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파 리라는 여성의 인생 곡절을 담은 이 영화의 원제는 ‘피파 리의 은밀한 삶’(private lives)이다. 피파 리(로빈 라이트 펜)의 삶은 평범한 여자의 일생과 거리가 있다. 영화는 출판계 거물인 허브(앨런 아킨)와 피파 리 부부가 코네티컷의 한적한 주택가로 이사 온 첫날 저녁 식탁에서 시작된다. 지인 커플을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피파 리는 아름답고 지적이며 정숙한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어지는 과거 회상을 통해 관객은 그런 겉모습만이 그녀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눈치챌 수 있다. 남편 허브를 만나기 전까지 피파 리는 혼돈과 방황으로 점철된 성장기를 보낸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쳤던 엄마가 약물중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16살의 피파 리는 엄마와 갈등 끝에 가출한다. 이후 피파 리는 닥치는 대로 약물을 복용하고 비슷한 또래와 어울려 시간을 허비하다 우연히 허브를 만나게 된다. 이미 출판업자로 명성을 얻은 중년의 허브는 피파 리의 교육자이자 보호자이길 자처하고 피파 리는 그와 사랑에 빠진다. 이후 부단한 노력 끝에 교양있는 상류층 주부로 변신하지만 피파 리의 삶이 완전한 건 아니었다. 그녀가 앓는 몽유병은 그녀 삶의 균열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상처 입은 영혼을 지닌 연하의 남성(키아누 리브스)과의 로맨스가 싹튼다. 영화는 40여년에 걸친 한 여자의 인생을 효과적이고 세련되게 압축하고 있는데, 누군가의 인생을 주마간산 격으로 훑었다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특별한 삶을 구경하는 흥미로움이 그 느낌을 상쇄해준다. 선댄스에서 주목받은 <퍼스널 벨로시티>를 연출한 레베카 밀러 감독은 극작가 아서 밀러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