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몰입교육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빅뉴스의 변희재는 “<디 워> 매출 1억달러, 낡은 지식인에 파산 선고”라는 글을 썼다. 그는 지식인들이 <디 워> 팬카페만 드나들었어도 제대로 된 팩트를 알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하지만, 그 팩트는 영화매체 종사자가 아니라 서핑이나 조금 즐기는 사람들도 반박할 수 있을 만큼 허술했다.
먼저 그는 <디 워>의 제작비를 3천만달러로 잡고, 총매출을 1억달러로 산정한 뒤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디 워>의 제작비가 얼마인지에 대해선 300억원설과 700억원설이 대립하고 있는데 일단 아무 설명없이 전자를 채택하고 있는 셈. 제작비와 총매출을 대비시키는 것도 어처구니없이 한심하다. 변희재는 극장과 쇼박스가 가져갔을 돈은 애써 머리에서 지우고 총매출이 영구아트무비의 순이익인 양 취급한다. 또한 <디 워>의 흥행이 엄청난 수의 스크린 독점을 통해 이루어진 만큼 그런 식의 흥행전략이 다른 영화들에 끼친 영향이 ‘기회비용’으로 고려되어야 했지만 그 점도 무시되었다. 그 모든 점을 고려해서 한국 영화산업에 미치는 <디 워>의 영향력을 추정하는 것이 바로 지적인 작업이겠지만, 신지식인은 그런 귀찮은 일은 하지 않는다.
영어몰입교육이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당선인과 인수위원장의 산술체계도 신지식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디 워>에 비해 영어몰입교육은 명확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소극적으로 찬성하는 이들의 입장은 <디 워>에 비해 훨씬 뿌리깊다. 이미 사람들의 관심이 떠나버린 <디 워>를 옹호하는 것은 변희재 등 몇명뿐이지만, 몇년 뒤엔 꽤 많은 사람들과 어쩌면 보수 언론 매체들이 영어몰입교육의 성공을 선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시장을 겨냥했다는 <디 워>가 정작 한국의 관객에게서 매출의 절반 이상을 털어갔듯, 국가경쟁력을 위한다는 영어몰입교육 역시 영어를 잘하는 강남 사람이 그렇지 못한 다른 지역 사람들을 차별하기 위한 조건이다. 국제적으로 팔아먹기 위해 만들어진 <디 워>의 영어 대사가 한국 화자들의 대화를 직역한 것처럼 어색했듯이, 인수위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인수위원장의 영어 인사말도 영어가 아니다. <디 워>가 북미 와이드 릴리즈 개봉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로 한국 관객을 다시금 유혹했던 것처럼 이명박 정권은 미국 대학에 입학한 한국인 수가 늘었다는 사실을 영어교육 성공의 증거로 제시하지는 않을까? 이 정책이 실시된다고 해서 기러기 아빠의 수가 줄어들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똑같이 엉터리 산술체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디 워> 열풍을 만든 욕망과 영어몰입교육에 우호적인 이들을 만든 열망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디 워>에 대한 욕망에는 그 적절함이야 어쨌든 애국적인 지향이 있다. 이 무국적의 영화에서 이무기와 아리랑은 순식간에 ‘한국적인 것’을 나타내는 표상이 된다. 마치 숭례문 전소 이후 숭례문이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돌아왔듯이 말이다. <디 워> 열풍은 그릇된 영역에서 그릇된 방식으로 재현된 박정희 정권의 대기업 육성 정책이다. 바로 그것을 의도했기 때문에 <디 워>의 제작사와 제작자에겐 큰 책임이 있다. 하지만 영어몰입교육은, 비록 그 정책을 추진하는 이들의 크나큰 잘못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훨씬 더 대중친화적인 상상력을 드러낸다. 중산층은 영어교육이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말을 사실은 진지하게 믿지 않으면서도 이 정책에 동조하거나, 욕하면서도 적응하려고 한다. 강남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유포시키는 이 환상이 그들을 강남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든 한국인들이 영어를 잘하는 세계에 대한 상상은 강남 사람들조차 무시할 만큼 전복적이다. 영어를 잘하는 한국 청년들은 삼성 같은 대기업에 착취당하지 않고 다른 나라로 도망갈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 말이다. <디 워>가 자신들의 유치한 감수성이 세계수준이라고 착각하는 아이들의 꿈이라면, 영어몰입교육은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탈출하고 싶다는 노회한 어른들의 꿈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다른 욕망은 기이하게도 연속적이다. 살릴 놈만 살리는 게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엉터리 주문을 계속해서 외운 결과, 한국인들은 모두 내가 살아서 도망가는 게 공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남보다 먼저 도망가고 싶어하기 때문에, 아무도 도망가지 못해서 유지되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농담이 아니라 언젠가는 그놈의 경쟁력이 강화된 결과 정말로 국가가 텅 비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