만은 ‘턱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