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의 빛, 노스탤지어의 그림자
1999년,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출연 피터 폰다 장르 액션 (엠브이넷)
약관의 나이에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라는 데뷔작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던 스티븐 소더버그는 아마, 데뷔작의 영예에 강박된 감독들 중 하나일 게다. 이후 데뷔작에 필적하지 못하는 작품들은 그에게 부여했던 ‘영화천재’ 찬사를 기각하게 만들었고, 그리고 <카프카>는 그 굴욕의 일순위를 차지할 작품일 것이다. 하지만 대공황기의 빈민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리틀킹>으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98년작 <조지 클루니의 표적>으로 데뷔작 이후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99년작 <라이미> 역시, <가디언>과 같은 영국 저널에서 호평을 아끼지 않은 스티븐 소더버그의 실험작이다.
영국 빈민가에서 생활하던 전과자 윌슨(테렌스 스템프)은 딸 제니퍼가 미국에서 의문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LA로 향한다. 그곳에서 딸과 친분이 있었던 로엘이라는 남자의 도움을 받아 딸의 흔적을 추적해간다. 그러던 과정에 딸이 부유한 음반제작자이자 마약 암거래상이기도 한 테리 발렌타인(피터 폰다)과 치정관계로 얽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윌슨은 직감적으로 테리에 의해 딸리 살해당했을 것임을 알게 되고, 보복에 나서게 된다.
이 영화는 액션 스릴러의 장르적 범주 내에서 호흡하는 듯하면서도, 정작은 두명의 노장배우가 연기하는 극중 주인공들의 노쇠함과 추억을 좇아가는 노스탤지어영화이다. 이미 60살을 훌쩍 넘어버린 윌슨과 테리는 모두 60년대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현재화한다. 자신의 젊은 날을 추억하는 윌슨의 회상신은 테렌스 스템프가 출연했던 켄 로치 감독의 67년작 의 장면들이며, 젊은 애인에게 자신의 젊음날을 들려주는 테리, 피터 폰다의 대사는 <이지 라이더>에서 그가 행한 일탈기록들이다. 그러면서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는 노동계급 하위문화와 마약 그리고 자유의 기치로 젊음을 향유했던 60년대를 의도적으로 자신의 영화 속에서 유령처럼 불러들인다. 이러한 경향성은 60년대 청년문화의 아이콘과 같은 두 노장 배우들에 스며 있는 신화학에 대한 차용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것이 ‘기억’과 ‘향수’임을 강조하는 편집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시간적 진행이나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편집을 배제하고, 비선형적인 시공간의 배열과 몽환적인 회상신, 이미지와 사운드의 불일치 등을 통해 아련한 주관적 감성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아직 30대에 머무르고 있는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는 마치 달관의 경지에 이른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노익장이 돼버린 배우들의 노쇠한 육신과 얼굴 이미지를 성찰한다. 물론, 그 성찰의 깊이야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이르지 못하지만, 대신 감독은 테크닉적인 카메라 워크와 편집을 통해 60년대를 향수하는 노년 배우들의 노스탤지어를 매력적으로 미학화했다.
정지연/ 영화평론가[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