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제인에어' '윈터스 본' '블랙스완' '트루그릿'(진정한 용기) 같은 영화들, 여성이 다 주인공이잖아요. 그런 강한 여성들이 나오는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좋은 여성감독들이 많이 나와서 마초적인 한국영화가 중화됐으면 좋겠어요. 저도 페미니스트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박찬경 감독은 최근 한국영화가 "지나치게 남성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다. 남성의 분노와 폭력이 지나치게 물신화되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30일 전주 영화의 거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박찬경 감독을 만났다. 그는 데뷔작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를 들고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이 영화는 한국장편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는 1988년 공장화재사건을 중심으로 시의원 선거, 4대강 사업, 안양의 민담 등 안양의 과거와 현재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뒤섞어 만든 영화다. 현실을 꿰뚫는 예기와 형식적 실험이 돋보인다. 영화는 경기도 안양공공예술재단의 지원으로 제작됐다.
"주어진 시간이 석달밖에 안됐어요. 충분한 시간이 없는데다가 제가 안양시민이 아니어서 자칫 겉핥기에 치우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큐를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기로 했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그의 문화적 뿌리는 설치미술, 사진, 미디어 아트다. 주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두고 사진과 설치,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섞어 작업했다. 지난 2004년 에르메스미술상 등을 받기도 했다.
"미술평론을 하다가 작업을 하게 됐어요. 제 작품은 미디어와 권력의 관계가 주요 주제였습니다. 미디어가 어떻게 권력을 행사하고,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역사적으로 사건을 기억하는가를 다뤘죠. 그때도 영화에 대한 게 많았어요. 작업하는 입장에서 미술과 영화를 크게 구분짓지 않았습니다."
미술과 영화의 차이점에 대해 좀더 부연 설명을 부탁하자 "관객의 성격이 조금 다르다. 영화 관객은 냉혹해 재미가 없으면 바로 외면한다. 반면 미술관을 찾는 관객들은 재미보다는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며 이 때문에 "영화를 만들때는 흥미를 잃지 않도록 편집과 촬영에 큰 신경을 쓰지만 미술을 할 때는 제멋대로 하는 경향이 있다"며 웃었다.
박찬경 감독은 지금까지 중단편 3편과 장편 1편을 만들었다. 영화를 만들수록 "장르 영화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나온다고 한다. 토속적 뿌리를 둔 공포영화 같은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단다.
"요즘 참고가 될 만한 영화들, 특히 장르 영화는 물불을 안가리고 보고 있어요. 배우들도 많이 알아야겠고…. 한국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전통 문화들을 현대적으로 잘 풀어낼 수 있는 작품들을 해보고 싶어요. 김기영 감독님처럼요. 그의 그러한 스타일과 정신은 거의 단절 된 것 같습니다."
영화를 하기까지는 형 박찬욱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프랑스문화원 등 걸작영화들을 볼 수 있는 곳을 함께 찾거나 음악, 문학 등 형으로부터 문화적인 자양분도 많이 얻었다고 했다.
"'파란 만장'을 찍으면서 형이랑 처음 작업해 봤는데, 현장에서 정확하고 빠르게 판단하는 모습에 솔직히 깜짝 놀랐어요. 미술하는 사람들은 느긋하게 천천히 생각하는 버릇이 있거든요. 아직 배워야할 게 많습니다."
박찬욱과 공동연출한 '파란 만장'은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 부문 금곰상을 받았다. 박찬경은 "아이폰으로 찍어서 전혀 상받을 것을 예상치 못했지만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장편영화 10편만 해보고 싶다"는 그는 언젠가는 한국 현대 미술가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한국의 현대미술가들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싶어요. 중요하고 재밌는 작가들이 많은데, 그분들을 조명해보고 싶습니다. 그림을 '읽으면서' 한국 현대사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도 꼭 해보고 싶습니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그는 "재미의 강도는 영화가 세고, 재미의 깊이는 미술이 더 크다"면서 "두 장르를 모두 병행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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