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이 오셨다. 3월12일 개봉할 <드래곤볼 에볼루션>을 홍보하기 위해 우리의 영원한 ‘형님’ 주윤발이 한국을 찾은 것이다. 2월1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전히 김치 맛은 최고이고, 냄새나 사람들의 모습은 똑같다”고 15년 만에 내한한 소회를 밝힌 그는 “매니저이기도 한 아내가 아주 유명한 가방 하나를 사기 위해 나를 이 영화에 출연시켰다”면서 익살을 떨기도 했다. <드래곤볼 에볼루션>에서 그는 가장 코믹한 캐릭터 무천도사를 연기한다. 하지만 어린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가족영화를 표방한 만큼 원작 만화에서처럼 소녀의 팬티를 보고 쌍코피를 터뜨리거나 하진 않는다고. 원작보다는 점잖지만, 어쨌거나 항상 묵직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에게 어딘가 허술한 무천도사 역은 일종의 연기 변신이 될 듯하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제임스 왕 감독을 비롯해 손오공 역의 저스틴 채트윈, 부르마 역의 에미 로섬, 야무치 역의 박준형, 피콜로 역의 제임스 마스터스, 그리고 한국계 미국 배우 제이미 정 등도 참석했다.
제임스 왕 감독 인터뷰
“만화를 몰라도 즐거울 것”
-어떻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나. =2007년 3월 폭스에서 <드래곤볼>을 영화로 만들자는 제의를 해왔다. 당시 나는 이 만화를 잘 몰랐다. 우리 아이들이 TV로 <드래곤볼Z>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는 걸 지나치며 봤을 뿐이다. 그러다 어느 날 폭스에서 만화책을 받았는데, 정말 좋았다. 하지만 이를 영화로 만드는 건 어려운 작업이었다. 수많은 이야기, 캐릭터가 등장해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고민이 됐다. 결국 이 만화의 팬들도 만족시켜야겠지만, 나처럼 만화를 몰랐던 사람 또한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풀어나갔다.
-이 영화의 타깃을 그렇게 설정한 이유는. =폭스는 처음부터 가족영화를 원했다. R등급 영화를 만들어온 내게 PG등급 영화를 만들라고 한 거다. (웃음) 영화를 만들 때 중요한 점은 어떤 관객을 상대로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그게 확실하면 캐릭터, 촬영방식 등 모든 것은 그에 따라 흘러간다.
-<X파일> <밀레니엄> 같은 컬트 TV시리즈의 각본을 썼고, <데스티네이션>이나 <더 원> 같은 당신의 연출작을 고려할 때 가족영화는 의외다. =할리우드에서는 전작이 다음 작품을 결정한다. <X파일>과 <밀레니엄> 이후 나는 킬러, 피, 공포… 뭐 이런 게 나오는 영화만 제안받았다. (웃음) 물론 내가 그런 요소를 좋아한다. 하지만 내 영화를 내 아이들에게 보여준 적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11살짜리 쌍둥이, 16살짜리 아이와 함께 시사회도 같이 갈 수도 있고, ‘이 영화 우리 아빠가 만들었다’고 자랑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캐스팅의 절반 정도가 아시아계 배우다. =캐스팅을 하기 전 내가 세운 계획은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배우들을 출연시킨다는 것이었다. 단 하나, 무천도사는 유명하고 무게감있는 아시아계 배우가 맡아야 한다고 봤다. 주윤발은 거기에 완벽하게 맞았다. 아무튼 그래서 다양한 배우를 만나봤다. 결과적으로 아시아계 배우가 많이 캐스팅된 것은 그 배역에 가장 적합한 배우를 찾은 결과이다. 박준형이 맡은 야무치만 해도 가수 크리스 브라운 같은 친구도 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박준형을 보니까 바로 이 친구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미 정은 가장 늦게 캐스팅한 배우인데, 액션 훈련을 할 시간이 부족해 <사무라이 걸>을 통해 무술 실력을 보여준 그녀를 선택하게 됐다.
“껌 씹는 연기로 콜 받았다”
야무치 역의 박준형 인터뷰
“꺄악!” 기자회견장 바깥에서 터져나온 괴성은 god의 열성팬 10여명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들은 박준형의 말 하나하나에 환호로 화답하며 그의 화려한 귀환을 축하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연기를 하겠다며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간 박준형이 이처럼 빨리 자리잡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스피드 레이서>에서 인상 깊은 단역을 맡았던 그가 곧바로 <드래곤볼 에볼루션>에서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했으니 말이다. 기자회견 내내 그가 짓던 흐뭇한 미소도 그런 행복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미국에서는 내가 god인지 뭔지 모르잖나. 당연히 다른 사람과 똑같이 오디션을 봤다. 어릴 때부터 일본계 친구들이 많아 여러 만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방학 때 한국 할머니집에 올 때마다 TV에서 다양한 만화영화를 봤다. <드래곤볼> 또한 일본계 친구들을 통해서 알게 된 만화다.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만화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어떻게든 출연하고 싶었고, 열심히 연습해서 오디션에 임했다.
-오디션 분위기는 어땠나. =며칠에 걸쳐 진행됐는데 내가 참석했던 날만 해도 12명쯤 있었다. 그중에는 의상을 만화 캐릭터처럼 입고 온 경우도 있었고, 이미 영화에 얼굴을 비춘 배우도 있었다. 난 안되겠구나 싶었지만, 그냥 모르겠다 하고 나름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며칠 뒤에 미국 매니저가 전화를 하더니 내가 오디션 도중 껌을 씹고 있었다며 다시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는 거다. 그래서 다시 찾아가 똑같이 연기했더니 감독님이 그러더라. 너는 정말 야무치 같다고.
-야무치는 어떤 캐릭터인가. =내가 볼 때 야무치는 겉으로는 거친 척하지만 속은 여린 인물이다. 그는 도둑이었지만 손오공, 부르마, 무천도사 등과 함께 모험을 하면서 지구를 구하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개인들의 욕심 때문에 갈수록 세상이 살기 힘들어지고 있는데, 이런 내용이라면 가족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
-두 번째 영화 출연인데도 비중이 큰 조연을 맡았다. =나도 놀랐다. 일단 하느님에게 감사드리고, 팬 여러분에게 감사드리고, JYP 식구에게도 고맙다. 내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나를 응원해준다는 자신감 덕분인 듯하다. 그것을 믿고 어딜 가나 자신만만할 수 있었으니까.
-주윤발이라는 대스타와 함께 연기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을 것 같다. =예전에 사촌형과 <정전자>를 보고 버스가 끊겨 신사동 브로드웨이극장에서 왕십리까지 걸어온 적이 있다. 그 정도로 좋아했던 배우와 함께 일을 하는 건 대단하다. 멕시코 촬영장으로 가는 헬리콥터 안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떨리더라. 팬이라고 사진 같이 찍어도 되냐니까 친절하게 직접 셀카를 찍어주더라.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는데도 얘기를 나눠보면 장난기도 많고 친절하기도 하다. 더 놀라운 것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본다는 거다. 영어 표현 같은 것을 내게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게 진정한 프로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 생각에 진정한 프로는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는 사람이다. 프로가 아닌 사람은 아는 척하다가 일을 망치게 되는 것이고.
-한국에서는 서툰 한국어 때문에 고생했는데 미국에서는 편했겠다.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연기를 하고 싶지만 아직은 준비가 안됐다. 일반적으로 한국 활동을 바탕 삼아 미국으로 나가는데, 나는 미국에서 활동한 것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활약하고 싶다. 우리말을 조금 더 연습해서 말이다. 지금 당장은 재미동포 역할 아니면 ‘구두딱쓰~’ 뭐 이런 거, 그러니까 엑스트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잖나.
-한국에서는 연기 경력이 없었던가. =오래전 <나쁜 영화>에 잠깐 출연했다. 그때 누나가 거기 코디였는데,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신에 나를 출연시켰다. 주인공과 댄스배틀도 했는데 기억 안 나나?
-결국 연기쪽으로 계속 가는 것인가. =연기를 계속 하고 싶다. 그렇다고 음악에 대한 욕심을 버린 것도 아니다. (김)태우는 곧 제대하는데, 일단 솔로음반을 하나 내고 싶다더라. god 활동은 그 뒤에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