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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성의 시네마나우] 이중구속을 벗어라

비판 속의 일본영화에 새로운 미학을 기대하다

<길티 오브 로맨스: 욕정의 미스터리>

많은 이들이 오늘날의 일본영화가 예전의 그것만 못하다고 입을 모아 말하곤 한다. 하지만 상투적이기 짝이 없는 이 불평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영화의 실질적 침체가 아니라 동시대 세계 영화계가 아시아영화에 할당한 기능과 일본영화에 할당한 기능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영화는 아시아영화의 외부에 자리해 아시아영화의 중심이 되는 역설적인 기능을 맡아왔다- 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지아장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차이밍량, 라브 디아즈, 홍상수 등 최근 아시아영화의 최전선을 이루는 이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통적으로 존중되어온 서사나 미장센의 효과를 부분적으로 활용하되 모종의 독특한 개념적 도식 내에 그것들을 배치하는 현대적 미학을 구사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이들 감독들이 담당하는, 그리고 동시대 아시아영화의 예술적 기능이 라 할 수 있다(흥미롭게도, 이들 감독들이 각자의 개념적 도식을 보다 전면에 내세운 작품보다는 그 개념적 도식이 서사나 미장센과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들이 종종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일본영화는 이처럼 개념적 도식을 활용하는 영화가 매우 드문데다가 설령 있다고 해도 일본영화에 할당된 기능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영향력이 큰 국제영화제 초청에선 배제되고 만다. 최근 국제영화제들이 일본영화에 할당한 영역은 표현적이고 양식적인 작품이나 ‘아시안 익스트림’이란 용어로 대표되는 과잉의 장르에만 국한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지난해 칸영화제가 가와세 나오미의 <하네즈>, 미이케 다카시의 <할복>, 소노 시온의 <길티 오브 로맨스: 욕정의 미스터리>를 초청한 데 이어 베니스영화제가 소노 시온의 <두더지>, 쓰카모토 신야의 <고토코>, 시미즈 다카시의 <토멘티드> 같은 영화들을 제한적으로 초청한 사실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오늘날 일본영화는 일종의 이중구속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바로 개념적 도식을 활용하는 현대적 미학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전적으로 동시대적인 드라마나 장르영화를 생산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영화는 동시대의 아시아 예술영화가 현대적 미학을 구사하면서 비워낸 자리를 책임질 것을- 다시 한번 아시아영화의 외부가 됨으로써 중심을 만들어낼 것을, 중심으로서의 외부가 될 것을-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는 강압에서 벗어나고자 일찍부터 노력했던 이들로는 스와 노부히로,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 만다 구니토시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이들의 영화는 여전히 그간의 노력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한해 몇몇 일본 감독들은 좀더 실험적인 방식으로 모종의 개념적 도식을 일본영화의 스타일과 융합하는 작업을 시도했는데, 고바야시 마사히로의 <위기의 여자들>과 마리코 데쓰야의 중편영화 <이이불이>가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하며, 아주 성공적이라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흥미로운 작품들로는 야마모토 마사시의 <스리 포인츠>와 이시이 소고(이시이 가쿠류로 개명)의 <살아 있는 사람 있습니까?>를 꼽을 수 있겠다. 한편 지난해 일본 영화계가 배출한 최고의 성과인 도미타 가쓰야의 <사우다지>가 동시대 아시아영화와 일본영화간의 간극을 정확히 인지하면서 그 양쪽을 지그재그로 오가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브라질 출신의 이민자들과 타이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서 온 매춘부들이 일본인과 얽히며 빚어지는 문화적 갈등이라는 소재도 그 형식적 패턴에 썩 잘 어울린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새로운 미학은 궁지에 몰렸을 때 싹트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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