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타이타닉>이 처음 개봉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정말 말들이 많았죠. 저 여자는 왜 저렇게 건장하냐는 둥. 잭 도슨 몸집의 두배는 되겠다는 둥. 그래서 둘이 안 어울린다는 둥. 엄마랑 아들이냐는 둥. =기억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 1912년이라는 시대를 충실하게 고증하고자 했던 제임스 카메론의 의도를 몰라봤던 겁니다.
-고증이요? 무슨 고증? =제 몸매 말이에요. 이게 바로 제임스 카메론이 얼마나 충실하게 시대를 고증했는지에 대한 증거라고요. 저 같은 몸매는 1912년 아름다운 여인들의 평균 몸매였답니다. 오히려 그 시절 사람들은 저를 볼 때마다 어쩜 애가 그리 말랐냐는 둥, 밥은 먹고 다니냐는 둥, 고기가 없어서 브리오슈만 먹고 사냐는 둥, 오히려 제 몸매 정도면 모델 몸매였죠.
-하긴 생각해보면 그리스 시절에는 비너스상 같은 몸매가 아름다운 몸매였죠. 용서하세요. 15년 전 여성 관객은 말라비틀어진 청춘스타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잭 도슨에게 너무 심취해 있었거든요. 이런 아이러니가 있어요. 정작 자신들은 인간적인 몸매면서도 영화나 파파라치 사진 속 여배우의 몸에 약간의 군살만 붙어도 욕을 퍼붓는 이상한 심리적 아이러니 말입니다. 거식증이 패션인 시대라니까요. =오우 끔찍해라. 게다가 한번 생각해보세요. 피골이 상접한 잭 도슨이 수갑으로 손이 묶인 채 3등 객실에서 수장되어갈 때, 제가 도끼를 들고 바닷물의 한기를 견디며 객실로 쳐들어가 구해낼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제가 요즘 애들처럼 말라비틀어진 몸매였으면 그게 가능했을 것 같아요? 2등 객실 계단 절반도 채 못내려가고 얼어죽었을걸요? 지방층 없이 북극해의 얼음물을 견디기란 불가능한 일이에요.
-맞습니다, 맞고 말고요. 키라 나이틀리 같은 배우가 로즈씨 역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키라 나이틀리요? <오만과 편견>을 보다가 기함을 했어요. 제인 오스틴 시절에 그렇게 말라비틀어진 여자애들은 폐병환자들밖에 없었다니까요. 오만하고 편견에 가득 찬 캐스팅이라니까 진짜.
-그래도 키라 나이틀리가 연기 하나는 끝내주니까 로즈씨 역할을 해도 큰 무리는 없지 않겠어요? =끝내줬겠죠. 도끼도 필요없었을걸요. 그 뾰족한 턱으로 잭 도슨의 수갑을 별 무리없이 박살냈을 테니까.
-이런. 마른 여자들에 대한 분노가 상당하시군요. =얼마 전 한 인터넷 게시판을 봤더니 제가 조금만 더 말랐어도 떨어져 나온 문짝에 잭 도슨과 나란히 올라타서 함께 살아남았을 거라더군요. 훗, 이것들아. 니네가 거기 올라타봐라. 혼자서도 못 올라갔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