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사건인가, 단순한 기업인수일 뿐인가. 지난 2월12일 로커스홀딩스(대표 박병무)가 시네마서비스(대표 김정상)를 인수한다는 발표를 한 뒤 충무로가 술렁이고 있다. 시네마서비스 인수에 관한 소식은 충무로 관계자들에게 의외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첫째로 1년 전 시네마서비스는 워버그핀커스로부터 거액의 외자를 유치해 또다른 회사가 대주주로 등장하리라 예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며, 둘째는 시네마서비스를 인수하는 주체가 영화를 포함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업체인 싸이더스의 대주주 로커스홀딩스라는 점 때문이다.
60% 지분 확보한 최대주주로 부상
사실 금융에 관한 지식이 해박한 사람이 아니라면 로커스홀딩스의 시네마서비스 인수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번 거래의 내용을 단순하게 바라본다면 로커스홀딩스의 주식과 시네마서비스의 주식을 맞바꾼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주식 맞바꾸기 거래, 즉 스와핑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흔히 사용되고 있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라는 방법을 이용했다. 제3자 배정이란 신주를 발행할 때 특별결의에 의해 특정한 제3자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최근 들어 기업간 주식을 맞교환할 때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번 거래도 로커스홀딩스가 시네마서비스의 주식을 인수키로 하고 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해 이 주식을 시네마서비스의 주주에게 넘기고 그 대금을 주식으로 지불받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로커스홀딩스는 이를 위해 발행가 398억여원에 해당하는 268만주를 신규로 발행해 시네마서비스의 최대주주였던 워버그핀커스와 강우석 감독에게 넘겨주게 된다. 주식배분은 워버그핀커스에 201만2807주, 강우석 감독 57만8116주로 이뤄지며, (주)메리디안 벤처파트너즈, 박중훈, 안성기 등 기존 시네마서비스 주주에게도 일부가 배정된다. 발행액인 1만4800원 기준으로 보면 워버그핀커스 약 298억원, 강우석 감독의 경우 약 85억5천만원에 해당한다. 곧 이 계약이 공식 체결되고 신주 등록절차를 마치는 3월 말이 되면 로커스홀딩스는 시네마서비스의 주식 약 60% 이상을 확보,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게 된다. 또 워버그핀커스와 강우석 감독은 각각 로커스홀딩스의 지분 25.8%, 7.4%를 소유하게 된다. 로커스홀딩스는 11일 시네마서비스, 워버그핀커스 등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상호양해각서(MOU)를 교환한 데 이어 12일 열린 긴급 이사회를 통해 제3자 배정에 의한 유상증자를 공시한 바 있다. 이번 거래는 약 1개월여 전부터 추진돼왔고, 한때 양자가 제시하는 조건이 워낙 차이가 나 무산될 뻔했으나 막후협상이 이뤄져 지난 11일 극적으로 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네마서비스의 지분 구조는 워버그핀커스가 약 47%, 강우석 감독이 약 45%, 사내사주 약 8% 정도로 구성돼 있는데, 이번 거래로 지분관계가 새롭게 정리되면 로커스홀딩스 60% 이상, 강우석 감독 약 30%, 사내사주 약 8% 등으로 바뀌게 된다. 결국 시네마서비스의 경영권이 로커스홀딩스로 넘어가게 된다. 또 로커스홀딩스의 지분구조도 크게 변화해 워버그핀커스의 지분율이 김형순 로커스 사장과 로커스보다 커져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당사자들은 이번 거래가 각자의 이해에 따른 소유구조 재편일 뿐이지 경영권 등의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로커스홀딩스는 일종의 지주회사일 뿐이기 때문에 시네마서비스를 별도의 업체로 인정해, 기존 김정상-강우석 라인의 경영체제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 시네마서비스쪽은 이번 거래를 통해 든든한 모회사를 얻었다. 워버그핀커스로부터 200억원 상당 투자를 받았지만 투자하는 영화가 많아 제작비 마련에 번번이 어려움을 겪던 시네마서비스는 언제든 모회사의 힘을 빌릴 수 있을 것이다. 로커스홀딩스 역시 얻은 게 많다. 지난해부터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지향하며 영화·가요·매니지먼트 업체 싸이더스를 인수했고 온게임넷, 웹시네마 등의 지분을 확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시네마서비스 인수는 엔터테인먼트 부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로커스홀딩스의 한 관계자는 “이번 인수는 애당초 계획에 있었던 것이다. 한데 어차피 싸이더스가 존재하는 이상 또 하나의 영화제작사를 인수하거나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제작사의 경우 개인기업이 많아 3년치 재무자료도 없는 회사도 많은 실정이다. 그런데 시네마서비스의 경우 국내 최대의 배급사인데다 지난해 워버그핀커스가 투자할 때 이미 자산실사 등을 실시해 검증된 기업이라고 판단했다”고 이야기한다.
누이좋고, 매부 좋고
물론 자산의 증식이라는 ‘순수한’ 자본의 논리가 이번 거래 성사의 밑바탕에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워버그핀커스 입장에서는 지난해 시네마서비스에 투자할 당시 액면가의 30배에 해당하는 주당 30만원을 지불했지만 이번 거래를 통해 주식을 주당 40만원으로 넘기게 돼 상당한 투자차액을 얻었으며, 코스닥에 상장된 로커스홀딩스 주식을 보유하게 돼 실속을 챙긴 셈이다. 또 로커스홀딩스도 워버그핀커스라는 세계적인 투자회사의 자본을 유치하게 됨으로써 기업의 자산가치가 상승한다는 이점을 안게 된다. 또 로커스홀딩스쪽은 20세기폭스 등 미국의 메이저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하고 있는 워버그핀커스의 참여가 현재 추진중인 외자유치 계획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충무로엔 이번 거래의 이면에 밝혀지지 않은 무엇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선 시네마서비스와 로커스홀딩스가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싸이더스의 관계가 관심의 초점이다. 싸이더스는 “이번 거래는 우리와 별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로커스홀딩스쪽이 “이번 인수로 영화의 제작과 배급이라는 사이클을 원활하게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으로 미뤄볼 때, 시네마서비스와 싸이더스는 본격적인 제휴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들은 최근들어 배급에서 시네마서비스가 CJ엔터테인먼트에 고전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 인수작업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비교적 좋은 품질의 콘텐츠를 만들어온 싸이더스와 혈맹이 됨으로써 확실한 배급작을 확보하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로커스홀딩스를 중심으로 시네마서비스와 싸이더스의 '피'가 섞인 마당에 중장기적으로 두 업체가 하나의 대오를 이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형화, 산업화 시대가 온다
어찌됐든 로커스홀딩스의 시네마서비스 인수가 지난해 이후로 두드러지던 영화계와 금융자본의 결합을 가속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만큼은 확실하다. 시네마서비스의 경쟁사라 할 수 있는 CJ나 튜브도 이번 거래를 반기는 분위기다. “영화계가 산업화되는 증거”라는 것이다. 튜브의 한 관계자는 “영화계도 기업공개를 통해 안정적인 자본시장에 진출한다면 전반적인 제작, 투자, 배급환경이 좋아질 것이다. 영화 한두편 흥행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양질의 작품을 꾸준히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영화사가 자기지분을 내주는 대신 코스닥 상장주를 확보한다는 것은 영화사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걸 반영한다. CJ는 “코스닥 시장이 좋아지면 언제든 등록할 것”이라는 입장이고 튜브도 “내년엔 코스닥에 진출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런 상황은 영화계의 대형화, 산업화를 촉진할 것이다. 메이저 중심체제가 전보다 확고해질 것이며 금융자본들도 영화계의 우량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할 것이다. 영화계와 금융자본은 지금 본격적인 짝짓기의 계절에 들어섰다.
남동철 기자 [email protected]·
문석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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