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뒤에 그가 있었다
“이렇게까지 관심을 받을 줄은 전혀 생각 못했다.” <아저씨>를 기획, 제작한 이태헌 오퍼스픽처스 대표는 선정 소식이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기대를 하면 실망이 큰 법이니, 내가 만든 영화에 아쉬워하지 말자는 평소의 지론으로 그는 영화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영화 자체보다 주변의 여러 여건 덕분에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사한다.” 확실히 <아저씨>는 이야기 자체보다 영화 외적인 요소들의 도움에 기대는 영화인 것 같다. “<아저씨>는 원빈의 육체와 예리한 무술지도, 그리고 카메라워크와 세트미술이 만나 비로소 탁월한 영화가 되었다. 그 전체를 조율하고 프로덕션하는 능력은 제작자의 그것이라고 생각한다”(황진미)는 평은 “순수한 액션 장르를 만들고 싶었다. 한국적인 것,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들을 제외하고 말이다”라는 이태헌 대표의 말과 일치한다. 그의 다음 선택은 송강호, 이나영이 캐스팅된 <하울링>과 박찬욱, 봉준호 감독과 함께 준비하는 <설국열차>다. 기대가 된다. 한 가지, 이 부문에서 아쉬운 점은 남는다. 설문 응답자 중 적지 않은 인원이 올해의 제작자 선정에 ’없음’이라고 답했다. 그만큼 눈에 띠는 기획, 프로덕션 능력을 발휘한 제작자가 올해 적었다는 방증이다.
잔혹한 일상의 충격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0점을 받은 동시에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시나리오. <시>를 올해의 시나리오로 꼽은 설문 응답자의 상당수가 ‘영진위의 0점 해프닝’을 언급했다. “영진위가 빚어낸 해프닝은 이 영화의 각본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현실적인 이유를 제공한다”(김지미), “이 시나리오에 빵점을 준 누군가를 놀려먹고 싶다”(듀나) 등의 의견들은 웃고 넘기기에 다소 씁쓸한 한국영화계의 풍경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시’가 왜 필요한지를 담담하게 따라가다가 갑자기 일상의 잔혹함이라는 망치에 두들겨맞는 충격을 주는, 그래서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김지미) <시>의 시나리오는 “이창동 감독과 그의 영화를 부정하는 입장마저도 긍정하게”(오세형) 한다. 이창동 감독이 다음 작품에서 세상의 어떤 부분에 현미경을 들이댈지가 궁금한 것도 어쩌면 이런 까닭인지도 모른다.
비정상적으로 비틀린 어둠 속 세상
“시각적으로 쾌감을 얻은 동시에 죄책감도 많이 느꼈다.” 이모개 촬영감독에게 희대의 살인마를 그린 <악마를 보았다>는 정신적으로 힘든 작업이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의형제>(2010) 등 대중적으로 접근했던 전작들과 달리 그는 <악마를 보았다>를 “갈 데까지 부딪혀보자는 심정으로 촬영”했다. 덕분에 이모개 촬영감독의 카메라에 담긴 세상은 비정상적으로 비틀린 감정과 균열로 가득했다. 이 중심에 ‘어둠’이 있었다. 선정 소감을 부탁하자 데뷔 때부터 함께해온 오승철 조명감독을 빼놓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어두운 장면이 많아 촬영 전부터 어떻게 표현할지 많이 고민했다. 줄곧 함께해서 항상 감사하다.” 두 콤비는 현재 강제규 감독의 신작 <마이 웨이>를 촬영하고 있다. “대하드라마 같은 영화로,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촬영이 많다.” 이모개 촬영감독의 2011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