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언어의 가능성을 신봉하는 사람이 작가고, 시네마의 힘을 믿는 사람이 영화감독이라고 우리는 단정하기 쉽다. 그러나 그 역 또한 사실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도구가 가진 결함과 연약함을 누구보다 낱낱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술가들의 일이란 어쩌면 그 불완전함의 굴곡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들은 도달불능점을 기어코 손으로 감촉하는 일이 이 세계에서 그나마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임을 수긍하고 실천한다. 궁극적으로 실패함으로써 자신의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을 증명한다. 거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무용한 아름다움이다. 소설가 김연수도 본디 문자보다 숫자와 음표를 훨씬 신뢰하는 사람이다. 단편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2005)에 수록한 단편 <뿌넝숴(不能說)>의 제목이 요약하듯, 1994년 등단 이래 김연수는 소설로 가 닿을 수 없는 진실이 있다는 이야기를 쉬지 않고 소설로 써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한번 펜을 대면 계속 떼지 않고 써야만 했다. 그래도 좋았다.” 데뷔작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에 묘사된 어둠 속에서 글을 쓰는 장면은 그래서 작가 김연수의 책상을 상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김연수는 지금까지 장편소설 6편, 산문집 2권, 단편집 4권을 발표했으며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두해가 멀다하고 수상했다. 절친한 작가 김중혁의 우스개말마따나 호를 다산(多産)으로 지어야 할지 다상(多賞)으로 붙여야 할지 망설여지는 지경이다. 비결은 심플하다. 김연수는 창의력은 그저 한번 더 고치는 데에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눠 쓰고 조금씩 쓰고 오래 쓰면, 결국 많이 쓰게 된다고 말한다. 2000년대 들어 김연수는 견고한 고정독자층을 보유한 소설가로 자리를 굳혔다. 지난해 9월 출간된 <세상의 끝, 여자친구>는 발간 6개월이 지난 현재 4만부가 넘게 읽혀, 지금까지 김연수의 책 중 서점에서 가장 사랑받은 책이 될 전망이다. 결코 말랑하지 않은 소설을 쓰는 이 작가를 독자 대중이 흔연히 끌어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는 세련되고 유머러스한 그의 에세이와 거기 내비치는 작가의 퍼스낼리티다. <한겨레> 김은형 기자는 김연수의 친화력을 “정통파 소설을 쓰지만 일상의 문화에도 관심이 많고 문학적 후광을 의식하지 않는 친근한 인상”에서 본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호소력은 김연수 소설의 구조와 근원적인 온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많은 소설 속에서 세계를 인식하고 돌파하려고 애쓰는 주인공의 여정은 연애의 문법을 취한다. 김연수에게 사랑은 “누군가를 위해 뭔가 하려 든다는 점에서” 사뭇 윤리적인 행위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를 가리켜 “남녀의 사랑이라는 영역을 세계의 모형으로 보고, 그 영역 안에서 문제를 설정하고 해결하는 방식을 찾는다는 점에서 김연수의 소설은 냉소와 거리가 멀다”고 평한다.
서로 스치며 공명하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별자리처럼 신중히 병치해 구성한 김연수의 소설을 읽어보면, 이 작가가 얼마나 3인칭 전지적 시점의 불가피한 허세와 1인칭 주인공 시점에 따르는 무책임함을 결벽하게 꺼리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소설이 향하는 목적지는 처음부터 명확히 진실의 언저리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언저리는 엄격한 좌표의 좁은 장소다. 거기 진입하기 위해 김연수는 입수 가능한 모든 중립적 사실을 취재해 동원하고 메소드 배우처럼 몰입한다. 인터뷰 도중 김연수는 대학 시절의 도락 하나를 들려주었다. “신촌에서 북악터널을 거쳐 한 바퀴 도는 8번 버스를 타고 동네 구경하길 좋아했어요. 집집마다 궁금한 거죠. 저기 빨래를 너는 사람은 5분 전에 뭘 했을까? 저 여자는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알려면 다가가서 물어보아야 하는데, 물어보지 않은 채 알고 싶었어요.” 묻지 않고 이해하는 일, 직접 물어서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진실들. 그것이 김연수가 생각하는 소설의 정체인 것 같았다.
-지난해 말 <한국일보> 칼럼에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보고 있다고 쓰셨는데, 지금도 읽고 계세요? =나이도 들고 니체 전집을 다시 읽어보자고 결심했는데 그전에 헤겔을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러려면 또 칸트부터 읽어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계산을 해봤더니 하루에 50쪽씩 읽으면 칸트부터 니체까지 올해 안에 읽을 수 있겠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50쪽 읽기가 쉽지 않았어요. 일단 <순수이성비판>은 읽었고 <실천이성비판>을 읽어야 하는데, 참, 실천하기가 어렵네요. (웃음) 아는 건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자. 뭐 그런 이야기인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일할 분량과 마감이 정해지면 남은 날짜로 작업량을 등분해서 계획하는 습관이 있으시죠? 김중혁 작가님 칼럼을 보면 작가님이 담배를 끊을 때 개비 수를 나눠서 조금씩 줄였다는 일화도 있었고요. =제가 사람의 의지를 잘 믿지 않거든요. 결심은 대체로 끝까지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많은 걸 요구하지 않고 조금씩만 요구해요. 하루에 50쪽을 읽기로 했다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되면 양을 줄여서 다시 계획해요. 저, 조삼모사 굉장히 좋아해요. (웃음) 이렇게 해보고 안되면 다른 식으로, 될지 모르지만 해보는 거죠. 저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굉장히 관대해요. 설계 안에서 대충하는 걸 좋아해요.
언젠가 코믹 소설 쓰고 싶어
-해마다 꼭 해야 할 일을 연초에 정하십니까? 지난달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해 올해 할 일로 북극에 가서 오로라를 보며 노래 부르는 계획을 꼽으셨어요. =살다보니 이상하게도 제가 막연히 뭘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결국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엉뚱한 것도 되는지 한번 시험해보려고요. (웃음) 희곡을 써서 올해 안에 연극 무대에 올리고 그 공연을 구경하겠다는 계획도 있어요. 희곡은 쓴 적도 없고 그럴 뜻도 없었는데, 우연히 만난 장정일 형이 희곡운동을 역설하시더라고요. 술 마시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없었는데 어느 날 신문을 보니 장정일 형이 내는 희곡집 다음호에 저도 기고한다는 기사가 났더라고요. 이왕 이리 된 거 재미있겠다 싶어서 한번 써볼까 해요. 전 결정되면 그냥 가요. 오해로 인한 결정이라도. (웃음)
-지난해 <창작과 비평>에 새 장편 <바다 쪽으로 세 걸음>의 일부를 연재하셨습니다. 매우 두꺼운 부피의 장편이 될 것 같은데, 어떤 구성인가요? =지금까지 1/4을 썼고 전체적으로 3600매가량이 될 거예요. 두권으로 내고 싶어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간 형제 이야기인데, 형은 순교하는 신부가 되고 동생은 상인이 돼요. 연재분은 동생의 시점으로 어린 시절을 그렸고 다음 장에서는 일본에 간 소년들이 포르투갈에서 온 신부에게 가톨릭을 배우다가 형제끼리 이별하게 돼요. 이 대목은 신부의 시점으로 쓸 가능성이 많아요. 8년 전 처음 구상했는데, <대한제국 멸망사>라는 책의 각주에서 “신부가 전쟁고아 형제를 데려다 하나를 신부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한 구절을 본 것이 시초였어요.
-<꾿빠이 이상> <밤은 노래한다>에 이어 세 번째 역사소설인데요. “30대에는 역사소설을 쓰겠다”는 옛날 인터뷰를 봤습니다. 작품 활동도 장기적으로 계획하시나봅니다. =알고 보니 제가 계획적인 사람이네요. (웃음) 역사소설이라기보다 자료를 열심히 찾아서 진지하게 쓰는 소설은 기력이 쇠하는 마흔 이후에는 어려울 테니 30대에 쓰기로 한 거예요. 외로워도 외로운 줄 모르고 쓸 수 있을 때 힘든 소설을 쓰자는 거였죠. 나이가 들면 코믹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제가 되게… (망설임) 웃기거든요. 칼럼에서는 억압이 없으니 그런 면이 드러나죠. 단, 소설에서는 젊어서 진지할 대로 진지하다가 점점 가벼워지고 싶었어요.
‘카더라’ 문학 스타일이랄까...
-<씨네21>에 김중혁 작가님과 나란히 연재한 칼럼 ‘나의 친구 그의 영화’가 끝났습니다. 1년 연재를 마친 지금도 예전과 비슷하게 영화를 싫어하시나요? (웃음) 변화가 있었다면요. =그냥, 생각보다는 영화를 열심히들 만든다는 걸 깨달았어요. (좌중 웃음)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예전에는 서사적으로 말이 안되거나 뻔하면 견디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화면을 즐길 줄 알게 됐어요.
-진지한 영화 이야기를 쓴 건 아니라고 하시지만 굳이 논쟁적인 글을 꼽자면 <워낭소리>에 대한 칼럼이 생각나요. “웰메이드가 곧 진정성”이라는 견해였는데요. =그 글을 쓴 계기는 용산참사였어요. 용산을 어떻게 소설로 쓸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는데 답이 잘 안 나왔어요. 시급한 주제니 원칙대로 하면 가독성은 떨어져도 진정성이 담긴 르포 형식으로 써야 하지만 과연 그렇게 쓰는 길밖에 없을까 고민했어요. 과거 방식으로 쓰지 않는 저같은 소설가도 쓸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다양한 방식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봤어요. 말이 많았던 영화지만 어쨌든 전세계에 뭄바이 빈민의 상황을 전달해줬다고 생각했어요. 용산도 어떤 식으로든 계속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전달 양식을 일단 잘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광주항쟁, 한국전쟁을 다룬 소설도 이제 미학적으로 성숙한 작품이 나와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단편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수록된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가 용산참사를 거론한 소설인데요. 그렇다면 이 단편은. 희생자의 유족인 윤현구군의 편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그것을 에워싼 텍스트를 만든 경우인가요? =원래 제겐 사회적 자아가 있고 소설 쓰는 자아가 있는데요. 처음 소설에 들어갈 때는 사회적 자아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될 때>는 원래, 소년의 편지가 그대로 나가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 뒤에 전문을 넣었어요. 그러다가 소설 쓰는 자아가 “너무 투박하다”고 간섭을 하면서 본문으로 편지 내용을 올리고 절충했죠. 같은 책에 실린 단편 <달로 간 코미디언>도 권투선수 김득구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강하다보니 계속 자문에 들어갔죠. 과연 네가 이것을 표현할 수 있겠느냐. 그럼 못 쓴다는 답이 나와요. 경험이 없는 내가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사실을 독자에게 믿으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거죠. 그래서 계속 회의하면서 가능한 방식을 모색해서 썼어요.
-결국 <달로 간 코미디언>은 김득구 선수의 주변에 있던 코미디언의 이야기를 그 딸을 통해서, 다시 그녀와 사귄 ‘나’의 시점으로 전한 셈인데요. =몇 다리를 건너서 오는 거죠. 그것이 소설가가 처한 위치라고 봐요. 아까 ‘웰메이드’ 문제도 마찬가진데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에 기본적으로 거부감을 갖는 거죠. 전 사람들이 ‘이해한다’고 말할 때 그가 가슴아파한다는 건 알겠지만 그 말을 믿진 않아요. 더구나 글을 쓸 경우는 더욱 회의적이에요. 소설이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가가 이해해서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작업인데 앞도 뒤도 막혀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전해 듣는 이야기의 방식으로 가요. 맞아요. ‘카더라’ 문학에 가깝죠. (웃음) 즉, 소설의 화자가 편집자와 비슷해요. 1인칭 화자의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의 눈을 통해 어떤 사건을 서술하죠. 그 방식이 아니면 저로서는 소설을 쓸 수가 없어요. 흔히 한국소설의 문제점으로 3인칭 시점을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을 많이 지적하는데, 제겐 그렇게 쓰면 안된다는 오래된 생각이 있어요. 약간은 윤리적인.
사랑, 이해할 수 없어도 노력하는 것
-최근작인 단편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은 일본 밴드 이름에서 제목을 따오셨다죠. 보는 이들이 나름대로 상상하게 만드는 제목입니다. 제 경우엔 ‘세계의 끝’이란 나와 타인 사이의 국경 같은 것인데 사랑하는 사람이 자아를 초월하면서 국경의 피안에 서 있는 연인을 보게 되는 그림을 상상했어요. =연애는 한 사람이 자신의 개성으로부터 심리적으로 끝까지 가보는 행위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자꾸 다른 인간이 되려는 노력을 하고 자기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놀라게 되는 거죠. 사실 책에 실린 동명의 단편은 예쁜 이야기인데, 저에게 있어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이미지에 더 가까운 작품은 <나는 유령작가입니다>(2005)에 수록된 단편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에요. 이 소설을 보면 화자의 꿈속에 죽은 여자친구가 나타나 둘이서 가보았던 이상한 나라에 관해 이야기해요. 그런데 화자는 그 나라를 도무지 기억하지 못해요. 말하자면 그게 제가 제일 쓰고 싶은 연애의 장면이었어요.
-알고 보면 ‘세계의 끝’은 작가님의 작품에서 매우 오래된 개념입니다. 등단 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1994)에도 등장하더군요. =저도 놀랐어요. 그보다 앞서 시 등단작으로 쓴 <강화에 대하여>(1993)의 마지막 행도 “세계의 끝”이더라고요. (웃음)
-가보았던 여행지 중에 ‘땅끝’이라는 느낌을 받은 곳이 있습니까? =<바다 쪽으로 세 걸음>을 취재하러 간 포르투갈에서요. 16세기에 희망봉을 지나 동양으로 간 신부들이 출항한 벨렘이란 곳에 가서 당대의 눈으로 상상해봤는데요. 스무살 정도 되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일본까지 2년이 걸리는 항해를 떠나는 기분이란 마치 살아서는 못 돌아올 게 분명한 우주비행사 같았을 거라는 짐작이 들었어요.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실린 단편들을 작가님의 과거 작품과 비교하면 줄거리는 같은데 마지막 딱 한 장면이 추가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에요. 즉, 타인을 이해하고 세계를 파악하기는 여전히 어려운데 결말에 이르러 두 사람이 같이 노을을 보는 정도의 소통이 보이는 거죠. =맞아요. 앞서 낸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제가 거기까지 확신을 못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변화한 것이죠.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나면 마지막 장면에서 두 인물이 정말 대화를 시작할지도 모르죠.
-현재 선생님의 생각은 우리가 노력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쪽인가요, 아니면 노력하더라도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노력하는 일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쪽인가요? =후자에 가깝죠. 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겨요. “사랑한다면 노력해야 된다”고 썼더니 사랑하면 희생하고 인내하라는 뜻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말하는 노력은 ‘try'에 가깝거든요. 가망이 없는데 한번 더 물어나보는 행위죠. 포기하지 않는 것 자체가 사랑의 행위라고 생각해요. 사랑의 결과로 얻게 되는 것에 대해선 관심이 없어요.
-그렇다면 ‘실패한 사랑’이라든가 ‘성공한 사랑’이라는 구분은 의미가 없겠군요. =오히려 실패한 쪽이 사랑했다는 느낌이 훨씬 강한 거죠. 성공한 쪽은 과정을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으니까요.
맛없는 음식에도 이야기는 있는 법
-성함의 한 글자를 이상의 작품 <단발>에 나오는 이름에 따라 고치셨다고요. 넘칠 연(衍)자가 본래 이름의 한자가 아닙니까? =원래는 ‘영’자예요. ‘연’자는 고교 시절 친구들한테 편지 쓸 때 붙이던 이름이었는데, 투고를 하면서 가명을 쓰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치기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글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언제라도 글을 그만두면 난 이 사람과는 관계가 없다고 끝장을 내고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자세였나봐요. (웃음)
-김천역 앞 뉴욕제과점에서 자라셨어요. 빵집의 어떤 풍경이 머리에 남아 있나요? =갓 구운 빵의 냄새가 참 압도적이었죠. 온갖 사람들이 왔다갔어요. 같이 온 여자를 때리는 남자, 삶의 의욕이 없다고 누나에게 고백하는 동생…. 밤 11시에 가게 문을 닫았는데 저는 매일 9시 반쯤 엄마를 모시러 가서 그런 모습들을 바라봤어요. 10시 반이 되면 엄마가 그날의 매상을 계산했어요. 전등을 끄고 쓰레기를 내놓고 가게 문을 잠근 다음 흔들어보는 그 과정이 참 좋았어요. 지금도 가겟집 아들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웃음) 그리고 저는 맛집 찾아다니는 사람이 싫어요. 우리집 빵이 맛이 없었거든요. (웃음) 맛없는 음식에는 그것대로 이야기가 있어요.
-역 앞이 집이라는 사실은 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마음에 바람이 많이 들죠. 역 앞에는 항상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야반도주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부산으로 가출하는 친구들이 새벽 2시 완행열차를 우리집에서 술 마시면서 기다리다가 떠나곤 했어요. 저는 정작 가출을 한 적이 없는데 떠나봐야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고 서울로 대학가는 게 확실한 가출이라고 생각했죠. 역에 플라스틱 칩으로 붙여놓은 상·하행선의 종착역 이름을 보는 걸 좋아했어요. 안 가본 데를 가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굉장히 강했죠.
-에세이를 읽어보면 펜팔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같은 이유인가요? =초등학생 때는 서울, 부산의 여학생들과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프랑스, 일본, 호주 그리고 동유럽 어딘가의 친구들과 펜팔을 했어요. 편지를 받고 나면 그들이 사는 도시를 지도에서 찾아보고 어떤 곳일까 상상하곤 했어요. 외삼촌들이 일본에 사셨는데 명절이 되면 외가에 가셨던 부모님이 자고 있는 우리를 깨워 외삼촌들이 가져온 선물을 주셨어요. 바다 건너 온 물건들의 냄새, 이국 문자가 주는 자극이 대단했어요.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커다란 욕망, 그 물건들이 온 곳이 어딘지 알고 싶은 갈망이 강했어요.
-고등학교에서 이과 공부를 했고 천문학과를 지망하다가 영문과에 진학하셨습니다. 이과적 성향이 문장이나 세계관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다고 보세요? =계획하는 점, 입력하는 만큼 출력된다고 믿는 점이요. 원하던 대로 천문학과를 갔다면 원래 꿈꾼 대로 인생이 진행된 거니까 거기서 주류가 되려고 노력했을 것 같아요. 어쨌든 경쟁은 좋아하니까요. 그런데 진로가 중간에 삐끗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장소로 오게 된 결과, 국외자의 태도 같은 것이 생겼어요. 나는 어려서부터 문학을 꿈꾼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아직도 있는 거죠. 사실 계획을 세워서 글쓴다는 것이 황당한 소리잖아요? 그런데 저는 다른 데서 왔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저는 소설가는 타고난다는 말에 동의한 적이 없어요. 전 노력해서 소설가가 됐으니까요.
“소설은, 개인으로서 쓴 적이 없어요”
-산문과 소설을, 가볍게 쓰는 글과 힘주어 쓰는 글을 뚜렷이 구분하는 태도가 보입니다. 소설에 대해서는 각별히 경건한 것 같습니다. =천재의 소설이냐 소설이 아니냐가 아니라 진짜 훌륭한 소설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늘 그와 비슷한 소설을 추구하지만 항상 실패하죠. 그리고 다음에는 더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에세이는 평상시의 자아로 쓰는 글인데, 소설을 쓸 때는 개인으로서 쓴 적이 없어요.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소설 속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는 저보다 인생 전반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이야기를 해석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책도 많이 보고 기술적인 것도 배우고 경험도 하죠. 그대로의 저는 제가 쓰고자 하는 소설을 쓸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제 자신이 점점 소설 쓰는 자아로 변했고 제가 나아지고 있어요. 거기에 대해서는 거의 간증을 할 수도 있어요. (웃음)
-보통은 그냥 “작가로서 성숙했다”고 표현할 텐데 복잡하네요. 같은 사람이지만 소설을 쓰는 순간의 자신은 다른 존재라고 여기시나 봅니다. =왜 소설 쓰는 자아와 제 자아가 다르냐면 창작하는 과정에 단절이 있어요. 처음 사회적 자아로서 뭘 쓰겠다고 결심하고 나면 먼저 스토리를 만드는데 쓰레기 같은 것들이 나와요. 평소의 내가 얼마나 후진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죠. 마감을 앞두고 잠도 안 자고 더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고쳐 쓰다 뻗어버리는데, 내 자만심도, 습득한 지식도 다 부정하고 아무것도 없이 깡그리 벗겨진 그 상태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예요. 그러니 평상시의 저와는 다른 존재가 썼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대표적인 예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에요. 그 작품을 끝내는 순간에는 “이것은 소설임에 틀림없다”는 환희가 들었어요. 독자들도 제 에세이와 소설이 다르다는 걸 알아요. 에세이와 평소의 저를 좋아하지만 소설은 어려워하는 분도 있어요. 저 역시 독자들을 만나 소설을 설명할 때면 이미 평소의 자아로 돌아가 있기 때문에 남이 쓴 작품을 말하듯 어색해요. 문예지에 연재할 때는, 첫회가 제일 쉬워요. 마감하고 한달 놀고 한달 자료 찾고 마지막 달에 2회분을 쓰려고 첫회를 읽어보면 너무 잘 썼어요. 도저히 이렇게 쓸 수가 없고 남이 써줬다고 생각해도 할 말이 없겠다 싶어요. 그렇게 비참해하다가 간신히 쓰죠. 그리고 3회에 가면 또 가까스로 썼다고 여긴 2회분이 훌륭해 보여요. 그 상황이 반복되는 거죠. (웃음)
-달리기를 꾸준히 하시죠? 작가님이 번역하신 조지 시언의 <달리기와 존재하기>를 보면 고통과 친숙하다는 점에서 작가와 러너는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와요. 본인의 경험은 어떠세요? =소설 쓰면 성격도 몸도 바뀌어요. 시인은 단거리에 강해요. 행동과 사고가 민첩하고 말도 시니컬하죠. 소설가는 장거리주자예요. 항상 뒷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술을 마셔도 소설가는 도중에 도망가는데 서사가 없는 시인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죠. (웃음) 마라톤을 하려면 최소한 한달의 계획이 필요해요. 보통 12주 프로그램이 지시하는 대로 월요일은 3km, 화요일은 5km, 수요일은 사이클, 하는 식으로 정확히 훈련하면 누구든 무조건 완주를 하게 돼 있어요. 언젠가 그렇게 연습을 한 끝에 대회 출발선에 섰는데 그날 내가 완주를 할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즉, 연습 과정에서 상황은 끝난 거죠. 그런 날의 달리기는 행복한 확인의 작업이에요. 소설은 쓰는 과정에 모든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건 마라톤의 영향이에요.
-같은 일산에 사시는 김훈 선생님과 자주 어울리신다고 들었어요. 어느 부분에서 잘 맞으세요? =기자를 하셨던 김훈 선생님도 저처럼 ‘외부’에서 왔다는 인식이 있으세요. 글로 쓸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생각도 서로 비슷하죠. 워낙 후배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시고요.
‘더 문학적으로’를 탐내다
-세 번째 소설 <스무살>(2000)의 작가 후기를 보면 “94년부터 97년까지 느꼈던 모종의 불안감”을 그렸다고 쓰셨습니다. 어떤 불안감이었습니까? =1993년 제대하고 곧장 시로 등단했으니 문인입네 하고 지냈어요. 94년부터 97년까지는 저도 청춘이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낙관적인 태도가 만연돼 ‘놀기 좋은’ 때였던 것 같아요. 91년 이전 시대와 이제 완전히 결별해도 상관이 없겠다, 멋지고 매끄러운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거죠. 1995년을 정점으로 대중문화가 득세하면서 부화뇌동해 대중음악 평론가를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거기엔 원칙적 불안감이 존재했는데, 그것은 89년에 대학에 들어가 91년까지 겪었던 일의 그림자 같은 거예요. 웃고 있는데 어딘가 씁쓸한 썩소 같은 거죠. 그러다 1997년에 개인적으로 취직을 해야 할 상황이 됐고 사회도 IMF를 맞으며 위축됐죠. 그때 세상이 계속 좋아지기만 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전까지 제가 쓴 소설에 대해서도 다들 쓰는 대로 따라 쓴 게 아닐까 하는 심각한 회의를 했고요.
-2001년작 <꾿빠이 이상>이 작가 이력에서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 대해 “한국 문학의 아킬레스건인 지적 소설의 장을 열었다”는 맥락의 호평이 많았는데요. 작가 입장에서도 한국에 드문 스타일을 시도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나요? =<출판저널>에 기자로 다니면서 기사체로 쓴 소설이에요. 당시, 진지한 소설은 다 죽었으니 장르 소설로 가지 않으면 문학도 종말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승했고 소설가들도 거기에 좀 혹했어요. 그러나 그때 제가 좋아했던 외국 소설들- 줄리언 반즈, 폴 오스터, A. S. 바이어트 같은 2차대전 이후 출생 작가들이 쓴 현대 소설들은 굉장히 문학적인 소설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왜 한국에서만 바꿔야 한다고 하는지 반감이 컸어요. 오히려 영화 같은 장르를 곁눈질할 게 아니라 더욱 문학적으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2002)는 자전적 내용을 담은 소설집인데요. 왜 하필 세권의 장편과 한권의 단편집을 낸 그 시점에서 뿌리를 돌아보게 됐는지 궁금했습니다. =사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는 단편 <뉴욕제과점>만 자전적이고 나머지 단편은 자연인 김연수의 개성과 사상을 완전히 배제하고 작가로서 만들어낸 이야기로만 구성한 작품이에요. 배경만 80년대 김천일 뿐이죠. 네가 작가라면 어디 한번 이야기만으로 구성해보라는 생각이었어요. 처음으로 소설 쓰는 자아가 생긴 작품이죠. <꾿빠이 이상>과 더불어 소설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확인해본 시기예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운동권 학생이 겪은 일을 쓰지만, 보통 후일담 소설과 달리 작가 본인의 경험을 쓴 것이 아니고 회한의 정서도 없습니다. 고백이나 사담을 소설에서 경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스무 살>을 쓰고 나니 이게 뭘까 싶었어요. 내 자신은 그렇다치고 나랑 만났던 여자애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웃음) 그걸 써서 인세를 받는 건 말이 안된다고 느꼈어요. 작가가 경험으로 쓸 수 있는 소설은 한권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경험을 쓴다는 건 화자에게 확고한 딱 한번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므로 소설가에겐 맞지 않는다고 봐요. 1인칭 화자 ‘나’는 인물 중의 한명이지만 동시에 편집자로서 작가이기도 해요. 사건이 다 끝난 뒤에 그것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취재를 한 화자죠. 그래서 넓은 조망을 갖고 이 말을 지금 할까 좀 있다 할까 계속 고민하면서 이야기하는 거죠. 그런데 어릴 때부터 시간과 함께 자라는 과정을 따라가는 후일담 소설의 ‘나’는 예전 일을 서술하면서 당시의 내가 되어버려요. 자신은 굉장히 크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진행될 확률이 높은 거죠. 전 만약 41살인 현재의 나에 대해 쓴다고 해도 80살이 넘어 죽은 시점에서 41살을 돌아보며 어떤 의미를 갖는지 회고하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음 상황에 대해 모르는 현재형의 화자는 지위가 낮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진지한 질문을 던지긴 힘들다고 봐요.
-말씀을 듣고 보니 영화를 왜 썩 좋아하지 않으시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네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는 <타인의 삶>처럼 역산해서 들어가는 이야기, 앞부분에 중요한 뭔가가 내장돼 있다가 뒤에서 어떻게 되는지 보라고 말하는 영화들이에요.
메소드 연기하듯 소설 속으로
-소설을 쓸 때 마지막 장면부터 쓰신다는 말이 있던데요.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예로 들면,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가면서 거대한 노을에 안녕을 고하는 장면으로 끝을 내자고 정하고 나면 앞부분 이야기가 대부분 한 시절과 이별하는 이미지로 집약돼요. 저는 소설을 두번 쓴다고 생각해요. 한번 이야기를 쓰고 그것을 다시 소설로 쓰는 거죠. 그래서 어떤 장면을 마지막 장면으로 잡느냐가 때로는 주제를 포함한 모든 것이 돼요. 예를 들어, 현재 <7번국도>(1997)의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야기는 같지만 거의 새로 쓰고 있는 상황이에요. 다른 책이 될 확률이 높아요.
-김연수 작가의 소설은 판본이 여러 가지고 <꾿빠이 이상>은 10개 넘는 버전이 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군요. =어떻게 말을 할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하죠. 제가 소설쓰기를 즐기는 대목도 고통스런 창의적 과정이 끝나고 시작되는 그와 같은 편집자적 과정이에요. 이야기하다보니 이건 무슨 회사 같네요. 사회적 자아, 소설 쓰는 자아 따로 있고 그 소설 쓰는 자아도 분열돼 있고. (웃음)
-역사소설을 쓸 때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취재하십니다. 고증에서 상상력으로 갈아타는 지점을 어떻게 정하세요? =상상력 자체가 자료에 기초해요. 자료로 더이상 알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자료를 보죠. <꾿빠이 이상> 같은 경우 마지막 순간에 이상이 갖고 있었던 마음이 가장 중요한데 그건 자료가 말해주지 않는 부분이에요. 그 부분을 제가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읽는 이들이 자료로 써진 부분을 읽으면서 유추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게 제가 한 작업이었어요. 그게 인문학적 상상력인 것 같아요. 어떤 진실의 순간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쓰지 못해요. 방계의 정황들로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으면 제일 좋다고 생각하죠.
-사료나 옛날 신문의 중립적이고 짤막한 기록을 볼 때 가장 궁금한 부분이 무엇인가요? =구체적 감각이 와닿는 사건들이죠. 예를 들어 고문이 있었다면 고문방법의 종류는 자료에 다 나와요. 그러나 제가 궁금한 건 1인칭화된 고문이에요. 당연히 아픔이 있었겠지만 아픔은 그 인간에 대해 말해주는 게 없죠. 고문당하는 와중에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일까? 그건 고문 자체의 고통이 아닐 수도 있어요. 김근태씨의 경험담을 보면 고문자들이 애들 교육문제를 잡담하는 소리였다죠. 그것만 해도 많이 들어간 건데 전 그것도 성에 안 차요.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가 당사자조차 모르는 무엇을 알아내야 해요. 그리고 사람들은 제가 취재를 한다고 하면 옛날 인물의 복식 같은 걸 찾는다고 생각하는데 좀 달라요. 예컨대 1940년에 태어나 60년에 대학 들어간 인물을 쓴다면 그 무렵 그가 읽었을 법한 책을 무작위로 읽어 그의 교양수준, 접했던 어휘, 감각적으로 노출됐던 폭력, 인식의 지평을 체화해야 해요. 그렇게 인물의 상태를 파악한 다음, 극적인 상황에 던져놓아야 고유한 행동이 나와요.
-배우의 메소드 연기와 비슷하게 들리는데요? 소설의 배경에 현지 취재를 가서는 자료조사 외에 어떤 추체험을 하세요? =연기와 비슷한 부분이 없지 않죠. <밤을 노래한다>를 쓸 때는 연변에서 산으로 도망칠 때 얼마나 숨이 차는지 뛰어봤어요.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과는 완전히 달라요. <달로 간 코미디언>에서도, 점자도서관에 가보지 않았다면 그곳에선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는 사실을 쓸 수 없었을 거에요.
-역사는 거대 내러티브고 소설은 역사가 잊어버린 작은 이야기라고 하지만, 역사소설을 쓰다보면 역사가와 비슷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진 않습니까? 역사학에도 미시사나 일상사라는 부문이 존재하잖아요. =아무리 포스트모던한 역사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적인 이야기예요. 미시사는 인간의 삶을 미세한 차원까지 들여다보고 확대하니까 그 사람들이 중요해 보일 수는 있어요. 하지만 구원해줄 수는 없어요. 소설은 불행하게 살다 죽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요. 그들의 삶을 확대해서 보여줌으로써 그가 태어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데에까지 가는 게 소설의 일이라고 봐요. 불행으로 점철된 인생이라고 해서 실패한 삶이라면, 대부분의 삶은 실패예요.
-그렇다면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정말 실패한 인생은 어떤 인생인가요? 사랑한 기억이 없는 인생? 이야기가 없는 인생? =가짜로 산 인생이요. 가면의 생. 특히 이른바 성공한 사람 중에 많이 보이는데, 자기 경험이 없고 보편적인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소설가의 관점이라서인지 몰라도 제가 제일 경멸하는 책이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에요. 그들은 실제로도 자기가 자서전에 써 있는 대로 살았다고 믿어요.
미디어 자체가 장르를 바꾸지 않을까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은 읽은 뒤에 사건이나 장면보다 인물의 사유가 독자들에게 더 강하게 각인되는 것 같아요. 작중 화자가 캐릭터로 분리되기보다 작가와 밀착해 있다는 인상도 있고요.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아요. 단, 사건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의 진행이 느리죠. 인물을 드러내는 디테일과 묘사가 들어가기 때문에 느려지는 거죠. 이야기에 중점을 두는 소설과 성격과 사유를 보여주는 소설을 단순히 비교하기는 힘들어요. 또, 작법상의 문제인데 1인칭을 갖고 주로 쓰다 보니 화자의 눈에 입각한 묘사를 계속 하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1인칭 화자가 남자라서 독자들이 그것을 작가의 잠언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요. 여성화자일 경우에는 그런 혼돈이 없는 편이에요.
-선생님의 소설에는 “**은 어디로 간 것일까?”라는 문장이 자주 나옵니다. “그때의 웃음소리는 어디로 갔을까요?”라든가 “제 인생에서 사라진 하루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라든가. =그것들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죠. 과학적으로도 그건 사실이고요. 심지어는 우리가 하지 않은 일도 평행우주에는 존재한다고 하잖아요? 모든 가능성이 우주 속에 저장이 되어 있는 거예요.
-소설을 쓰면서도 꾸준히 영어 번역을 해오셨습니다. 때문에, 한국어를 도구로 쓰는 작가이기에 부딪혀야 하는 문제가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보이실 것 같습니다. =요새 고민거리 중 하나예요. 한국어 문법이 원래 영문법에서 온 것이기에 거기 정확히 맞는 문장을 쓰면 번역체처럼 나와요. 주어와 동사가 일치해야 한다거나, 타동사는 반드시 목적격을 가진다거나. 반면 한국어식으로 자연스러운 문장은 약간 비문처럼 보이고요. “나는 맥주다” 하면 틀린 것 같지만 한국어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맥주였다”라고 쓸 수 있거든요. 원래 저는 문법에 맞게 써야 한다는 주의였는데 요즘 들어 이게 혹시 영문법이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어요. 그런데 앞으로 10년 안에 한국어가 어떤 변화를 맞을지 어떤 상황에서 글을 쓰게 될지 궁금해요. 전자책 속 문장과 종이책에 실리는 문장은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미디어 자체가 장르를 바꾸지 않을까요.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서 등단하게 하는 것이 꿈의 하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 과정에서 무엇을 체험하고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한국 문학은 배타적이에요. 배운 언어로서의 한국어로 창작된 적이 한번도 없거든요. 한국어 원어민만 작품을 쓰고, 그 원어민은 또 다 같은 민족이고. 그래서 완전한 타자가 들어올 때 언어가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한국 작가 중에 영어로 쓰는 사람도 나올 테고요. 그때가 오면 한국 작가가 한국 문학을 하는 게 어떤 의미인가 다시 생각하게 될 거예요. 그러면 문학에 대한 접근법이 달라지겠죠. 주제에 대한 과도한 집중도 그런 폐쇄성에서 나와요. 문학의 도구, 용기(用器)에 대해 주목하지 않고 오직 주제만 보는 거죠. 문예지에서도 언어예술의 관점에서 문학을 논의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씨네21>을 보면서 부러웠던 점도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그 장면을 왜 그렇게 찍었는지, 어떻게 찍었는지 기술적 문제에 관한 대화가 이뤄진다는 점이었어요. 대화를 하면서 창작자도 몰랐던 부분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한국 문학에서는 그런 기회가 드물어요. 플롯, 캐릭터보다 왜 썼느냐, 세계관은 왜 이러냐, 왜 이런 주제를 택했느냐를 작가의 개인사와 연결지어 논의하죠. 가끔 외국 작가들과 워크숍을 해보면 매우 실질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팁을 공유하는 모습이 부러워요.
-아이를 갖고 나서 글쓰는 삶에 더해진 것이 있나요? =계획적으로 살기 시작했고 소설도 많이 썼어요. 딸이 점점 커가면서 생각지도 못한 다른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제가 나이 들어 죽는다면 지금의 이 경험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먼저 돌아가신 분들의 기억과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내가 죽고 난 뒤의 세계는 어떨까. 계속 생각하게 돼요. 어쩔 수 없이 타인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그리고 제가 사람들의 관계를 소설로 썼을 때 같은 유형의 관계를 타인과 맺고 있는 독자들이 제 이야기가 뭔지 알아듣겠다고, 위로받았다고 해요.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놀라운 경험이죠.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실린 소설들에는 타인과 소통하는 점핑의 순간이 있는데 그런 경험을 가졌기에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심하게도, 아직도 성장하고 있어요. 딸을 위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청년기에 품었던 고민이 사라지기도 하고, 타인에게 위로를 주는 경이로운 일을 겪기도 하고….
-산문집 <여행할 권리>에서 “문학이 국경 수비대 노릇을 해선 안된다”고 쓰셨는데요. 그럼 문학이 철저히 방어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상투성이죠. 그리고 국경 수비대가 하는 일을 막아야죠. (웃음)
追伸 김연수는 교통방송을 들으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영화를 따라가기보다는 사진에 포착된 찰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상상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사연에 끌리는 작가답다고 할까. 그에게는 후각의 기억도 참 많았다. 김천에 생긴 백화점 수입상품 가게에서 풍겨 나오던 희한하고 이국적인 내음, 어머니가 경영하신 제과점의 갓 구운 빵 냄새. 나는 빵집 어항 너머에 어른대는 낯선 이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는 아이를, 가게 문을 잠그기 직전 이름 모를 사람들이 머물렀으나 이제 어둠에 잠긴 자리들을 물끄러미 둘러보는 소년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김연수 작가는 얼마 전 한 잡지사로부터 게스트 편집자로서 지면을 꾸며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고 했다. 벌써 뭘 하면 재미있을까 궁리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가 80년대 동네 빵집을 재현하고 그 속에 들어가 화보를 찍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