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소원>이었던가. 소세지를 두고서 벌어진 승강이 때문에 어처구니없이 소원을 날려버린 어느 불행한 부부의 이야기. 영화 <일곱가지 유혹>에서 악마의 표적이 되는 이도 그들 부부의 처지와 비슷하다.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컴퓨터 회사의 고충처리반원으로 일하는 리처드는 동료들에게 괄시와 놀림의 대상이다. 동정을 보내는 여인 한명쯤 곁에 두고 있으련만, 어찌된 일인지 청년이 가슴에 품고 있는 여인은 그의 존재 자체도 모른다. 동료들의 장난에 넘어가 그녀에게 접근하는 용기를 과시하지만, “누구시더라” 하는 쌩한 여인의 반응에 특유의 넉살을 부리던 리처드라도 풀이 죽게 마련이다.
쥐구멍에도 볕들날 있듯 암담한 리처드에게도 기회가 온다. <파우스트>의 메피스토에 버금가는 악마가 매혹적인 팜므파탈의 의상을 걸치고 나타나 그에게 소원을 들어줄 테니 영혼을 달라고 제안하는 것. 7가지 소원을 영화 속에서 모두 보여줘야 하는 리처드에게 고민할 시간은 많지 않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욕망을 선택한 리처드. 한 가지 소원만을 남겨둘 때까지 “무지가 불러온 유혹, 결과는 허사”라는 계몽적인 옛이야기의 교훈을 그는 모른다. 부를 얻었지만 부하들의 배신에 맞닥뜨려야 하는 콜롬비아 마약왕부터, 권력을 얻었지만 포드 극장에서 암살 직전에 이르는 링컨으로 부활하기까지, 영화는 소원을 빌지만 매번 사랑 고백 직전에서 미끄러지는 리처드의 헛소동을 코믹하게 묘사한다.
<일곱가지 유혹>은 <멀티 플리시티> <애널라이즈 디스>의 해럴드 래미스가 1967년 스탠리 도넌이 연출한 동명의 코미디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 전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감독은 해묵은 숙제를 명쾌하게 풀진 못한다. 생동감 있는 캐릭터와 흡입력 있는 상황전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데 실패한 것이다. 중반 고개를 넘으면 쳇바퀴돌 듯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에피소드 때문에 해피엔딩으로 향하는 낡은 이야기를 새롭게 부화시키진 못했다. 부푼 기대는 줄이되 <미이라>의 브랜든 프레이저가 선사하는 익살의 도가니에 빠지거나 <오스틴 파워>의 엘리자베스 헐리가 내뿜는 파란눈의 섬광에 취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
이영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