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마감을 하는 데 끙끙대지 않고 글을 잘도 써내는 걸 보면, (원고지 일곱매 분량의 짧은 글이지만) 마감 이틀 전에 원고를 보내는 통에 편집자가 놀라는 걸 보면, 글 쓰는 재능은 타고난 것 같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 같다.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지만 글솜씨만큼은 기가 막히다. 화려한 비유나 미문은 없지만 가끔 사람의 마음을 ‘탁’ 내려치는 문장을 쓰신다. 어머니의 편지나 일기를 보고 울컥했던 적이 많다. 힘든 인생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문장들이다. 나도 그렇게 무심하고 서툴게 사람의 마음을 후려치고 싶다. 나는 멀었다.
최근에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걸 또 하나 발견했다. 어머니는 요즘 취미 삼아 노래교실에 다니는데, 무척 즐거우신 모양이다. 전화를 드리면 이번주에는 어떤 노래를 배웠는지 알려주신다. 지난 명절 때 어머니의 휴대전화에 노래를 넣어드리다가 어떤 가수들을 좋아하는지 물어봤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류계영. (몰라요.) 박진석. (박진영과 양현석을 합한 이름인가요?) 강진. (지역이 아니라 가수 이름인 거죠?) 그 뒤에도 모르는 가수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내가 물었다.
“어머니는 현철이나 송대관이나 태진아는 안 좋아해요?” “난 별로야.” 어머니가 쿨하게 대답하셨다. 아, 이런 트로트 인디 정신을 보았나. 나의 인디 음악 사랑이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로군. 물론 류계영이나 박진석, 강진 같은 트로트 가수들은 어머니 친구들 사이에선 아이돌과 맞먹는 인기겠지만 우리가 보기엔 인디 뮤지션 같은 느낌이다.
어머니의 ‘페이보릿 가수 리스트’에 내가 아는 이름이 딱 한명 있었다. 김연자.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는 바로 그 김연자였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김연자의 노래 제목은 <10분 내로>. 제목만 듣고 이것은 마치 이효리의 <Ten Minutes>에 대한 트로트계의 대답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가사를 보니 전혀 다른 세계였다. ‘10분 안에 남자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이효리의 능동적 세계라면 김연자의 세계는 수동적이다. ‘내가 전화할 땐/ 늦어도 10분 내로 내게로 달려와요/ 꾸물대지 말고/ 핑계대지 말고/ 옆길로 새지도 말고/ 여자는 꽃이랍니다/ 혼자 두지 말아요/ 당신 가슴에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 될래요 10분 내로.’
어머니는 노래교실에서 배운 실력을 발휘하여 노래를 직접 불러주셨다. 듣고 있는데 어머니의 글과 비슷했다. 10분 내로 꽃이 되겠다는 (응? 이게 무슨 말이야!) 말도 안되는 가사지만 그 서툰 표현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어머니가 여자고, 어머니가 꽃이란 거다. 혼자 두지 말라는 거다. 노래교실에 모여 앉아 <10분 내로>를 합창했을 수많은 어머니를 생각해도 마음이 울컥한다. 밤에 가끔 아이폰으로 녹음해 저장해둔 어머니의 <10분 내로>를 듣는다. 눈물이 핑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