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계의 거성들이 넘쳐나는 데가 일본이지만 그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결국 이들의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다. 서던 올 스타스(Southern All Stars). 2008년을 기하여 데뷔 30주년을 맞은 ‘사잔’(서던 올 스타스의 약칭)은 한국에서 그저 도매금으로 팔려다닐 뿐인 ‘국민’이라는 접두어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밴드다. 데뷔 무렵에는 ‘뉴 뮤직’이라는 새로운 조류의 선구자였으며, 이후 무기한 활동 중지를 선언한 지난해까지는 메이저 록계의 패왕으로 군림했다. <꿈으로 사라진 줄리아>는 2004년에 사잔이 발표한 더블 싱글로, 밴드 튜브(tube)와 함께 여름철의 청각적 이미지를 대표해왔던 그들 특유의 악곡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노래의 가사는 사잔의 리더인 구와다 게이스케가 썼다. 내용은 그가 꾸었던 꿈에 기초했는데, 가사 작업을 하던 도중 구와다는 자신이 꾸었던 바로 그 꿈 이야기와 매우 흡사한 설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것은 도쿠가와 막부 시절 이즈 제도의 고즈시마에서 생애를 마친 어느 조선인 여성의 이야기였다. 임진왜란 당시 3살의 어린 나이에 포로로 끌려간 그녀는 왜란의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양녀로 입적되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고니시는 이 조선인 양딸에게 줄리아라는 세례명을 주었고 ‘오타 줄리아’라는 이름으로 성장한 그녀는 도쿠가와 막부의 박해에도 포교에 매진하다 40년간의 유배형을 받았다. 고즈시마는 오타 줄리아가 귀양살이를 했던 섬으로, 형기를 마칠 때까지도 그녀는 섬사람들에게 전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힘든 유배생활을 끝낸 오타 줄리아는 결국 그 섬에서 숨을 거두었다.
조선인이었다는 사실 외에 오타 줄리아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아직까지 검증된 내용이 없다. 일설에 따르면 그녀가 양반가의 딸이었다고도 하고, 심지어는 왕족이었다고도 하며, 이름이 ‘이수란’이었다고도 한다. 그저 초창기 일본 천주교계의 순교자 중 하나로 추앙받을 뿐. 1970년 이후 해마다 5월이면 일본 고즈시마에서는 그녀의 뜻을 기리는 ‘쥬리아제’가 열린다. 1971년에는 그녀의 묘토가 한국으로 옮겨졌다.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절두산 순교 성지에 가면 오타 줄리아의 묘역과 기념비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