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씨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조금은 이해가 가고, 약간은 이해가 안 가는 일이지만, 어떤 한국인들은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했다. 한국인 된 처지로 어쩔 수 없이 그의 당선을 보고 2002년의 노무현을 떠올린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다. 우리가 더 빨랐다. 노무현이 ‘한국의 오바마’가 아니라, 오바마가 ‘미국의 노무현’이다.
노무현을 싫어하는 이들에게 이런 지적은 오바마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냉엄한 진실을 드러낸다. 반면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지적이야말로 이명박이 오류이고 노무현이 진리임을 보여주는 보증수표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됐건 성급한 건 마찬가지다. 설레발은 금물이라는 지적은 기본적으로 타당하지만, 오바마에게서 노무현의 향기를 느꼈다고 하여 그 역시 노무현처럼 실패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노무현이 아니라 노빠다.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이셨던 노무현 선생님은, 비록 인터넷에서 자신이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강변하고 계시기는 하지만 역사의 영역으로 넘어가셨다. 설령 다시 정계에 복귀하신다 하더라도 복귀한 그와 과거의 대통령 노무현은 구별된다. 하지만 노빠들은 얘기가 다르다. 그들이 ‘노무현의 업적’이라는 게시물을 여기저기 퍼나를 때, 오바마와 이명박과 노무현의 정책을 비교하며 노무현님은 짱이라고 말할 때, 진중권의 타당한 지적처럼 씹기가 너무 쉬워 문학과 비평을 말살하는 이명박 시대의 정치적 대안은 ‘노무현’이란 상징 안에 협소화된다. 과연 지금 한국사회의 문제가 ‘이명박 시대’를 ‘노무현 시대’로 되돌리면 해결되는 문제일까? MB노믹스가 아니라, 무혀노믹스가 20년, 30년 유지되었다면 한국 경제는 건전해졌을까?
노빠들은 말한다. 부동산, 주가지수, 경제성장률 등이 노무현 시대에는 괜찮았는데 이명박 시대엔 그렇지 않다고.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자. 만약 2002년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부동산·주가지수·경제성장률은 어땠을까? 만약 2007년에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부동산과 주가지수, 그리고 경제성장률의 하락을 막을 수 있었을까?
답은 이렇다. 2007년에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현재의 위기는 달라질 게 없었을 것이다. 이명박에게 책임이 있는 건 현재의 위기가 아니라 MB노믹스로 인해 닥쳐오게 될 이후의 위기다. 그리고 만약 2002년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부동산 가격은 더 뛰었을 것이고, 주가지수도 더 올랐을 것이고, 경제성장률도 더 높았을 것이다. 이건 그가 노무현보다 더 화끈하게 거품을 만드는 남자라는 가정에서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상세계의 ‘16대 대통령 이명박’은 현실세계의 ‘16대 대통령 노무현’이나 ‘17대 대통령 이명박’보다 위대한 인물일까? 그럴 리 없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노무현 시대의 “그럭저럭 괜찮은 경제지표”는 개혁의 지연과 나름의 거품 제조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004년 총선 이후 그가 분양가원가 공개를 반대하지 않았다면 2006~2007년의 부동산 폭등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대출해서 아파트를 사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대출을 충당하기 위해 은행들이 단기외채를 끌어다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종부세라는 ‘업적’ 뒤에는 그런 사정이 있다. 실질소득이 떨어지는데도 서민들에게 부자가 된다는 착각을 심어준 펀드 열풍 역시 노무현 시대의 것이다. 이명박이야말로 노무현의 미래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명박의 실정과 오바마의 당선과 함께 은근슬쩍 돌아오려는 노빠들을 다시 한번 탄핵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