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어려운 건 줄 알았더라면….” 임순례 감독의 엄살 아닌 엄살이다. 지난 2월22일 이대 아트 하우스 모모의 한 상영관 내부. 제1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트레일러에 출연을 자원한 시민 배우 70명이 단체로 연기를 하고 있다. 미리 흰옷으로 맞춰 입은 시민들이 빨간색의 좌석에 앉아 숫자‘12’를 만드는 게 이날 촬영의 목표다.
간단해 보이지만, 신경쓰이는 게 한둘이 아니다. ‘1’은 열댓명의 사람들이 일자로 그대로 앉으면 그만인데,‘2’의 곡선 부분을 정확하게 맞추기가 어렵다는 게 첫 번째 문제. 두 번째 문제는 배우가 전문배우가 아닌 시민들이라는 것이다. 촬영 며칠 전부터 영화제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했고, 오전 8시에 칼같이 현장을 찾은 여성영화제의 열성 팬이라 감독으로선 이들에게 조금의 불편함이 없도록 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도 감독은 감독이다.“더. 더. 더 누워야 해요”라며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다가,“촬영시간이 오래 걸리죠? 박수 열번만 치고 갑시다” 하며 지루해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직접 달래기도 한다. ‘2’의 머리 부분에 해당되는 좌석에 앉은 젊은 주부 김수현(33)씨는 6개월된 아기를 달래느라, 또 연기하느라 정신없다. 그래도 그녀는 “평소 좋아하는 임순례 감독님을 직접 뵈어 즐겁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기를 10여 차례, 감독의 우렁찬 “오케이” 사인이 극장 안을 가득 울린다.
극장 청소부 아줌마, 레즈비언 커플,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 여성, 할머니, 여고생 등 모든 여성이 세계를 보듬어안고, 타자를 환대하는 자세를 가진다는 내용의 이 트레일러는 4월8일부터 15일까지 8일간 신촌 아트레온극장에서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