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새 노조의 파업 첫날 동영상을 보니 홈쇼핑 주방용품 광고 리듬이 자꾸 맴돈다. 다지고 돌리고 섞고… 아, 이게 아니지. 가르고 찍고 씌우고…. 두해 전 KBS 본관 앞 계단에는 ‘지켜주겠다’는 촛불이 모였는데 이날은 ‘지키겠다’는 슬로건이 씌인 흰 띠로 꽉 찼다. 음, 일단 시각적으로 괜찮군. 젊은 기자, PD들 대부분이 모여서 그런가 살짝 에지까지 있어 보였다. 눈사람 박대기 기자도 보였다.
김인규 사장님은 방송 차질이 빚어지면 시청자에게 일부 조합원의 불법파업 때문임을 자막으로 알리라는 지시를 내리셨다는데, 중노위 조정까지 거치고도 그야말로 단협 결렬에 따라 예고하고 돌입한, 절차 제대로 다 밟은 파업 아닌가? 오히려 KBS 역사상 이런 합!법!파업은 처음일걸. 임단협 외에 공정방송 쟁취나 조직개편 저지 등을 주장하는 걸 두고 정치적이니까 불법이라고 걸고넘어지시는 모양인데, 에이 사장님, 공기업 노조가 단지 임금투쟁만 하면 요즘 세상에 얼마나 욕먹는지 잘 아시면서. 수신료도 왕창 올리시려는 이 마당에 말입니다. 어쨌든 ‘일부’로 편 가르고 ‘불법’이라 뒤집어씌우고, 그전에 이미 파면·해임·징계·전출로 찍어내기까지 하셨으니(심지어 이번에는 로비에 줄 잘 맞춰 앉으려는 노조원들을 청원경찰 동원해 들어내기까지) 어쨌든 리듬감있게 삼박자를 다 채우셨네요.
편 가르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독자들께 양해구한다. 세종시 수정안이 이렇게 빨리 본회의에서 부결되다니. 헉. 지난주 칼럼에서 질질 끌며 정적들의 진을 빼거나 혹시라도 통과되는 요행을 얻으려는 거냐고 씹었는데, 내가 그들의 수준을 너무 정상적으로 본 모양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이명박 편’ 의원들은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의 말대로 ‘찬성 안 하는 사람 이름 적어내기’ 목적으로 본회의 부의를 밀어붙였던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모든 편 가르기가 구리거나 재미없는 것만은 아니다. 진보신당 당원들의 ‘성분’을 (아마도) 사회주의자, 사민주의자, 자유주의자로 가른 김규항 아저씨의 얼마 전 <한겨레> 칼럼을, 동일성에 대한 강박관념이라고 비판한 진중권 아저씨의 지난주 씨네리 칼럼은 근래 보기 드문 신선함과 재미를 선사했다. 이 대목에서 ‘언캐니’한 질문 하나. 진보정당 당적도 없으면서 틈만 나면 집안일인 양 감정이입하는 나를 포함한 상당수 사람들은 누구~ 편일까? (정답: 제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