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리스([email protected])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어웨이 프롬 어스([email protected])님이 입장하셨습니다.
헬프리스님(이하 헬프)의 말: 아! 오늘 제 대화명도 <어웨이 프롬 허>에서 따왔어요. 오래 하다보니 닮아가는 듯. 그래서 메신저토크를 끝낼 때가 됐나봐요. ^^ <어웨이 프롬 허>의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 흐르는 K. D. 랭의 노래 제목이 <헬프리스>거든요. 살면서 무력감에 얼마나 잘 적응하냐가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을 저 자신이 종종 하고 살아서리….-_- 그리고 ‘Help Lee’s’라고 새기면 “이군이 하는 짓거리 좀 도와주구려”의 뜻도 되고. ^^
어웨이 프롬 어스님(이하 어스)의 말: 쯧쯧. 선배는 꼭 딱 좋을 때 한발 더 나아가신다니까요. 제가 선배를 멈췄어야 했는데…. -..-
헬프: 마지막이잖아요. 좀만 참아주구려. -_-#
김혜리: 20대 후반 감독의 데뷔작으로선 의외로 노년의 경험을 다루죠. 이동진: 함께한 기억마저 휘발된다면 그 사랑은 대체 무엇인가 곱씹게 되더군요.
어스: <어웨이 프롬 허>는 캐나다 배우 사라 폴리의 감독 데뷔작인데요. 20대 후반 감독의 데뷔작으로서는 다소 의외로 노년의 경험을 소재로 다뤘습니다.
헬프: 확실히 그런 감이 있죠? 하지만 원작이 있는 경우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스: 뭐, 세상에는 죽음이나 인생의 말년에 대해 남보다 유난히 더 일찍, 더 열심히 생각하는 이들이 있으니까요. 특히 예술가라면야.
헬프: 맞아요. 오히려 청년 시절에 죽음의 이미지에 강렬히 사로잡히는 경우도 많잖아요.
어스: 사라 폴리는 다른 영화를 찍느라 줄리 크리스티와 로케이션에서 함께 지내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먼로의 원작을 읽었답니다. 자연스레 줄리의 얼굴을 떠올리며 원작 <곰이 산을 넘어오다>를 읽었고 이후 1년 정도 줄리 크리스티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어웨이 프롬 허>는 결혼 44년이 된 부부가 아내 피오나(줄리 크리스티)의 알츠하이머병으로 헤어져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립니다. 요양원에 들어간 아내는 남편을 잊고 다른 환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영화는 주로 그것을 아프게 지켜보는 남편의 시점으로 진행되죠.
헬프: 하필 44년이라니,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와의 사랑을 두번 죽이는 스토리입죠, 눼~ -.- 기억에서 그 사람이 멀어져가는 것도 억울한데.
어스: 맞아요. 피오나가 요양소에 들어가는 것이 부부의 첫 이별이라면 규정상 한달 뒤 남편이 첫 방문했을 때 아내가 그를 손님처럼 정중하고 서먹하게 대접하는 장면이 두 번째 이별이라고 해야겠죠. 입원 전 도입부에서 그랜트(고든 핀센트)와 피오나 부부의 생활은 정말 ‘만월’에 다다른 사랑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답니다. *.* 은퇴한 부부가 한적한 집에서 서로만 이해하는 농담을 주고받고 설원을 산책하고 이야기책을 읽어주고 밤이면 여전히 다정한 섹스를 하고…. 집안의 물건을 둘러보면 그 하나하나에 둘 만 기억하는 이야깃거리가 있는 부러운 정경이었죠. (한숨)
헬프: 영화가 무척이나 고요한데, 노년에 참 잘 어울리는 정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상대의 몸을 늙고 거친 손으로 쓸어주는 장면 같은 게 참 애잔하더군요. 눈 덮인 설원도 그들의 상태를 그대로 암시하는 느낌이 강하죠.
어스: 사실 알츠하이머병은 피오나의 대사처럼 한 사람이 “한 조각 한 조각 사라져가는” 상황인데요. 이 영화에서 더욱 슬픈 점은 피오나가 젊은 날 모습의 광채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나이 든 여자라는 점이었어요. 남편은 여전히 아내의 모습에서 “우리 결혼하면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라고 묻던 18살 아가씨를 고스란히 보는데 그런 아내가 함께한 세월을 잊는 거잖아요. T-T
헬프: 저는 영화를 보면서, 아무리 늙어도, 심지어 기억이 다 사라지는 알츠하이머에 걸려도, 새로운 사랑은 어쩔 수 없이 관계의 혼돈을 일으킨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전에 종로 전철역에서 서로 멱살잡이를 하고 욕하며 싸우던 8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 두분을 보면서 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인간의 성정에선 변하지 않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그냥 우리의 이상적인 생각으론 80대쯤 되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초탈하게 될 것 같은데, 그게 또 그렇지 않은 듯. -_-
어스: 제가 두려운 점은 중년까지 우리가 애써 성숙시켜놓은 자아가 노년에 부서지면서, 겨우 다스려놓았던 감정들이 저를 휩쓸어버리는 사태예요. 우리는 대부분 비록 나선형일지언정 인간의 삶이 죽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어하잖아요. 그런데 말년에 평생의 정신적 자산을 잃고 원한과 악의만 기억하는 상태가 된다면 그보다 무서운 일이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케이스에 비해 이 영화의 피오나는 우아한 예라고 봐야겠죠. 자신이 남편에게 부담이나 위험이 될까봐 스스로 요양소 입원을 결정하니까요.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주인공 부부가 병을 대하는 태도였어요. 당사자 피오나는 자신의 단기 기억상실에 대해 계속 농담을 던지고 남자도 거기에 부드럽게 맞춰주죠. 물론 남편의 평정은 아내와 헤어지는 요양소 앞마당에서 무너지지만.
헬프: 이 영화에서 피오나가 가물가물해지는 기억력에 탄식하면서 “정작 그렇게 잊고 싶을 땐 안 잊혀지더니”라고 탄식하잖아요? 정말 삶에선 언제나 아이러니가 작용하죠. 삶의 좌표평면에서 시간과 공간이 조금씩 어긋날 때마다 아이러니가 생긴다고 할까요. 심지어 영화에서 기억력이 안 좋은 것으로 묘사되는 첫 장면은 남편의 것이죠. ^^ 스웨터를 언제 빨았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전쟁 직후였는데 그게 50년대인가 60년대인가”라고 답하잖아요? 물론 아내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농담이지만요. 그런 것들이 영화 속에서 얽히면서 묘한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어스: 특히 이 영화가 과거, 현재를 오가고 현재 안에서도 시간의 직선적 흐름을 흩어놓은 편집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그런 뉘앙스를 발생시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의미가 통하거나, 아이러니를 일으키는 장면들을 시제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충돌시키니까요. 편집은 사라 폴리 감독의 남편이 했다네요. ^^ 그럼, 줄리 크리스티 이야기를 해볼까요? 사실 올해 오스카 여우주연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간주됐었는데 수상을 하진 못했죠.
헬프: 저도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할 때 가장 궁금한 게 줄리 크리스티의 연기였어요. 보고 나서 느낀 것은, 줄리 크리스티는 어쩜 저리 고혹적으로 늙었을까… 라는 생각.^^ 이 영화에서 줄리 크리스티의 뒷모습은 정말, 여전히, 멋지더군요. 거리에서 보면 따라가고 싶을 만큼요. ^^
사실 아킬레스의 어머니인 테티스 신으로 분한 <트로이>에서도 그 생각은 했죠.
어스: 배우건 아니건 줄리 크리스티처럼 순연히 나이 먹어가면서도 젊은 날 매력의 본질을 보존하는 여성은 정말 드물다고 생각해요.
헬프: 영화 팬들에게 크리스티는 영원히 <닥터 지바고>의 라라인데, 지난주 <10,000 BC>에서 오마 샤리프가 내레이션을 하는 것까지 들으니 <닥터 지바고>를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지더군요. ^^
어스: 한때 그녀와 커플이었던 워런 비티가 크리스티를 가리켜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신경이 예민한 여자”라고 했다던데. ^^ 워런 비티는 연출한 <레즈>를 ‘줄스에게’ 헌정했었죠. (먼 산)
헬프: 그런데 워런 비티는 그 비슷한 말을 계속 바꾸면서 주변 여배우들에게 늘어놓았을 것 같지 않우? ^_^
어스: 강한 의혹이 들긴 하네요. -_-
헬프: 그런 레퍼토리가 한 백오십개는 있을 거예요. 리무진 타고 다니면서 <여성 찬사 용례 사전>을 외고 다닐 거야. ^^ 한번 써먹은 말은 빨간 볼펜으로 지우면서.
어스: 1장 외모, 2장 지성, 3장 성격 등등으로 구성된 <작업 용어 갈래 사전> 말씀이죠? ^.~ 그 책 혹시 잭 니콜슨이 편찬한 거 아닐까? ^_^
헬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고 보니 두 남자는 <레즈>의 라이벌이기도 했네요. ^^
어스: 그런데 피오나라는 이름은 늘 영화 속에서 개성있고 당찬 여성으로 나오는 것 같지 않아요?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에서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역할 이름도 피오나였잖아요.
헬프: 전 <슈렉>의 피오나 공주 생각났어요. -..-
어스: ^^ 확실히 <어웨이 프롬 허>에서는 줄리 크리스티의 연기가 주목받았지만 사실 관객이 동일시하며 지켜보는 쪽은 남편 역 고든 핀센트예요. 다른 ‘세계’로 넘어가버린 피오나의 속내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그랜트의 번민은 내내 지켜보게 되니까요 그가 요양소 소파에 앉아 방 저편에서 다른 남자와 다정히 있는 아내를 바라보는 신은 못 잊을 거예요.
헬프: 저도 그 생각했어요. 줄리 크리스티를 보려고 했는데, 영화 중반 이후엔 고든 핀센트가 계속 보이더라고요. 함께한 기억마저 다 휘발된다면, 그 사랑은 대체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그랜트를 보면서 관객이 자연히 곱씹게 되지요. 피오나가 새로 사랑하는 환자 오브리의 아내 마리앤 역의 올림피아 듀카키스 연기도 좋았고요.
어스: 마리앤은 실용적이고 난센스라곤 한 오라기도 용납지 않는 주부죠. 원작을 읽어보니 그랜트에게 있어 피오나와 마리앤은 상반된 두 세계의 상징 같아요. 피오나가 진보적 자유주의자 집안에서 꿈을 먹고 자란 여신 같은 여성이라면 오브리 부인은 악착 같은 생활력과 현실을 상징하죠. 그랜트라는 남자의 성장 배경이나 계급은 그 중간이고요.
헬프: 듀카키스는 에마 톰슨 닮기도 했고 어찌보면 힐러리 클린턴 같기도 해요. ^^
어스: 사실은 에마 톰슨의 어머니인 배우 필리다 로를 더 닮았답니다.
헬프: 이 영화, 노년판 <화양연화> 같은 느낌도 약간 있지 않아요?
어스: 네. 특히 배우자로부터 멀어진 그랜트와 마리앤이 동병상련의 감정을 나누는 대목에선요. 저는 이 영화의 담담함이 좋았어요. 예를 들어 제가 좋아하는 또다른 알츠하이머병에 관한 영화 <아이리스>의 경우는 언어와 사고가 유실되어가는 주인공 아이리스 머독이 언어를 도구로 쓰는 작가라는 불행한 설정이고, 평생 아내를 짝사랑하다시피한 남편의 감정이 가슴을 치는 절절한 멜로드라마의 측면이 강하죠. 하지만 <어웨이 프롬 허>는 좀더 일반적으로 적용해볼 만한 이야기예요. 예를 들어 크리스티라는 요양원 간호사가 그랜트에게 냉정하게 조언하는 장면이 있죠. 그랜트가 우린 40년간 평탄히 살았다고 말하니까 “그게 아니라 누군가가 견딘 거죠”라고 하는.
헬프: 예. 거의 단죄하는 장면에 가깝죠.
어스: 그리고 남편 없이 아이 넷을 키우는 자기 처지를 말하면서 지금 당신이 겪는 문제는 평생 잘살아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크게 억울한 게 아니다, 문제라기보다 그냥 삶이다라는 식으로 말하죠. 같은 맥락에서 피오나가 언뜻 정신이 돌아왔을 때 이런 대사를 하더라고요. “사람들은 너무 많이 바래요. 날마다 사랑받고 사랑하길 원해요.”
헬프: 사실 남편은 자신의 과거의 잘못 때문에 “가끔은 아내가 나를 벌주기 위해서 (알츠하이머병을) 연기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데, 간호사의 그런 말은 그런 남편의 죄책감에 대해 날아와 박히는 대못 같은 말이죠. 확실히 포기를 잘하고 무력감에 잘 적응되어야 삶을 좀더 잘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어스: 저는 아내가 배신의 기억을 끌어내 다시 원망하는 것보다 “그래도 날 버리지 않고 끝내 머물러준 거 고마워요”하는 말이 더 무섭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기억들이 있거든요. 머리로는 용서했는데 몸이나 정신력이 약해지면 새삼 확 솟구치는….-_-#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나쁜 놈!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었어!”하고 고함치게 되는 거죠.
헬프: 마리앤과 그랜트의 대화에도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어요. 마리앤이 자신의 어려운 경제적 처지를 토로하자 그랜트가 “운이 없었군요”라고 위로하는데요. 마리앤이 “아뇨, 그게 삶인걸요. 삶을 우리가 이길 순 없잖아요”라고 답을 하죠. 그러니 제 오늘 대화명이 어찌 ‘헬프리스’가 아닐 수 있겠냐고요. -.-
어스: 사라 폴리는 허진호 감독이 그랬듯 이런 달관의 영화로 데뷔했으니 거꾸로 연출경력이 쌓이면서 욕망의 영화쪽으로 갈 수도 있을 거예요.
헬프: 젊어서 너무 관조적이면 나이 들어 반대쪽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전 음악도 좋았어요. 영화 속에서 여러 차례 나왔던 닐 영의 <하비스트 문>도 좋고, 엔딩 때의 K. D. 랭도 좋았죠. 특히 닐 영은 이런 이야기에 아주 잘 어울리는 목소리예요.
이동진: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는 모티브가 무척 흥미롭던데요. 세상과 담 쌓은 청년이 가족에게 애인이라고 소개하는 여자가 인간이 아닌 ‘리얼 돌’이라뇨. 김혜리: 인형 비앙카는 주민들이 각자의 필요를 투사하는 ‘진공’ 같은 존재예요. 그런데 보고 있자면 실제 인간관계에도 이런 요소가 많지 않은가 싶어요. 그 사람 자체보다 그랑 있을 때 내 모습이 마음에 들 때 사랑에 빠지는 거죠.
어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는 주고받지 못하는 일방적 사랑에 관한 영화라는 점이 <어웨이 프롬 허>와 비슷해요.
헬프: 전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모티브가 무척 흥미롭던데요? 세상과 담 쌓은 청년이 가족에게 애인이라고 소개하는 여자가 인간이 아닌 ‘리얼 돌’이라뇨. 그런데 재미있는 착상이라는 생각은 들어도 그걸 어떻게 장편영화로 계속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들더군요.
어스: 왜냐하면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라스의 행동에 장단을 맞춰주면서 믿고 기다리거든요. 사실 라스가 왜 그처럼 비사교적인 성격이 되었는가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아주 서서히 단서가 주어지죠. 그것도 단서 정도지 상세히 설명되지는 않아요. 라스는 두 형제의 막내인데, 어머니는 그를 낳을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이후 사람이 변했어요. 형은 가정의 그런 무거운 공기를 견디지 못하고 어린 라스만 남기고 가출해버렸고요.
헬프: 흠, 일종의 모성결핍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까지 갖게 된 경우인가요?
어스: 아버지의 죽음 뒤 형은 행복하게 결혼해 아버지와 살던 집을 물려받지만 라스는 고집을 부려 창고 같은 별채에서 혼자 살죠. 출산을 앞둔 형수(에밀리 모티머)는 다정한 성격이라 시동생을 식사에 초대하려고 라스의 차 앞에 뛰어들기까지 하는데, 라스는 정말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갑니다. -.-
헬프: 소심하고 내향적인 사람에겐 가장 고통스런 자리 중 하나가 바로 여럿이 모이는 식사 자리랍니다.
어스: 저도 회식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다시 밥을 먹을 때가 있어요. 뭘 먹었는지 알 수 없는 자리라서 허기가 안 채워지는 거죠. -_-# 저녁 식사는 종일 수고했다고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여기는데, 그게 일의 일환이 되어버리면 왠지 초조하더라고요. 어쨌든 라스는 자신을 임신했을 때 엄마가 짰다는 목도리를 늘 두르고 있는데, 임신한 형수가 추울까봐 그걸 선뜻 내줘요. 형수가 엄마처럼 출산하다 변을 당할까봐 죽도록 겁내죠. 그래서 아예 임신하지 못하는 ‘리얼 돌’ 비앙카를 자신의 여자친구로 택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헬프: 흠, 충분히 그럴 법 하네요. 마을의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어스: 그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착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들만 사는 마을이라서요. 인형 비앙카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서 흥미로운 점은 라스와 비앙카의 관계가 병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관계가 결과적으로 라스에게 미치는 영향입니다. 비앙카와 라스는 진짜 커플이 될 수 없지만, 비앙카와 함께 있는 동안 라스는 마치 딴 사람처럼 밝고 적극적이거든요. 비앙카에겐 명백한 존재 이유가 있는 거죠. 심지어 비앙카는 학부모회 간부도 되고 유치원에 가서 녹음기를 틀어놓고 책도 읽어준답니다. 마을 사람들과 같이 쇼핑도 다니고요.
헬프: 허허, 이거야말로 삼총사가 꿈꾸던, 원 포 올, 올 포 원의 상황. ^^
어스: 말하자면 인형 비앙카는 주민들이 각자의 필요를 투사하는 ‘진공’ 같은 존재예요. 그런데 보고 있자면 실제 인간관계에도 이런 요소가 많지 않은가 싶어요. 그 사람 자체보다 그랑 있을 때 내 모습이 마음에 들 때 사랑에 빠지는 거죠. 비앙카로 인해 라스는 정말 달라지니까요.
헬프: 맞아요. 바람직한 사랑은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좋은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죠.
어스: 물론 무비판, 무배신, 무조건의 사랑은 ‘애완동물’과의 관계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요. 원래 라스는 타인의 살갗이 닿으면 통증을 느끼는데요. 비앙카와 ‘사귀는’ 동안 서서히 변하고 진짜 세계를 감당할 수 있다고 느끼자 “비앙카가 중병에 걸렸다”고 슬퍼하며 그녀를 떠나 보낼 준비를 시작하죠. 무의식과 의식의 기묘한 협동이랄까요?
헬프: 그 말 듣고 보니 전형적인 성장영화처럼도 들리네요.
어스: 맞아요. 둘시네아를 사랑한 돈키호테 이야기와도 비슷하고요. ^.~ 너무 관객을 애 취급하는 게 아니냐는 혹평도 있지만 저로선 인간과 인간이 서로 무엇을 교환하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헬프: 연기는 어땠나요? 특히 라스 역의 라이언 고슬링.
어스: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실 자폐증인 듯하면서도 사회적으로는 멀쩡히 기능하는 남자니까 쉽지 않은 연기죠.
헬프: 이런 연기는 조니 뎁이 진짜 잘할 것 같은데. ^^
어스: <베니와 준> 생각하시는 거죠? 형수 역의 에밀리 모티머도 좋았습니다.
헬프: 그럼 비앙카의 연기는 어떤가요? ^^
어스: 에헴, 이 신인배우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없는 연기와 모나리자 같은 오묘한 미소를 잃지 않았죠. 특히 숨지는 마지막 순간의 냉철한 연기는 압권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