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게요. 그냥 슬픈 눈으로 소머리눈을 볼게요.”
숨차게 뛰어들어와 소머리인간을 바라보는 아리아드네의 등장신을 찍다가 한지혜 감독이 연기를 조금 수정하겠다며 던진 말이다. 이어지는 말이 재밌다. “아, 최악의 디렉션인데. 슬픈 눈이 뭐야, 슬픈 눈이.” “좋은데”, “좋아요”, “좋습니다”라며 2~3테이크 만에 오케이 사인을 내던 한지혜 감독은 이번 장면에선 뭔가 성에 차지 않는 눈치다. 소머리인간을 보고 놀라는 태식(이현우)과 때마침 등장하는 아리아드네(김디에나)의 첫 만남이 쉽사리 성사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밤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경기도 동두천의 동광극장에서 <소고기를 좋아하세요?>(가제)의 2회차 촬영이 진행됐다. 동광극장의 간판 불은 꺼져 있고 대신 ‘라비린토스’(LABYLINTHOS)라는 새 이름이 띠로 둘러쳐져 있다. 동광극장 앞, 아니 라비린토스 극장 앞에는 교복을 입은 사내아이, 소머리를 뒤집어쓴 반인반우(半人半牛), 하얀 드레스에 망토를 걸친 여신이 삼각구도를 형성하며 서 있다. 극장 입구에 매직으로 쓰여진 ‘상영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라는 말이 생경하게 다가올 만큼 딴 세상에 발을 디딘 느낌이다. 거기에 추위와 피곤이 더해져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몽롱한 느낌을 풍겼다. 전날 새벽까지 강행군한 스탭들은 이날도 밤샘 작업에 돌입할 분위기였고, 비장하기도, 애처롭기도 한 표정으로 스토리보드의 컷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시간은 12월1일에서 2일로 거침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소고기를 좋아하세요?>는 전주국제영화제 ‘숏!숏!숏!’ 단편영화 프로젝트 중 하나로, 이규만 감독의 <허기>, 김태곤 감독의 <1000만>과 함께 내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1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단편 옴니버스 <황금시대>가 ‘돈’을 주제로 했다면, 이번엔 ‘공포와 판타지’라는 형식과 ‘극장’이라는 공간을 세 감독이 공유한다.
한지혜 감독은 “미노타우로스 신화를 한번 얘기해보고 싶었다”면서 “신화를 베이스로 깔고 뱀파이어 이야기와 채식주의자 이야기, 영웅과 괴물의 이야기 등 몇 가지 메타포를 합쳐보았다”고 영화를 소개했다. 30분짜리 중단편치고 어렵지 않을까 우려할 찰나 “이번엔 재밌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씩씩한 웃음을 날리며 선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