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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필립 클로델의 감독 데뷔작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김도훈 2010-01-06

synopsis 줄리엣(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은 15년간의 수형생활을 끝내고 출소한다. 그녀는 친절한 여동생 레아(엘자 질버스테인)의 집에서 생활을 시작하지만 도무지 지난 사연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는다. 줄리엣은 레아의 남편 뤽(세르주 하자나비시우스)과 마찰을 빚기도 하지만 레아의 동료인 미셸(로랑 그레빌)과 교류하고, 또 레아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으며 천천히 꽉 막힌 지난날의 응어리를 풀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두가 궁금해한다. 과연 그녀는 15년 전 정말로 아들을 죽였던 것일까.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는 프랑스 작가 필립 클로델의 감독 데뷔작이다. 그는 한국에도 출간된 <회색 영혼>과 <무슈 린의 아기>를 통해 르노도상을 수상하며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회색 영혼>의 한 대사를 인용해보자. “인간의 영혼, 그것은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이 회색이다. 똑같은 회색 진흙이 아니라 하얀 대리석 판 위에서는 검게, 검은 대리석 판 위에서는 희게 보일 뿐이다.” 필립 클로델이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그거다. 쉬이 알아챌 수 없도록 회색을 띤 인간의 영혼 말이다.

일종의 미스터리 형식을 차용하고는 있지만 정작 영화는 대단히 담담하다. 친자 살해죄로 15년 수형생활을 마친 줄리엣은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동생 레아는 줄리엣을 자신의 가족과 함께 살도록 하지만 그녀 역시 언니의 마음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영화의 미스터리는 줄리엣이 정말로 자신의 자식을 살해했느냐는 것이다. 필립 클로델은 무시무시한 과거 속 ‘거실의 코끼리’를 줄리엣과 레아가 입으로 꺼내어 말하기까지의 과정을 조용히 카메라에 담아낸다. 그리고 결국 약한 인간의 영혼을 지탱하도록 만드는 건 또 다른 인간이라고 이야기한다.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는 무엇보다도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의 영화다. 스콧 토머스는 앤서니 밍겔라의 <잉글리시 페이션트> 이후 <호스 위스퍼러>와 <랜덤 하트> 등을 거치며 묘하게 잊혀졌다. 그걸 문제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문제는 그녀가 전형적인 할리우드 여배우로 성공하기에는 지나치게 세련된데다, 또 지나치게 고전 할리우드적 기품을 풍겼다는 것일 거다(그런 건 장점 아니냐고? 할리우드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신 그녀는 진 세버그,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같은 과거의 여배우들처럼 영국, 미국과 프랑스를 왔다갔다하며 또 다른 몫을 찾아왔다.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는 스콧 토머스라는 배우를 다시 바라보라고 우리에게 충고하는 듯하다.

사실 필립 클로델의 이 근사한 데뷔작은 줄리엣의 비밀이 발혀지는 후반부에서 극적인 힘을 조금 잃어버린다. 인간 영혼에 대한 탐구가 따스한 가족드라마로 슬그머니 마무리되는 느낌도 있다. 무뎌지는 기운을 끝까지 지탱하는 건 역시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다.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몸짓, 무엇보다도 그녀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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