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12월31일까지 장소: 샤롯데씨어터 문의: 02-501-7888
<캣츠>를 처음 본 건 90년대 초반이다. 오프닝부터 충격이었다. 무대 위에 인간은 없었다. 바닥을 요염하게 기어다니고, 객석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어 관객에게 몸을 비벼댄다. 생김새며 몸짓이며, 고양이들 그 자체였다.
그 살가운 고양이들이 다시 돌아왔다. 공식 라이선스로 두 번째며, 올해가 서른 잔치다. 하지만 단순히 세계 4대 뮤지컬, 넘버 <Memory>의 유명세에 이끌려 극장을 찾다가는 꾸벅꾸벅 졸기 십상이다. <캣츠>의 3단계 매력을 안내한다.
1단계 무대 메커니즘.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집채만 한 크기의 깡통과 쓰레기더미로 뒤덮인 무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양이의 눈으로 본 생활의 소품 크기다. 무대 아래에 연결된 하수구 구멍 같은 통로에서부터 천장까지 높게 세팅된 철조물에 이르기까지. 공연장 전체가 빈틈없이 활용된다. 넓고 깊은 무대는 배우들의 동선을 좀더 자유롭게 이끈다. 툭하면 무대에서 뛰어내려와 객석을 돌아다닌다. 관객의 자리를 뺏어 앉기도 하고, 무릎 위에 올라타기도 한다. 1막이 끝난 뒤 인터미션이 되면 고양이들은 아예 대놓고 객석에서 논다. <캣츠>만의 재미이자 묘미다.
2단계 버라이어티쇼. 발레, 재즈댄스, 탭댄스, 애크러배틱 등 다양한 장르의 춤을 선보인다. 마법사 고양이는 360도 회전 턴을 무려 30회 이상 펼치고, 도둑고양이 커플은 서커스에서나 볼 수 있는 ‘더블 윈드밀’을 멋지게 해낸다. 눈부신 조명 속 고양이들의 퍼포먼스가 또 하나의 장기다.
3단계 음악. 뮤지컬을 못 본 사람도 멜로디를 들으면 흥얼거리는 베스트 송이 있다. 바로 <Memory>. 한때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으나 이제 늙고 추해진 암고양이 그리자벨라가 부르는 곡이다. 이 늙은 암고양이의 애환이 담긴 노래가 울려 퍼지는 순간, 관객은 우수에 젖는다. 사실 그리자벨라가 무대에 등장하는 시간은 15분 남짓. 짧지만 그 노래 속엔 지나간 삶의 추억이 담겨 있다. 이것이 <Memory>의 힘이다.
<캣츠>의 스토리는 일종의 퍼즐이다. 여러 고양이들의 사건사고가 조각조각 흩어졌다 다시 돌아오는 구성이다. 초반 극 몰입이 어려울 수 있는 이유다. 대신 모든 캐릭터들이 살아 있다. 저마다 사연과 삶의 애환을 가진 고양이들. 35마리의 고양이가 펼치는 장기자랑을 보노라면, 흐뭇한 미소가 번질 터. 그리고 고양이의 탈을 쓴 배우들이 사람의 탈을 쓴 고양이였음을 아는 데도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