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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그의 영화] 카메론의 시간은 거꾸로 가나
김중혁(작가) 2010-01-08

롤러코스터 탄 기분으로 <아바타>의 입체효과를 보다 든 의문

연수군이 <워킹우먼>이라는 제호의 라이선스 잡지에서 워킹하는 우먼들을 만나고 있을 때, 나는 도대체 무엇을 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즈음 나는 센스있는 우먼들의 필독 잡지 <우먼센스>에서 좋은 말로 하면 프리랜서, 심한 말로 비하하면 ‘대타’를 하고 있었다(연수군과 내가 센스있는 우먼들의 워킹하는 모습을 담은 통합본 <워킹우먼센스>를 함께 만들면 좋았을 것을…). 당시 <우먼센스>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기자들이 기사를 쓸 수 없게 됐고, 이를 대신할 용병이 필요했는데 하필이면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됐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최대한 많은 양의 기사를 가장 빠른 시간에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장르 불문 전공 불문 무작정 글을 썼다. 마이클 조던에 대한 기사도 썼고, 이문열 작가에 대한 기사도 썼고, 가장 유명한 노점상을 찾아나서는 기사도 썼고, 가족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기사도 썼고, 르포르타주 비슷한 글도 썼던 것 같다. 그 달 내가 쓴 원고를 모아보니 원고지 300장. 열흘 정도 만에 취재도 하고 자료도 수집하며 쓴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열심히 살았던 때가 아닌가 싶다(나는야 센스있는 워킹맨!). 요즘도 가끔 ‘초심’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라기보다 나의 초심은 어땠나 궁금할 때) 스크랩해둔 그때의 글을 다시 읽어보곤 하는데, 모든 문장이 어찌나 촌스럽고 투박한지 ‘이때에 비하면 요즘은 글을 참 잘 쓰는구나’ 싶은 자만감이 들 정도다. 실제로 글쓰는 실력이 좀 나아진 것인지, 아니면 기교만 잔뜩 늘어서 멋지게 보이는 방법만 터득한 것인지 아직도 헷갈리는 걸 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PC에서 아바타 만들던 10년 전 그 시절

나는 시간감각이 좀 둔한 편인 것 같다(어쩌면 숫자감각이 둔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사건을 떠올릴 때 그게 몇년 전의 일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다. 10년 전인지 20년 전인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으므로 흘러가는 즉시 잊어버리는 ‘쏘쿨’한 나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세상의 모든 일들이 너무 빨리 바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은 그저 옛말일 뿐, ‘10년이면 강산은 (4대강 사업 때문에라도) 진작에 바뀌었고, 바다와 우주도 변한다’는 말로 교체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컴퓨터와 관련된 것들은 그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전화선을 모뎀에 연결시켜 밤새 ‘PC통신’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때가(어머님, 죄송합니다) 100년도 더 된 것 같은데 겨우 10년 전쯤의 일이며, 프리챌에서 ‘아바타’를 만들던 시절은 마치 전생의 일 같은데 아직 1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 10년 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며, 나는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게 될지 아무리 상상해 보아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아마도 화성에서 외계인들과 바둑을 두다가 3연패당한 내가 지구의 고수에게 화상전화로 족집게 과외 수업을 받은 뒤 멋지게 넉집 차이로 승리를 거둔 뒤 목성까지 승리기념 여행을 다녀오는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이게 뭔 소리래). 아무튼 내일 일 나도 모르겠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보면서 생각이 많았다. 워낙 상영시간이 긴 영화라 이것저것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안경을 끼고 있으니 콧등이 너무 아팠고, 앞에 앉은 남자의 머리는 어찌나 큰지(이런 얘기 들을까봐 나는 맨 뒷자리!) 3D 영상 사이에서도 머리가 입체적으로 돌출됐고, 영화에 몰두하지 못하고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며 3D로 볼 때와 일반 영상으로 볼 때의 차이를 자꾸만 비교하는 나는 촌놈인가, 아니지, 그건 아니지, 이야기는 영화 시작하자마자 눈감고도 다 알아맞힐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입체효과나 즐기면서 롤러코스터 탄 기분으로다가, 흠, 저 식물들의 입체효과는 꽤 뛰어난걸, 마치 눈앞으로 이파리들이 뻗어나오는 것 같잖아,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어떻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이파리들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듯 나도 영화관 밖으로 입체적으로다가 뛰어나가고 싶은 심정까지 들었으나, 그런데, 그러면 안경은 어떻게 반납해야 하는 것인가, 방법을 알지 못해 끝까지 앉아 있었다. 끝까지 앉아서 나는 엔딩 크레딧도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지나갔다. 저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면서까지 이런 영화를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불 속에서 번쩍번쩍하던 야광팔찌 같은…

<아바타>는 마치 야광영화 같았다. 어린 시절 어디에선가 야광 팔찌를 구해 온 친구 녀석이 집으로 초대해 이불을 뒤집어쓴 다음 “이거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 진짜 신기하지?”라고 자꾸만 묻는 것 같아서 “응, 신기하긴 하네, 번쩍번쩍하네”라는 말밖에는 할 게 없던 나는 뒤집어쓴 이불이 갑갑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나가고 싶긴 한데 그러면 친구 녀석이 삐칠까봐 노심초사, 전전긍긍, 의리냐 탈출이냐를 놓고 한참 고민하던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신기하긴 하지만 신기한 건 금방 사라진다. 10년도 못 가서 사라질 것이다. 아니 이대로라면 5년도 못 가서 신기한 건 구닥다리가 되고 새로운 게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10년도 못 가서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낸 다음 “하하하, <아바타>요? 그런 건 애들 장난이죠, 제 영화에는 실제 배우들이 홀로그램으로 등장해서 영화관 안을 헤집고 다닌다니까요”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신기한 게 좋지만 신기한 걸 보면 입을 떡 벌리고 정신을 잃지만 금방 싫증난다. 신기(新奇)한 것이 신기(神奇)하게 느껴지려면 그 사이에 절묘한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데 제임스 카메론은 그걸 너무 많이 생략한 것 같다. 어쩌면 제임스 카메론은 점점 어려지는 것은 아닐까. 신기한 것을 점점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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