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독립잡지 중 주목할 만한 9권을 선정했다. 패션, 문화, 인물, 에세이 등 분야도 다양. 대중적인 것부터 실험적인 것까지 성향도 제각각이다. 잡지를 만드는 이들에게 이들 잡지를 발행하는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까지 모두 들었다.
공통질문
1. 왜 독립잡지를 만들게 됐나 2. 보람 3. 최고의 기사 4. 이상적인 잡지란 5. 평소 즐겨읽는 잡지. 이유 6. 변화하는 시장에서 잡지의 미래, 대안
<오 보이!>
잡지 이름을 보니 남성지 아니냐고? 그럴 리가. 연예인이 주로 표지 모델인 걸 보니 패션지 아니냐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그냥 패션지가 아니다(물론 연예인 표지가 전부는 아니다. 8호처럼 동물자유연대에서 온 늠름한 ‘시몬’이라는 강아지를, 4, 15호처럼 막 봉우리가 핀 꽃을, 19호처럼 토리노, 루카, 피렌체 등 이탈리아 도시를 표지로 내세운 적도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오 보이!>는 어디까지나 동물과 환경 그리고 지구를 생각하는 패션·문화 잡지다. 어렵거나 고상한 주제라고 착각하면 큰일난다. 혼자서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고, 디자인을 해서 매달 한권씩, 벌써 20권째를 발행한 패션 포토그래퍼 김현성은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복지와 환경보호에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이다. <오 보이!>가 배우나 가수를 화보 모델이나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하는 것도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맞는 것 같다. 배우 이연희가 뼈가 세개 부러진 채 발견된 유기 고양이를 안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사람에게 희생 당하는 동물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타적 식사’에 소개된 레시피대로 주말 저녁식사를 채식으로 뚝딱 만들면서 환경 보호와 동물 복지가 알게 모르게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변화지만 <오 보이!>는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오 보이!> 배포처 및 정기구독은 블로그 ohboyzine.egloos.com을 참조할 것).
<오 보이!> 김현성 편집장
1. 어릴 때 어머니께서 유기견을 집에 데려와 키우셨다. 자연스럽게 강아지와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결혼을 한 뒤 처음 키운 강아지 ‘먹물’이 2008년에 세상을 떠났다. 동물 복지와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다. 평소 친숙한 잡지를 통해서 말이다. 2. <오! 보이>를 통해 사람들이 동물 보호와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에 옮길 때. 3. 모두 직접 만든 거라 저마다 애정이 있다. 그래도 꼽으라면 8번째 이슈였던 ‘이타적인 사랑’이다. 강아지 얼굴이 표지로 나온 책인데, 동물보호단체를 소개하고 연예인 화보를 통해 동물보호운동을 좀더 친숙하게 알렸다. <오 보이!>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한 셈이다. 4. 조금씩이라도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변화의 동기를 주는 잡지. 버려지지 않는 잡지. 5.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컬러스>. 정말 작은 존재인 인간이 지구를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사진만 봐도 겸손해지는 책이다. 6. <씨네21>처럼 큰 잡지는 종이와 디지털을 병행할 것 같다. 반면 <오 보이!>처럼 소규모 잡지는 종이잡지로만 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세월이 흘러도 종이를 한장 한장 넘길 때 느껴지는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은 남아 있는 법이니까.
<싱클레어>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잡지라면 이달 혹은 이호의 주제나 특집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싱클레어>에는 그저 불특정다수가 보내온 일기 같은 글과 사진으로 가득하다. <싱클레어> 피터 편집장은 그것이 2000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11년 동안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잡지를 처음 만들 당시, 거의 모든 잡지에 그달의 주제가 있었다. 그게 싫기도 하고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점에서 <싱클레어>는 필자가 독자가 되고, 독자가 필자가 되는 잡지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싱클레어>의 빈 페이지를 자신의 앞마당 삼아 뛰어놀 수 있고, 독자 역시 손가는 대로 아무 페이지나 펼치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 그러니까 <싱클레어>의 사서함인 이메일 주소 [email protected]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언제나 열려 있다는 말이다. 망설이지 말고 끼적이자. 참, 저 이메일 주소 아이디가 왜 ‘ebsband’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피터 편집장은 “예전에 밴드를 했는데 EBS가 그렇게 돈을 많이 준다더라. (웃음) <싱클레어> 멤버 별명인 ‘Early Birds’의 약자이기도 하다”라고. 50권째를 눈앞에 두고 있는 건 어쩌면 그 부지런함 때문이 아닐까.
<싱클레어> 피터 편집장
1. 잡지가 많이 창간되던 1999년 때였다. 음악과 글쓰기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었다.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어서 기존 매체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다. 마침 <싱클레어> 발행인이자 지인이던 이아립씨가 잡지 디자인 일을 하고 있었다. ‘함께 잡지를 만들어보자’고 주변에 얘기하고 다니니까 몇명씩 모일 수 있었다. 2. 초창기 때 ‘친구들이 좋아하는 단어 10가지’를 주제로 한 중학생 시리즈를 쓴 중학생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대학교에 진학해 우리한테 놀러온 적이 있었다. 또 편집부의 김혜진씨는 어린이 판타지 동화를 쓰는 작가인데, 피겨를 좋아해 <싱클레어> 10주년호에 혼자서 거대한 피겨 특집을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김연아 선수의 사진과 일러스트도 받고. 3. 없다. 4. 필자가 독자가 되고 독자가 필자가 되는 잡지. 매주 목요일에 발행되며 수요일부터 행복해지는 잡지. 5. <GQ> <한겨레21> <시사IN> <씨네21>을 자주 본다. 이외에도 많은 잡지를 즐겨 읽는다. 6. 사실 <싱클레어>도 1년 전부터 아이패드용 디지털 매거진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테스트 중이다. 멀티미디어가 가미된 잡지가 확실히 젊은 독자층을 유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종이에 대한 애착이 있는 독자들이 많은 까닭에 잡지 독자층은 예전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F.OUND>
‘찾다’라는 의미의 ‘found'를 그대로 옮겨오자. <F.OUND>는 잡지를 만드는 여섯명의 구성원들이 애타게 찾은 문화계, 예술계의 움직임을 총망라한 잡지다. 이런 맥락에서 아나운서 김주하와 애니메이션 뽀로로가 그리고 산악인 엄홍길이 같은 선상에서 표지 모델로 다루어질 수 있는 문화지기도 하다. 이 간단한 원리에 입각한 채 매진한 결과 <F.OUND>는 어느덧 성공적으로 1주년을 맞이했다. <F.OUND>의 모체는 잡지가 아니다. 클럽을 중심으로 한 파티문화만 있던 시절, DJ와 함께 음악을 듣고 함께 즐기는 문화로서의 파티를 기획했던 조현준 대표는 아티스트와의 네트워크를 알려줄 창구로 잡지를 구상했다. 기존 잡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대상들이 아닌 <F.OUND>가 주목하는 아티스트들을 선정, 그 부분에 대해선 입이 벌어질 정도로 지면을 할애했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딱딱한 연출 사진도 배제하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대상의 모습만을 담고자 노력했다. “초반에는 인터뷰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제 인맥을 총동원했죠”라는 조 대표의 말과 달리 한번 <F.OUND>의 깊이있는 인터뷰를 보면, 선뜻 참여해준다고 한다. “브랜드 스폰서가 있어도 수익구조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예요. 그럼 잡지는 뭔 돈으로 만드냐고요? 고생해서 다른 데서 벌어오면 또 만회할 방법이 생기죠.” 외국이 아닌 우리 아티스트, 한국의 콘텐츠를 소개하는 데 더 주력하고 싶다, 는 포부와 함께 한살된 <F.OUND>는 10년, 20년 지속될 수 있는 젊은 잡지를 꿈꾼다.
<F.OUND> 서옥선 편집장
1. 잡지는 많다. 그렇지만 내가 돈 내고 사고 싶은 잡지는 없더라. 주류 문화가 아니지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잡지를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조현준 대표와 뜻을 같이했다. 2. 인터뷰할 때 느낀다. 우린 우리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각자 만난다. 틀에 박힌 질문이 아니라 더 많은, 더 디테일한 질문이 가능하다. 내용도 충실해질 수 있고, 건전한 팬심 문화를 키울 수 있다. (웃음) 3. 태양 인터뷰. 아이돌의 다른 면을 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파헤쳤다. 4. 김중만 작가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줬다. “기존 잡지들이 너무 대세에 휩쓸린다”고. <나는 가수다>가 유행한다고 해도 <나는 가수다>를 다루지 않는 뚝심, 이 책을 읽을 독자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잡지. 5. 영국 음악잡지 <Q매거진>. 시의와 상관없이 그들이 지지하는 뮤지션이 있다. 존 레넌 생일일 때는 항상 존 레넌이 커버다! 6. 독립잡지는 유통이나 광고의 문제가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성향에 달려 있다. 광고 준다면 난 다 받을 거다. 그래서 그 돈으로 더 좋은 잡지를 만들 거다. 기존 라이센스잡지와의 차별화를 위해 한국문화와 아티스트를 알릴 수 있는 컨텐츠에 더 많이 주력할 예정이다.
<헤드에이크>
헤드에이크의 홈페이지(www.theheadache.co.kr) 첫 화면에는 큰 물음표만 덩그러니 떠 있다. 물음표,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이 20대들이 만들어가는 헤드에이크의 기본 컨셉이다. 0호에서 “졸업 뒤 뭐하세요?”라는 질문으로 문을 열었다. 본격 질문잡지를 표방하는 계간 <헤드에이크>는 지금까지 다섯권이 나왔다. 호마다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이때 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질문엽서를 홍대 주변에 위치한 카페 등에 비치하고 20대들의 고민이나 질문을 수집한다. 2호를 만들 때는 “시간 있어요?”라고 독자들의 24시간을 물었다. 최근에는 트위터를 통해 “갈 데 있어요?”라는 질문에 해당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소소한 소풍 같은 자리를 마련했다. 20대가 당면한 고민을 질문으로 풀어보는 <헤드에이크>의 멤버들도 언젠가는 30대가 된다. 30대가 되면 20대의 연대의식은 사라지는 걸까. 정지원 편집장과 김가영 에디터는 <헤드에이크>를 만들 때부터 이런 문제를 고민했다. 결론은 “우리랑 같이 늙어가는 잡지를 만들자”였다. “지금도 매호 잡지를 만들 때마다 골치가 아픈데 30대가 되면 더 큰 골치를 썩게 되지 않을까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김가영 에디터는 <헤드에이크>를 어떻게든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이 뭐냐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헤드에이크>라고 대답한다.
<헤드에이크> 김가영 에디터
1. 대학생 때 시작했다. 20대들이 해결하기 힘든 질문이 많았다. 다른 20대와 함께 그 질문을 던지고 공유하고 싶었다. 2. 가끔씩 장문의 메일이나 손으로 쓴 편지가 올 때가 있다. 매우 정성 들여서 쓴 것들인데 자신들의 고민과 같은 지점을 발견했다는 내용이다. 부담되기도 하지만 기분은 좋다. 3. <헤드에이크>는 사회적인 문제를 가볍게 던지려고 한다. 청년 주거권 문제와 퀴어 퍼레이드를 특집으로 다뤘다. 다른 잡지에서는 많이 소개되지 않은 내용이라 뿌듯하다. 4. 어려운 질문이다. (…) 이상적인 잡지는 없는 것 같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지 않나. (웃음) 5. 사실은 패션지를 많이 봤다. 요즘에는 독립잡지도 많이 본다. 정지원 편집장은 아저씨 취향의 잡지를 본다. <월간 바둑>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런 것들. 6. 책 자체의 시장이 좁아졌다고 말하는데 그래도 종의 질감과 아이패드의 화면은 다른 것 같다. 디지털 매체는 오려서 벽에 붙일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