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처절하게 힘들었고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인지 끝내고 나니 정말 시원하고 뿌듯합니다."
그는 심하게 앓고 난 후 모든 것을 게워낸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기운은 없지만, 회복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지난 5개월간 심신을 옥좼던 굴레를 벗어던지자 다시 제로 상태로 세팅된 듯 맑아보였다.
KBS '가시나무새'를 끝낸 김민정(29)을 최근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 5일 끝난 '가시나무새'는 고아 출신 서정은과 친모에 이어 양모에게도 버림받은 한유경의 기구한 운명과 질긴 인연을 그린 녹록지 않은 작품이었다.
두 여인 중 김민정이 연기한 인물은 한유경. 두 차례나 엄마에게 버림받으며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게 된 유경은 커서 친모에게 복수를 하고, 이어 자기가 낳은 딸을 병원에서 바로 버리면서 대를 이은 '패륜'을 저지르게 된다.
김민정은 "연기하는 내내 한유경이 태생적으로 악한 애가 아니라는 점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유경이의 모습을 시청자로부터 이해받기 위한 싸움이 치열했다"고 말했다.
"설정만 보면 정말 막장 드라마잖아요. 더구나 그 막장 요소의 중심에는 제가 연기한 유경이 있었고요. 그래서 감독님과 틈만 나면 정말 많은 토의를 했고 매 순간 진정성을 갖고 연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한유경은 태생적인 악녀가 아니라 상황에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으로 순백의 천사 같은 서정은(한혜진 분)과 늘 엮이게 되면서 한유경의 어둠은 더욱 부각됐다.
김민정은 "유경이를 이상한 애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유경이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예민하고 민감해서 미세한 차이에도 캐릭터의 성격이 달라지는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유경이가 한 짓이 나쁘긴 하지만 자기 엄마와 딸, 그 딸의 아버지까지 모두 정은이의 사람이 된 상황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그래서 유경이의 행동이 '그럴 수 있다'고 이해받기를 바랬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연기를 잘해야 하잖아요. 연기하며 했던 고민은 말로 다 못합니다. 정말 고된 시간들이었어요."
상처가 많아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던 유경은 기억에서 지웠던 딸 한별이가 잘 자라 눈앞에 나타나자 무너져내린다. 그후에는 딸을 버린 원죄와 딸 앞에서 샘솟는 모성애 사이에서 갈등하게된다. 출산은 물론, 시집도 안간 그가 연기하기에는 쉽지 않은 감성들이다.
"유경이 한별이를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을 찍으면서 전 그날 제 창자가 밖으로 다 나오는 줄 알았어요. 우는 연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날 우는 연기할 때는 마치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애끊는 심정이 그런 게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죠. 한별이를 만난 후 유경이의 가시들은 조금씩 구부러지게 됩니다."
유경은 극 후반부 심각한 병에 걸려 피까지 토한다. 다분히 상투적인 인과응보의 설정이었지만 그는 이에 대해 "그렇게 엄청난 일들을 겪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 아프지 않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결국 드라마는 유경이 사선까지 갔다가 돌아오며 모든 것을 놓고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5.9%로 출발한 시청률이 14.2%로 막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시청자가 이런 유경의 기막힌 인생유전을 흥미롭게 좇았기 때문이다.
"뒤로 갈수록 유경이가 진짜 못나고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안쓰러웠고요. 반면 정은이는 누구라도 품을 줄 아는 똑똑한 아이였어요."
1990년 8살의 나이에 아역으로 데뷔한 김민정은 어느새 연기경력 20년을 자랑한다. 인형 같은 외모와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그는 그간 에로배우, 사형수, 색기 넘치는 후궁 등 쉽지 않은 캐릭터를 도맡으며 내공을 다져왔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가시나무새'는 힘겨운 작품이었다.
그는 "한유경은 20년 연기 인생 최강의 캐릭터였다"며 웃었다.
"이렇게 가슴을 치며 울어야 하는 드라마가 얼마나 있겠나 싶어요. 독하게 마음먹고 했음에도 힘듦의 강도가 최고였습니다. 막판에는 제 눈에서 눈물이 다섯 줄기씩 뿜어져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감독님이 보시고 감탄하시더라고요.(웃음)"
그는 "배우들이 흔히 '촉으로 연기한다'는 말을 하는데 이번 작품은 대본이 너무 어려워 그 '촉'을 십분 활용했다"며 "내가 만들어서 해야 했던 행동과 표정들이 많았는데 그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많이 성장한 것 같고 그래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2009년 '외인구단' 촬영 당시 얻은 어깨 부상으로 본의 아니게 1년여 쉬어야 했던 그는 "지난해 11월 완치 판정을 받았다. 무방비 상태로 1년을 보내야해 속상했지만 덕분에 몸과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며 미소지었다.
"배우라는 직업이 굉장히 예민한 감성을 요구하니까 쉴 때 잘 비워두지 않으면 힘들어요. 지난 1년 쉬면서 마음을 많이 다스렸어요. 그런데 '가시나무새'로 복귀하면서 버렸던 예민한 감성들을 다시 다 끌어모아버렸네요.(웃음)"
그는 "다음 작품에서는 꼭 밝은 역을 해보고 싶다. 당분간은 우울한 모드에서 탈출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