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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스포츠는 더럼으로 통한다
2001-02-23

CNNSI.com이 선정한 최고의 스포츠영화들,1위는 <열아홉번째 남자>

<키스 더 걸>이라는 영화를 기억하는지? 모건 프리먼이 뉴욕의 형사로 나와서 연쇄 살인범에게 납치된 미모의 여대생 애슐리 저드를 구해낸다는 줄거리의 영화였다. 미국에서 그다지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아니어서인지, 우리나라에서도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조용히 비디오로 직행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개인적으로 굳이 그 영화를 본 것은, 영화의 무대가 된 도시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더럼(Durham)시로 2년간 유학을 가기로 결정하고 나서였다. 노스캐롤라이나주가 어디쯤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더럼이라는 도시에 대한 끝없는 궁금증을 그나마 그 영화가 풀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종의 사이코스릴러영화인 <키스 더 걸>에서 더럼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더럼에 대한 궁금증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여시간의 긴 비행 끝에 이곳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모든 궁금증이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풀려나갔기 때문이다. 재미있었던 것은 짧은 여행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한 한국의 젊은이에게, 더럼이라는 도시가 참 기묘하게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그런 기묘한 느낌을 극대화시켰던 경험은, 이곳 더럼을 연고지로 하는 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의 명문(?) 구단인 더럼 불즈(Durham Bulls)의 경기를 보러 갔을 때였다. 규모는 작지만 현대식으로 지어진 야구장을 꽉 메운 관객 대부분이 경기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경기시간 내내 핫도그, 피자, 콜라 혹은 맥주를 먹고 마시며 주변사람들과 잡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더럼이라는 도시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바로 얼마 전 의 계열사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의 인터넷 서비스 CNNSI.com이 최고의 스포츠영화를 선정하면서, 예상을 완전 뒤엎고 <열아홉번째 남자>(국내 비디오 출시 제목)를 선정했기 때문이다. 원제목이 인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80년대 후반 더럼 불즈 야구팀을 무대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일종의 B급 스포츠영화. 지금은 수잔 서랜던이 지금은 남편인 팀 로빈슨을 만난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고, 캐빈 코스트너가 <언터치어블>과 <노 웨이 아웃>으로 인기를 끈 뒤 본격적으로 연기력까지 인정받기 시작한 것도 이 영화에서부터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열아홉번째 남자>가 1위를 선정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2위에 선정된 마틴 스코시즈의 걸작 <분노의 주먹>(Raging Bull), 3위에 선정된 <록키1>, 4위에 선정된 진 해크먼, 데니스 호퍼 주연의 <후지어>(Hoosier), 6위에 선정된 폴 뉴먼 주연의 고전 <허슬러>, 7위에 선정된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 등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기라성 같은 작품들을 누르고 선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중 스포츠의 전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CNNSI.com은 이런 의외의 선택에 대해 ‘연기와 세부 묘사가 완벽하다. 게다가 수잔 서랜든까지…’라는 짤막한 촌평을 붙여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더불어 CNNSI.com은 <열아홉번째 남자>에 대해 ‘야구라는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모습을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라며 12위에 선정된 로버트 레드퍼드 주연의 <네츄럴>, 16위에 선정된 캐빈 코스트너의 또다른 영화 <꿈의 구장> 등 다른 야구영화들과 차별을 명확히 했다. 개인적으로도 이 영화가 마이너리그 야구 경기를 보러 가는 미국인들의 정서와 가장 잘 부합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비록 대작은 아니라 하더라도 미국을 이해하는 좋은 척도가 될 수 있는 뛰어난 영화라는 점에 동감한다. 물론 영화 속에 그려진 80년대 말의 더럼이, 현재의 더럼과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미 비디오로 출시된 지 오래되어 찾기가 힘들어도, 미국 스포츠영화의 백미를 즐기고 싶다면 <열아홉번째 남자>를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이 밖에 이번 순위에서 눈길을 끄는 사실은 10위에 오른 톰 크루즈, 쿠바 구딩 주니어 콤비의 <제리 맥과이어>가 선정되었다는 것과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40년대와 70년대의 스포츠영화들이 대거 20위권 안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한편 지난해 개봉되었던 스포츠 영화들을 대상으로 네티즌들의 투표를 통해 선정하는 베스트2000 부문에서는 덴젤 워싱턴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리멤버 더 타이탄>(Remember the Titan)이 압도적인 지지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뒤를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범작 <리플레이스먼트>가 달리고 있는 중이다.

CNNSI.com 스포츠영화 특집

http://sportsillustrated.cnn.com/features/2001/movies/

더럼 불즈 공식 홈페이지

http://www.dbulls.com/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