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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그의 영화] 혼자 중얼거리지 마, 인생만 꼬여
김연수(작가) 2009-05-07

막장드라마류의 제목을 달고 개봉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가 너무 귀여운 이유

비록 고집 센 당나귀를 데리고 장에 나가는 것처럼 힘들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나는 초등학교 동기생과 카페에 앉아서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떠들어대는 것을 좋아한다. 얘기하다가 보면 내가 얼마나 멍청한 생각을 하고 사는지 깨닫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밥 말리의 <No Woman No Cry>에 대해 얘기하다가 나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가사를 중화풍으로 ‘여자 없으면 울 일 없다 해’라고 해석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동기생이 느끼한 목소리로 들려준 정확한 해석은 ‘그만, 그대여, 울지 말아요’였다. 이 얼마나 큰 차이인가. 그러기에 혼자서 미뤄 짐작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 이 제목은 어떻게 해석해야만 하는가? <Vicky Christina Barcelona>. 이 영화를 보겠다고 ‘내 남편의 아내도 사랑해’를 봐야겠다고 말했다가 망신만 당했다. 그 무슨 자기애적인 제목이란 말이더냐? 그럼 ‘내 남자의 아내도 사랑해’인가, 아니면 ‘내 남편의 여자도 사랑해’인가. 아무튼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그 제목을 모르겠다. 아마도 막장드라마가 유행이어서 한국에서는 그런 제목을 붙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원제가 더 좋다. 운도 맞고, 깔끔하고. 덕분에 막장드라마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70대 노인이 어찌 이런 귀여운 영화를 다 만드시나’ 하고 감탄, 또 감탄하다가 나왔다. 언젠가 홍상수 감독이 자기 영화는 35살 미만 관람불가 등급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말하자면 우디 앨런의 이 영화는 35살 미만 관람불가 등급의 로맨틱코미디인 셈이다.

서른다섯이 지난 뒤 깨달았던 진리

막장드라마에는 있는데 우디 앨런의 영화에는 없는 게 뭘까? 그건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보는 일이다. 상상해보라. 우리는 한번쯤 인생의 막장으로 내려간다. 눈앞이 캄캄하다. 어떻게 이 난국을 타개해야만 할까, 전혀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거기서 우리는 혼자 중얼거린다. ‘No Woman No Cry.’ 모든 걸 제멋대로 해석해버린다. 그년만 없었어도 내가 이 막장까지는 내려오지 않았을 것을. 이게 다 그년 때문이야. 복수할 거야. 복수하고 말 거라고!!!(막장드라마 대본에 느낌표 세개 정도는 필수다) 서른다섯살이 지난 뒤에 내가 깨달은 인생의 진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때로 우리가 왜 죽음과도 같은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지 아는가? 그건 스스로 무덤을 팠기 때문이다. 그럼 왜 우린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것일까? 그게 다 혼자 중얼거려서다. 인생의 막장에 이르렀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도 없이 거기서 나올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한심한 일이 있을까? 그러니 인생은 더 꼬이게 돼 있는 것이다.

바르셀로나로 간 우디 앨런의 두 여주인공이 이른 곳도 인생의 막장처럼 보인다. 후안 안토니오는 처음 본 비키와 크리스티나에게 주말을 함께 즐기자고 말한다. 셋이서 사랑을 만들자는 얘기다. 요컨대 스리섬. 결혼을 앞둔 비키는 음악에 취해서 그만 후안과 사랑을 만든다. 크리스티나는 지금은 이혼한 부부인 후안과 마리아를 동시에 사랑한다. 새로운 스리섬. 비키는 남편 몰래 친구의 애인이었던 후안을 찾아가 사랑을 나누려고 한다. 뭐, 아무튼 이런 식이다. 만약 이들 네명의 남녀가 서로 떠들어대는 일 없이 각자 혼자서 이 사태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면 혼자서 그 일들의 의미를 해석해봤더라면 영화는 어떻게 됐을까? 뭐 어떻게 됐겠는가? 서로 죽이네, 살리네, 속았네, 당했네, 복수하네, 그랬겠지. 35살 미만의 시절에는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 같다.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결정하고. 하지만 나이가 더 들면 그래 봐야, 아니 그렇기 때문에 막장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혼자 있을 때, 우린 그다지 아름답지도, 총명하지도 않으니까.

늘 자신을 객관화하는 게 어른들의 일

대신에 우디 앨런의 주인공들은 항상 대화한다. 독백이라는 게 없다. 서로에게 맑고 밝고 투명하다는 얘기다.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라는 제목의 느낌 그대로다. 후안이 처음 본 비키와 크리스티나에게 주말을 함께 즐기자고,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섹스하자고 말하는 도입부를 보자. 원래 설정된 캐릭터대로 하자면 비키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만 하고, 크리스티나는 혼자서 후안을 따라가는 식으로 전개되는 게 옳다. 그런데 이들은 각자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이 일에 대한 견해를 내놓는다. 토론의 결과,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않지만 서로 타협을 보는 식으로 사건이 진행된다. 크리스티나는 여행과 섹스 모두 찬성, 비키는 여행은 찬성하지만 섹스는 반대, 후안은 원래 생각과 달리 한 사람과 섹스하는 일에 그냥 만족. 이런 문제도 서로 토론해서 합의를 보니 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과연 선진국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매사가 이런 식으로 결정되니 크리스티나가 이혼한 부부인 후안과 마리아를 동시에 사랑하는, 전무후무한 막장 설정이 나오는데도 이상하지가 않다. 항상 자신의 입장에 맞게 상황을 해석하고 서로 토론한 뒤에 절충안을 만들어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니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영화의 막판에 보면 비키가 혼란스러운 자신의 심정을 나이 많은 주디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그랬더니 주디는 그 생각이 하나도 잘못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후안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보라고 격려하기까지 한다. 그런다고 비키가 옳다구나 하고 후안에게 연락하는 일은 없겠지만, 최소한 비키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계기는 생기는 셈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자신을 객관화하는 일이 바로 어른들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몇 십년 동안 밥 말리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래, 여자가 없으면 눈물도 없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상념에 젖었던 나는 그 뜻이 ‘그만, 그대여, 울지 말아요’라는 사실을 알고 과연 그렇겠다는, 그러니까 여자가 있어서 내가 눈물을 흘린 건 아니라는, 어쩌면 여자와 눈물은 아무런 관계도 없을 수도 있겠다는, 심지어 우는 여자마저도 나 때문에 우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동기생에게 뭘 배운 일이 없으니 이런 시시콜콜한 일까지 기억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그런 동기생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늘 해맑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면, 그 어떤 막장에서도 우리는 웃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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