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돌리기를 한다고 했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경험했을, 심하게 건전한 오락의 한 장르다. 나 역시 수건을 움켜쥔 술래가 되어 친구들이 만든 원 바깥을 빙글빙글 돌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딱 중학교 때까지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엔 유치하게 느껴져 결코 그 놀이에 가담한 적이 없다. 한데 중딩도, 고딩도 아닌 대딩들이 수건돌리기를 하며 논다고 했다. 5년 전 베트남의 호치민국립대학교 교정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80년대 중반 <사이공의 흰옷>이라는 번역 소설이 대학가의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베트남전쟁 기간 남베트남 학생운동가들의 격정과 눈물을 그린 장편소설이었다. 비장미가 넘치던 그 소설이 베트남 학생운동에 관한 어떤 아우라를 품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수건돌리기는 그 아우라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던 셈이다.
한국의 대학생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교정에서 수건돌리기를 하며 여흥을 즐겨보라고.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다. 베트남 대학생들의 그 놀이문화를 꼭 한심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1975년 4월, 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미국 군대와 그 대리인들은 도주하거나 무장해제됐다. 평화가 찾아왔다. 부패한 정권에 맞서 데모할 일도 없어지고 심심해졌다. 정치적 관심도 사라져갔다. 이것이 수건돌리기의 한 배경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좀 코믹하기는 하지만. 피끓는 청춘이라 하여 언제나 조국의 현실에 고뇌하며 안절부절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이 되었다. 그 6개월 동안 이 땅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 일련의 사건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갖가지 분석과 비평이 쏟아지겠지만, 이런 장난스런 코멘트를 한마디 덧붙여도 되겠다. “대학생들, 수건돌리기는커녕 수건 쓰게 생겼다.” 시위용 복면으로 말이다. 성난 민심 앞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하얀 수건을 던지지 않은 대통령 탓이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입 아프게 말해온 ‘잃어버린 10년’은, 젊은이들이 ‘정치적 관심을 잃어버린 10년’이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그랬다. 개인적으로도 냉소적 풍조에 감염되었던 과거를 고백한다. 누군가 한국사회의 구조적 현실에 관해 비분강개하는 태도로 열변을 토할 때면 피식 웃음부터 터져나왔다. 거대담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달라졌다. 나처럼 시니컬한 사람조차 뉴스를 보며 열불을 내고 주먹을 불끈 쥐는 일들이 잦아졌다.
이명박 정부는 젊은이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과 의식화에 상당히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인정사정없는 촛불시위 진압과 정성을 다한(!) 방송장악, 황당한 국가보안법 위반 조직사건까지, 반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험하고 별난 체험을 참으로 풍성하게 제공했다. 이제 40이 훌쩍 넘은 ‘속칭 386세대’들은 자라나는 세대들 앞에서 함부로 잘난 척도 못하게 됐다. “니들이 백골단을 알아?” “니들이 공안사건 조작의 칼바람을 알아?” “니들이 금서를 알아?” 이제 그들도 대충 알게 되었다. 타임머신을 타지 않는 한 다시 겪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던 5공식 프로그램들이 ‘실용정부’에서 재방송된 덕분이다.
대학생들이 천진난만하게 수건돌리기 하는 모습이 유토피아적 풍경처럼 다가온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유치하게 구는 나라에서, 대학생들은 유치하게 놀 자유마저 빼앗기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