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로미오와 줄리엣> 중에서)
재일동포 3세 소년의 경쾌한 성장담을 통해 재일동포의 정체성에 문제제기하는 영화 가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관객들과 첫만남을 가졌고, 11월24일 국내개봉한다. 일본의 영화제작사 도에이와 한국의 스타맥스의 한·일합작영화이기도 한 는 현재 일본에서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배우 구보즈카 요스케가 주연을 맡아 더욱 화제가 되었고, 도쿄 마루노우치극장에서 일반인 대상 시사회가 열리던 날, 관객이 아침 9시부터 줄서서 기다릴 만큼 지대한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는 초반은 코믹하게, 후반은 멜로적 감성으로 무장하고 신세대를 공략하는 유쾌한 드라마다. 도쿄에서 만난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과 주인공 스기하라 역의 배우 구보즈카 요스케, 그리고 원작자 가네시로 가즈키가 소설에서 영화까지, 의 ‘성장담’을 들려주었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러브 레터> <언두>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등에서 이와이 순지 감독의 조감독으로 경력을 쌓았다. 2000년 <오픈 하우스>로 감독 데뷔한 뒤 감성적 멜로 <해바라기>로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는 그의 네 번째 연출작이다.
를 영화화하게 된 계기는.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땐 당혹스러웠다. 이건 재일한국인 이야긴데, 난 일본인 아닌가. 그걸 내가 어떻게 설명하나, 내가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하게 예전에 사고로 죽은 친구가 하나 있다. 언젠간 그와의 추억을 영화화하고 싶었다. 이번 기회에 해보자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한국인이라는 설정도 좋았다.
원작과 어떤 차별점을 두었나. 원작의 지나치게 발랄한(?) 문체에 거부감은 없었나.
거부감은 없었다. 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 즉 ‘소년, 소녀를 만나다’다. 단지 재일동포라는 것이 문제였는데, 나라는 상관없다. 멜로적 감성은 이와이 순지의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내 당면과제는 이와이 순지다. 그는 아시아에서 모두 통하는 영화를 만들었으니까. <고>는 원작에 충실하려 했다. 사실 내가 직접 각본을 쓰지 않은 영화는 처음이었고, 나의 역할은 배우를 움직여 원작 그대로 연출하는 것이었다.
앞의 질문과 연장선상인 것 같은데, 원작은 재일동포의 문제라는 묵직한 주제를 젊은이의 연애담으로 풀어간다. 소설에서는 그런 발랄함을 문체로 승부했는데, 영화 는 초반에는 경쾌하지만 후반에는 늘어지는 것 같다. 왜 그렇게 했나.
발랄함을 표현하는 데는 각본가 구도 간쿠로의 힘이 컸다. 그는 코믹 터치에 뛰어난 사람이고 감독인 나는 러브 스토리에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융합했다. 초반과 후반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면 아마 초반은 각본가, 후반은 감독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에서는 감독과 각본이 융합하는 건 상상도 못한다. 각본가의 작가성과 감독의 영상작가성이 융합이 잘 안 된다. 는 그런 면에서도 특이한 케이스다.
최양일 등 재일동포 감독과 교우는 있는가. 를 만들면서 그들이 만든 영화를 참조하거나 하지는 않았는가.
최양일 감독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다. 그러나 자문을 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등장인물이 재일한국인일 뿐 인간을 다룬 드라마니까. 나중에 영화를 보고 의견을 줬으면 좋겠다.
스기하라 역 배우 구보즈카 요스케
재일동포 3세 소년 스기하라의 쿨한 매력을 그대로 영상에 살려낸 배우 구보즈카 요스케는 현재 일본에서 인기가도를 질주하는 스타다. 1979년생이며, 95년부터 활동을 시작, 위성방송 의 <소년H>, TBS <이케부쿠로 웨스트게이트 백>, 의 <한번 더 키스> 등 TV드라마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 속 스기하라의 펑크 스타일을 실제로 보고 싶었지만 빨간 야구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다. 나중에 모자를 벗으니 시원하게 머리칼을 밀어버린 모습. 왜 머리를 밀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머리카락이 필요없다고 생각해서 잘랐다”는, 스기하라가 내뱉을 법한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인으로서 재일동포를 연기한 소감은.
그동안 재일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없었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스기하라의 역할 때문에 노력했다. 권투연습을 통해 몸을 단련했다. 책도 많이 읽고, 의식을 바꾸려 노력했다. ‘나는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문제도 고민하게 됐다. 우리 세대는 관계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알고 있어야 극복할 것 아닌가. 우리 세대는 잃어버린 세대(로스트 제너레이션)다. 뭔가 특수하고 위험한. 우리 세대는 개개인이 사회와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의 그런 의식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싶다. 내년에 한국과 일본은 월드컵을 공동개최한다. TV 등에서 인터뷰할 때 보면 한국 젊은이들은 교과서, 한-일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있고 역사인식도 강하다. 하지만 일본 젊은이들은 개인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고, 의식이 뒤떨어진 발언을 한다. 그런 것도 바꾸고 싶다.
출연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거운 차별문제를 심플하게 풀어간다는 것이 좋았다. 출연을 결정한 뒤 읽은 원작도 좋았다. 스기하라라는 쿨한 캐릭터도 매력적이었다. 다만 그에게 너무 빠져들어도 안 되고, 너무 거리를 둬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개봉한다. 관객이 어떻게 봐주면 좋겠나.
그냥 있는 그대로 봐달라. 영화를 본 뒤 재미있으면 있고, 재미없으면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영화를 보고나서 아버지와 어머니, 친구,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 다시 한번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원작자 가네시로 가즈키
원작자 가네시로 가즈키는 재일동포 3세다. 실제로 주인공 스기하라처럼 총련계, 그러니까 민족학교의 초·중학교를 나와 일본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신의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쓴 소설 로 2000년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유미리 등 전대의 재일작가들의 작품이 전혀 현실적이지 않고 파괴하고 싶으며, “그런 작품은 아무리 읽어도 구원되지 않는다”는 ‘실천하는’ 문학관을 갖고 있는 작가다.
소설에서 자전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나.
실제로 아버지가 복서였다. 나는 민족학교를 다니다 일본 고교에 진학했다. 그런 포인트들, 구성요소들은 그대로 가져왔다. 한 50%쯤 되려나. 아버지는 실제로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에 심취했고 북한에 실망해서 전향한 분이셨다. 그리고 “넓은 세계를 봐라”라고 나에게 말했고. 제주도 출신이다. 실제로 집에서 맞은 적도 있다. “이놈, 이 개XX”라는 말과 함께. (웃음)
스스로를 코리안 재퍼니즈라 부르는 것으로 안다. 코리언 재퍼니즈와 재일동포란 단어의 차이는.
‘재일’은 시대에 맞지 않는 단어다. 그 단어 안에 이미 차별의 느낌, 이방의 느낌이 들어 있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자라고 있는데 언젠가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담겨 있는 그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이 스스로를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라 부르듯이.
유미리 등 다른 재일동포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고등학교 시절 그들의 작품을 많이 읽었는데, 실제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어느 시대 이야기냐 싶었다. 내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걱정없이 즐겁게 살아간다. 그런데 그런 작품들은 전형적이고 고전적이고 폐쇄적이다. 그런 가부키 같은 전형성이 싫었다. 좀더 현실에 가까운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한국에 가봤는지.
서울과 제주에 가봤다. 택시사건은 실제다.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개봉한다. 한국관객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보편적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재일동포 3세 소년이 주인공이지만, 결국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연애담이다. 국경과 민족의 벽을 어떻게 넘을 수 있는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의 일본 반응은 어떤가.
반응 좋다. 실제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렸기 때문에 생생한 이야기라고들 한다. 소설을 읽고 고무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재일동포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싶은데 부모의 반대를 우려해 고민만 하다가 를 읽고 용기를 얻었고, 부모와 싸울 준비가 됐다는 내용의 편지도 받았다.
재일동포사회에서 전세대와 신세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나.
실제로 3세대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살고 일본 학교를 나와 일본 회사를 간다. 1·2세대는 여전히 고국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3세대는 일본에서 살아가자, 성공하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3세대에게 취업 등의 불이익은 있다. 아무리 일해도 사장이 될 수 없다. 앞으로는 변할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가.
여러 테마를 섭렵하면서 재일문제를 다루고 싶다. 기존 재일문학을 깨부수고 싶다. 지금 재일한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 가부키가 아니라 지금 이야기를 읽히고 싶다는 말이다. 1·2세대 문학은 그것을 어필하지 못했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폐쇄적이고 고리타분한 그런 이야기들은 아무리 읽어도 “구원되지 않는다”. 도쿄=위정훈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