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곡은 어떻게 고를까? 옛날 옛적 순진한 청중이던 시절, 낭만적인 상상 속에서는 이랬다. 연주자는 공연에 온 사람들의 성향을 고려해, 그날의 기분에 맞는 곡을 즉흥적으로 골라 치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의 앙코르곡이 다를 거라고, 그것은 프로그램 밖의 ‘우연한’ 선곡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환상이 깨진 건 노래 동아리에 가입해 매년 연례 공연을 하면서였다. 선배들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공연 준비 과정에서 앙코르곡을 미리 정해 연습을 시켰다. 공연이 엉망이라 앙코르를 아무도 안 하면 어떻게 하나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그렇게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 앙코르는 다 해. 공연 내용이 좋으면 앙코르 요청이 길고 거세고, 그렇지 않으면 짧다는 차이가 있는 정도다. 박수갈채와 앙코르 요청은 아마추어들의 공연을 보러 가는 관객(무대에 선 이의 가족과 친구들은 특히 유용한 박수부대다)에게 필수품이니. 여튼, 그때 앙코르곡을 고르는 요령은 이랬다. (1) 청중이 아는 곡일 것. (2) 길지 않을 것. ‘행복한 덤’을 연주자와 청중이 나누어갖기 위한 필수 요소다.
얼마 전 독일의 피아니스트 마르틴 슈타트펠트가 내한 리사이틀을 가졌는데 그 공연의 화룡점정이 앙코르곡 연주였다. 슈타트펠트 리사이틀의 하이라이트는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 전곡을 연주하는 2부였다. 젊어서 그런지 그의 바흐에는 모험심이 가득했는데, 만화처럼 눈부신 속도로 움직이는 손은 그 자체로 볼거리였다. 빨라질수록 컨트롤이 완벽해지는 느낌이라니.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공연이 끝났다. 그런데 박수에 화답하기 위해 세 번째 나온 슈타트펠트가 자리에 앉더니 프로코피예프의 토카타를 엄청난 기교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앙코르곡치고는 너무 화려한 연주에 (당연하게도) 박수가 더 크게 터져나왔고, 놀랍고도 고맙게도, 그는 두 번째 앙코르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바흐 플루트 소나타 E플랫 장조 중 시칠리아노(곡 제목을 자세히 적는 이유는 유튜브에서 검색해 들어보시라는 의미에서다). 첫곡과 완전히 상반되는,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가을 분위기 물씬 풍기는’ 우수에 찬 부드럽고 아름다운 연주. 연주 시작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나직한 한숨 소리가 들렸고, 내 뒤에 앉은 여자는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어머, 나 어떡해…”라고 신음했다. 하하하. 완벽한 앙코르의 예를 든다면 빼놓을 수 없는 공연이었다.
내가 경험한 가장 황당했던 앙코르 얘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초등학생 때, 친구를 따라 난생처음 본 <아가씨와 건달들>. 80년대 후반의 뮤지컬 공연 문화라는 건 경험보다 주워들은 풍월이 압도했는데, 심지어 ‘초딩’이기까지 했던 나와 친구는 “뭐든, 남들을 따라한다”는 원칙을 숙지하고 공연 관람을 시작했다. 황당사건은 뮤지컬의 후반에 일어났다. 구세군 아가씨와 사랑에 빠진 잘나가는 건달 도박사 스카이 매스터슨은 내기를 통해 많은 건달들을 구세군의 기도회에 참석하게 만든다. 건달들은 각자 자기 죄를 뉘우치는데, 그때 건달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Sit down, you’re rocking the boat>다. 건달들이 무대 중심에 서는 코믹한 곡인데, 웃기고 재미있고 흠 잡을 데 하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앙코르! 앙코르!”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미 다음 대목으로 넘어갔는데. 처음에는 노래와 연기가 좋았다는 의미에서 몇명이 앙코르를 외치기 시작한 모양이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모든 사람이 공연은 안 보고 신이 나서 “앙코르!”를 외치기 시작했다. 결국 공연을 하다 말고 배우들은 그 곡을 다시 한번 부를 수밖에 없었다. 첫 경험을 그렇게 환상적으로 치르고 나니, 지금도 공연 중에 마음에 드는 곡이나 대목을 만날 때면 벌떡 일어나 (비디오 플레이어의 리와인드 버튼을 누르듯) “앙코르!”를 외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