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쾌감 지수 ★★★★ 미이케 다카시 작가 지수 ★ 오구리 슌 원맨쇼 지수 ★★★★

“주먹 하나로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무대” 스즈란 고등학교엔 위도 아래도, 선생도 제자도 없다. 짱이 되기 위해 주먹을 날리는 몇개의 그룹과 이들을 이끄는 몇명의 두목이 있을 뿐. 야쿠자 조직 유성회 보스의 아들 타키야 켄지(오구리 슌)도 이 무리 중 한명이다.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은 그는 과거 아빠가 실패한 스즈란 재패의 꿈을 보란 듯이 이루기 위해 스즈란 고등학교로 전학 온다. 벽에 낙서된 ‘스즈란의 짱 세리자와 타마오’를 지우고 대신 자신의 이름을 써넣는 대담한 타키야. 그는 우연히 만난 스즈란 출신 야쿠자 카타기리 켄(야베 교스케)의 조언을 받아 한 그룹씩 힘으로 접수하며 세리자와 타마오를 압박한다. 상대적 강자인 세리자와는 스즈란 고교 평정에 가장 가까운 인물. 하지만 아직 절대적 1인자는 없다. 정상에 서려는 혈기왕성한 청춘들이 앞뒤 보지 않고 덤비며 부딪친다.

다카하시 히로시의 인기 만화 <크로우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 <크로우즈 제로>는 기본적으로 성장영화의 틀을 따르고 있다. 아버지와 반목하는 아들이 반항과 오기로 싸움에 나서고 그 과정엔 친구와의 우정과 배신이 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현실에 대한 이해와 청춘이 누릴 수 있는 꿈의 힘. 하지만 <크로우즈 제로>가 더 강조하는 건 ‘끝까지 달려보지 못한 인생’, ‘어중간한 삶’에 대한 자책과 위로다. 타키야의 정신적 멘토처럼 그려지는 카타키리는 유성회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능력이 안 돼 유성회의 적대조직 야카키의 야쿠자로 살아가는 인물. 스스로를 실패한 깡패라 자조하는 카타키리는 타키야에게서 자신의 잃어버린 꿈을 찾으려 한다. 영화의 앞과 뒤를 장식하는 그의 비장한 총살장면에서 카타기리는 타키야에게 “끝까지 날아”라고 얘기한다. 이 둘의 관계는 실패한 과거의 이상을 청춘이란 미완의 꿈으로 복구하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세리자와의 절친한 친구 토키오의 캐릭터도 비슷하다. 병이 있어 수술을 해야 하는 그는 “수술해서 30%밖에 살지 못하는 거라면 수술하지 않고 100% 살겠다”고 말한다. 원작의 인물들은 그대로 가져왔으나 이야기는 원작의 1년 전에서 시작한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패배자의 정서, 도중에 포기한 꿈의 애잔함을 정성들여 묘사한다. 거친 액션과 함께 <크로우즈 제로>에서 미이케 다카시의 인장이 보이는 부분이다.

스즈란 고교 안의 폭력과 밖의 폭력, 학교 안의 질서와 현실의 논리 등 세상의 비열한 아픔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건 아니지만 <크로우즈 제로>는 현재까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만든 영화 중에서 가장 미이케 감독의 냄새가 옅은 작품이다. 원작에는 없는 여고생이 알앤비 발라드를 부르는 장면이나, 타키야 일행이 미팅을 주선하는 부분 등은 최근 20대를 겨냥해 제작되는 도호 영화의 번들거리는 장신구 같다. 거친 액션도 어딘지 보기 좋은 틀 속에 넣어놓아 달게 느껴진다. 도호와 TBS가 제작에 참여한 이 영화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영화로서 감상하기엔 조금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TIP/2007년 10월 일본에서 개봉한 <크로우즈 제로>는 당시 7주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있던 기무라 다쿠야 주연의 <히어로>를 누르고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했다. 총흥행수익은 25억엔. 제작위원회는 곧바로 속편 제작을 결정했고, 전편에 이어 미이케 다카시 감독 연출과 오구리 슌 주연이 결정됐다. 2편은 1편에서 8개월 뒤를 그릴 예정. 이제는 스즈란 고등학교를 벗어나 학교간의 전쟁이 펼쳐진다. 올해 7월 크랭크인, 2009년 일본 개봉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