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이념적 보수에서 시장적 보수로 변신했다. 한마디로, 수구꼴통의 오합지졸들이 시장주의 탈레반의 군대로 정연한 대오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 사이에 민주당 세력은 여전히 과거에 한나라당을 물리쳤던 마법의 공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즉 민주와 통일이라는 80년대 이념으로 군사독재정권의 후예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결정적 오류다.
‘민주’의 과제는 민주적 정권교체(김대중), 참여민주주의(노무현)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됐다. ‘통일’의 과제 역시 굴곡은 있었지만 개성공단, 북한관광, 정상회담 등 가시적 성과를 내며 진전돼왔다. 이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자 대중은 다른 욕망을 갖게 됐다. 상부구조에 눈을 빼앗긴 사이에 삶이라는 하부구조가 망가진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나라당은 그 빈틈을 치고 들어왔다.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당(민주)과 민노당(자주)의 부진은 여기서 비롯된다. 민주당은 아직 패배의 원인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왜 졌는지 모르는 이상한 선거.” 이인영 전 의원의 말이다. 민노당의 경우 위기를 감지하고 당내에서 혁신을 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진보신당의 결성으로 이어졌으나, 이름도 생소한 정당이 20일 만에 성과를 내겠는가?
왼쪽 깜빡이의 우회전은 대중의 판단에 혼란을 초래했다. 대중은 제 삶이 어려워진 것을 우회전이 아니라 깜빡이 탓으로 돌렸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이 폭락해도 왜 그 표가 민주당으로 향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우회전할 바에는 차라리 이명박처럼 화끈하게 펴는 게 낫지 않은가? 혹시 알아? 그러다 보면 잘살게 될지.” 이게 대중의 생각이다.
조짐은 이미 오래전에 있었다. 노무현이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하고, 그 지지자들이 그것을 열렬히 옹호했을 때, 패배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노무현 지지 사이트가 졸지에 황우석 지지자들의 본부가 되었을 때, 패배는 확정되었던 것이다. 노무현의 ‘개혁’은 상부구조에 머물렀을 뿐, 하부구조에서는 외려 ‘보수’로 회귀했다. 이를 의식하지 못한 지지자들은 그를 옹호하는 가운데 스스로 보수화되어갔다.
‘33조를 위해 여성의 신체를 희생해도 좋다’는 것은 결국 ‘돈을 위해 모든 가치를 희생할 수 있다’는 얘기. 바로 그것이 이명박 철학이 아닌가. 민주당 세력이 한나라당과 싸우는 전술적 기동을 하다가 국민의 절반을 이끌고 한나라당 철학에 전략적 투항을 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사회의 보편적 전반적 보수화. 노빠+박빠=황빠. 지금 상황과 뭐가 다른가?
이 우울함 속에도 긍정적 측면은 있다. 즉 이 사회의 의제가 상부구조의 개혁을 둘러싼 관념적 대결(‘민주 대 독재’)에서 하부구조의 설계를 둘러싼 물질적 대결(‘진보 대 보수’)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 사회에 드디어 진보정치를 할 물적 토대가 생긴 것이다. 과거에 진보정당은 표를 갈라 수구세력을 돕는다는 비난을 들었으나, 요즘에는 그런 얘기 듣기 힘들다.
진보의 의제가 바뀌었다. 급한 것은 시장주의 공룡의 먹성으로부터 고용과 생활의 안정성, 교육과 의료의 공공성, 생태와 환경의 가치를 지키는 일. 패배한 진보신당에는 지금 외려 후원과 입당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지(켜주지)못(해)미(안해)’ 현상. 고마운 일이다. 근데 한번은 이명박 정권을 보고, 다시 우리 아이들에게 눈을 돌려보면, 이건 미안할 일이 아니라 절박할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