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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토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미스트>

맨홀과 웜홀님([email protected])이 입장하셨습니다.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님([email protected])이 입장하셨습니다.

김혜리 “비인기종목의 설움과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두루 끌어안은 인물들이 주인공이에요.” 이동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대중적으로 아주 힘이 있는 작품이죠.”

맨홀과 웜홀님의 말(이하 맨홀): 2008년 첫 메신저토크입니다. 영화 운이 따르는 한해 맞으세요. 아멘.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님의 말(이하 안개): 부디 일에 치어 살지 않으시길. 각자 자기가 바라는 바를 상대에게 빌어준 것 같다. ^^

맨홀: 토정비결 볼 때 영화 운도 볼 수 있으면 재미있을 텐데요. “5, 6월에는 물 나오는 영화에 가까이 가지 말고, 9월에 동쪽에서 귀한 영화를 만난다”, 뭐 이렇게. ^.~ 오늘은 네편의 영화가 기다리고 있네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 <미스트> <말할 수 없는 비밀> 그리고 <마법에 걸린 사랑>입니다.

안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여러모로 진기한 기획이죠? 충무로에서는 거의 시도하지 않는 스포츠영화에, 여성영화에, 모두가 결말을 다 아는 실화에 기초한 이야기잖아요.

맨홀: 진기하다기보다 용감한 기획이라고 생각했어요. 7년 전 <세친구> 이후 꽤 긴 기다림 끝에 임순례 감독님의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개봉했을 때가 기억나요. 인터뷰에서 임 감독님은 “앞으론 이렇게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야 세 번째 영화가 나왔네요. +_+ 그때 ‘고아원 소녀 축구단’ 이야기가 장차 만들 아이템 중에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국가대표 핸드볼팀이 될 줄은 몰랐네요. ^^

안개: 보통 영화와 영화 사이의 간격이 너무 긴 감독들을 가리켜서 ‘올림픽 감독’이라고 하잖아요? 4년 만에 하나씩 만든다고. 올림픽 소재 영화지만, 임순례 감독님은 그보다 훨씬 더 심하셨죠.-_-

맨홀: ‘국가대표’라니 어째 임순례 감독님과 안 어울린다 싶었지만 뜯어보면 비인기종목의 설움에다가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두루 끌어안고 있는 인물들이 주인공들입니다. 국가대표 스포츠영화이면서도 애국심을 부추기는 요소가 없다는 점도 특이하다면 특이하죠.

안개: 기획자도 따로 있고 각본을 쓴 사람도 따로 있는데, 영화 자체만 보면 정말 기획도 각본도 모두 임순례 감독님이 하신 것 같죠? 스포츠영화를 해도 하필 비인기종목인 핸드볼을 소재로 삼았고, 주요 인물 중 한미숙(문소리)은 영락없는 ‘순례표 캐릭터’잖아요. ^^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이얼씨 배역을 여자 캐릭터로 만든 듯. ^_^

맨홀: <우생순>은 엄연한 앙상블 영화지만 전체를 농축하고 있는 인물은 아무래도 미숙이라고 생각했어요. 재미있는 장면은 여러 인물이 분담하지만 여운이 긴 장면은 대부분 미숙의 것이죠.

안개: 저는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임순례 감독의 머리는 혜경(김정은)이란 캐릭터에게 가 있고 마음은 미숙이란 캐릭터에 가 있다고요.

맨홀: 여성적인 해결방식을 찾는 리더십은 혜경에게서 찾는 한편 연민은 온갖 생활의 짐과 불운을 짊어진 미숙을 향한다는 뜻?

안개: 그보다는 스포츠를 소재로 삼은 영화의 독특한 재미와 진행은 혜경이 맡게 하고,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미숙을 통해서 한다는 거죠. 전체적으로 보아 혜경이 스포츠 안의 세계를 말하기 위한 인물이라면, 미숙은 스포츠 밖의 세계를 말하는 캐릭터예요. 물론 혜경에게도 삶의 고민이 있지만, 그런 고민들은 대부분 핸드볼 경기 자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요. 후임 감독과의 갈등도 그렇고, 감독직을 버리고 선수로 뛰면서 겪는 고충도 그렇고, 심지어 연애조차도 감독-선수 사이에 있었던 과거로 엮이게 되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능에 관해 2인자로서 미숙에게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 자체가 그렇죠. 반면 미숙은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니? 너도 나처럼 살아봐. 사는 게 치사하고 쪽팔려서 더는 못 버티겠다”고 외치는 상황이죠.

맨홀: 그렇네요. 현역 선수에서 밀려날 즈음 혜경은 지도자로 진화했는데 미숙은 떨려나 할인점 점원이 되어 생계를 유지하죠. 선수 출신인 그녀의 남편이 겪는 사업 실패는 물정 모르고 운동만 해온 운동선수들이 바깥세상에서 겪기 쉬운 불운을 대변하는 사례 같고요.

안개: 경기장면들은 어떻게 보셨어요?

맨홀: 당시 실황중계가 더 드라마틱했어요. 물론 배우들의 노력과 기량에는 감동했지만 전체 흐름을 잡는 숏이 적고 움직임이 조각나다보니, 클라이맥스로서 영화적인 힘은 좀 약하지 않나 싶었어요.

안개: 핸드볼 선수 ‘간지’는 다들 제대로 나더군요. ^^

맨홀: 김정은 선수는 몸의 선까지 바뀐 것 같던데요? ^.~

안개: 김정은씨는 육체적인 조건을 만드는 것부터,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까지, 단단히 결심하고 연기하는 것 같았어요. 한 장면에서 본능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자신에게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연기해온 배우인데, 이 영화에선 그런 모습이 전혀 없죠. 태도가 깊어지고 시야가 넓어진 것 같습니다.

맨홀: 말투와 목소리의 음색부터 다르게 잡았어요. 그 점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안개: 리액션 연기에서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컷을 나눠 찍는 두 사람의 대화장면에서 튀는 부분이 없지 않았거든요.

맨홀: 임순례 감독 영화에서 대화신은 항상 중요한데 이번에는 대화장면이 대부분 숏-리버스 숏으로 찍혀서 단조롭긴 하더군요.

안개: 경기장면의 아쉬움과 함께, 저도 그게 가장 많이 걸렸어요. 미숙과 혜경이 대화하는 중요장면들을 나눠서 찍었는데 그런 장면들이 좀 어색하게 느껴졌으니까요. 덧붙이자면 관습적인 음악도 아쉬웠어요. 하지만 <우생순>은 대중적으로 아주 힘이 있는 작품이어요. 관객을 굵은 목소리로 확실히 설득하는데다가, 잔재미가 다양한 지점에 담겨 있어서 시종 재미있게 볼 수 있죠.

맨홀: 예상보다 풍부한 유머가 영화를 지탱하죠? 그런 면에서 배우 김지영씨의 공이 돋보이고요.

안개: 김지영씨는 기대 이상이었어요. 실제로 주요 인물 중 등장하는 컷이 가장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 영화는 두어 장면이 정말 가슴을 쳐요. 예를 들어, 마지막 슛을 성공시키지 못하는 장면은 명장면이었어요. 미숙이 슛하는 순간에 프레임 아웃이 되고 그때 멀리 포커스 아웃이 된 양팀 벤치 모습이 나오는데, 숨막히듯 천천히 슬로모션으로 시간이 흐르면 왼쪽 원경의 덴마크팀 선수들이 환호하잖아요. 그 순간 참담한 얼굴의 미숙이 다시 포커스 인이 되는데,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맨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연출이죠. 그런데 그 장면의 훌륭함과 별개로 저는 영화가 아예 승부 던지기의 순간에 멈추거나 귀국 뒤 인물들의 모습까지 갔어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대중적 앙상블 드라마의 구색에 맞게 배치된 인물의 행로를 죽 따라가다가 기록영화의 어조로 끝나니까 따라가다 당황하게 되더군요.

안개: 대중영화로서 관객이 우울한 상태로 극장을 나서게 하면 좀 곤란하겠다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요? 후일담을 그리자면 ‘그래서 그들은 삶에서도 역경을 극복했다’는 식의 감독이 믿지 않는 거짓말을 하거나, 역경이 극복되지 않은 상황 속의 모습을 통해 관객이 우울해지거나 할 테니까요. 전 이런 궁금증은 들었어요. 왜 마지막에 혜경이 아닌 미숙으로 하여금 공을 던지게 했을까.

맨홀: 영화가 하려는 핵심적 이야기를 배달하는 메신저가 혜경이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게임을 위해 그토록 어려운 희생을 치르며 경기장으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패배할 수 있다는 진실을 피하고 싶지 않았겠죠.

안개: 확실히 임순례 감독은 꿈은 꿈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보는 사람이죠. 저는 미숙의 그 슛 실패가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룸살롱에서 옷을 다 벗고 주인공이 기타 치는 장면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를 통해 스스로도 믿지 않는, 희망을 파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벽 같은 게 감독에게 있는 거죠.

맨홀: 돌아보면 <세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도 임순례 감독은 궁극적으로 “자존심 지키며 원하는 일 하면서 먹고사는 것이 왜 이렇게 지난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이 영화를 보며 역시 여성감독인 페니 마셜의 <그들만의 리그>도 떠올랐어요. 지나 데이비스, 마돈나 등이 여성 야구팀 선수로 나오고 톰 행크스가 주정뱅이 코치로 분했죠. 그들의 팀은 남자 야구선수들이 세계대전으로 전장에 나간 상황에서 국민의 여흥을 위해 불려간 대타였지만요. 서사에서 남성 코치가 차지하는 비중도 차이가 나는데 <우생순>에서 엄태웅씨가 분한 감독 캐릭터는 좀 위치가 모호합니다. 악역이 필요할 땐 악역, 로맨스가 필요할 땐 연인, 화합이 필요할 땐 지도자가 되는 다용도 캐릭터랄까요? ^^;

안개: 그 인물을 통해 넣을 멜로적인 코드도 약간은 필요했겠죠. 이 영화를 보며 문소리씨가 리듬이 정말 좋은 배우란 생각을 새삼 했어요. 예를 들어서 조은지씨가 분한 골키퍼가 선배 보약을 뺏어먹는 장면은 조금 어수선한 느낌이 있었는데, 문소리씨가 아들에게 보약을 먹이는 천연덕스럽고 리드미컬한 연기 때문에 잘 마무리되었거든요. 한신이 어떤 톤과 리듬으로 끝을 맺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맨홀: 여성영화라는 관점에서 눈에 띈 부분은 없으세요?

안개: 구체적으로는 두 장면 정도가 두드러지죠. 감독 경질 사유에 이혼 경력을 문제 삼자 “남자감독이라도 이혼이 문제가 됐을까요?”라고 혜경이 대꾸하는 장면과 여성선수들의 생리문제를 넣은 에피소드요. 전체적으로 여성영화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맨홀: 선수들의 개인적인 형편과 사정을 돌보고,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참견’하며 나아가는 여성적인 해결책들이 영화 전반의 이야기를 움직이고 있죠.

안개: 엄태웅씨 캐릭터가 부가적으로 보일 만도 해요.^^

맨홀: 이른 은퇴를 강요하는 사회 풍토에 대한 일침도 놓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안개: 40대인 여성감독과 40대인 여성 제작자의 목소리가 많이 들어간 부분이 아닐까나…. ^^

맨홀: 영화 자체가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는 오만한 표어에 대한 보기 좋은 반격이었다고 생각해요. ^^ 우리가 그들을 이렇게 기억한다!

안개: 멋진 요약이네요. 저도 그 카피 정말 싫었거든요. 어쨌든 지난해 하반기에 한국영화 상황에 대해 다들 한숨만 쉬었던 것 같은데, 2008년 초입에서 이렇게 성큼 내딛는 충무로 대중영화를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이동진 “매장 안에서 사람들끼리 격렬하게 대립하는 상황을 보면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떠올렸는데, 후반에 이르면서 조금 묘사가 넘쳤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어요. 그런데 종반 10분을 보고나서는 정말이지 악! 소리가 났죠. 훌륭하게 각색된 마무리였습니다.” 김혜리 “결말은 확실히 이 영화에 대한 호오를 가르는 도끼가 될 거예요. <디센트> 이후 가장 만족한 호러입니다. 장르적 쾌감만 따져도 그래요. 인물이 꽤 많은데도 딱 필요한 만큼 개성이 살았다는 점, 살 자와 죽을 자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맨홀: 어제 여의나루에 갈 일이 있었는데, 한치 앞 한강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꼈더라고요. <미스트> 홍보팀에서 반색하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날씨를 언급한 보도자료 메일이 왔더군요.

안개: 안개 자체가 참 영화적이죠? 스릴러면 스릴러, 멜로면 멜로, 다 잘 어울리죠. 제 대화명도 중고시절 보고서 잠을 못 이뤘던 야스스한 충무로 스릴러 제목에서 가져왔어요. 정지영 감독님 데뷔작이었을 거예요, 아마.

맨홀: 공포영화에도 어울린다는 걸 <미스트>가 보여주죠. 여기서 안개는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뭔가를 은폐하기 때문에 무서운 거고요.

안개: 이 영화가 저예산이라는 것과도 관계가 있을 거예요. 사실 미스트는 포그보다 좀 옅은 안개를 뜻하는데도 영화 속 ‘미스트’는 엄청 짙죠. 그래야 특수효과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테니까요. 안개가 효자야, 효자. ^^

맨홀: 어찌나 두텁던지 처음에는 방역가스인 줄 알았습니다. -_-# <미스트>는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로 스티븐 킹 원작을 톡톡히 활용했던 프랭크 다라본트가 연출했는데요. <마제스틱>에서 허방 디딘 과오는 벌충한 듯하네요. ^0^ <미스트>의 배경은 간밤에 폭우 피해를 입은 메인주의 캐슬록 마을입니다. 주인공 데이빗(토머스 제인)은 아들을 데리고 대형 할인점에 갔다가 안개 속에 뭔가가 있다는 한 시민의 비명소리를 신호로 이웃과 함께 고립됩니다. 호러에서 숱하게 마주치는 설정이죠. 괴물이 뭔지, 어디에 고립되는지, 갇힌 사람들의 성격은 어떤지 변수만 달라질 뿐.

안개: 고립된 장소가 대형 매장이라는 것도 절묘하죠. 너무 알뜰한 스릴러야. 알뜰살벌 스릴러(알벌살뜰 스릴러, 라고 바꿔보니 더 무서운 듯. -.-). ^^

맨홀: -_-# “그래도 식량과 생필품이 가득한 마트라서 다행이야”라고 처음에는 저도 생각했지만, 광신도가 사람들을 선동하고 내부의 지옥이 입을 벌리면서 슬금슬금 이게 혹시 “먹을 것과 잘 곳만 있는 걸로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설정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안개: 이를테면 쓰레기차 피하려다가 X차에 치게 된 상황입죠.T-T

맨홀: 듣는 괴물이 기분 상하겠네요. 쓰레기라니…. <미스트>의 공포는, 주로 안개를 이용해서 ‘빙산의 끄트머리’만 보여주고 그 뒤의 더 크고 많은 적을 상상하게 하는 트릭으로 연출됐어요. 특히 괴물의 촉수가 첫 희생자를 잡아채는 장면과 정찰나간 사람들이 몸에 묶고 간 밧줄이 꾸러미에서 풀려나가는 속도만으로 소름이 끼치게 하는 대목이 탁월했습니다.

안개: 일부러 시계를 봤는데, 러닝타임 1시간이 이를 때까지 괴물은 딱 한번, 촉수만 나오더라고요. 그런데도 그 1시간 내내 불길한 전조로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능숙한 연출력이었죠.

맨홀: 그런 전략만으로 영화가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어요. 괴물 4종 세트가 정체를 드러내자 곧 기대를 바꾸었지만요.

안개: 괴물 움직임의 디테일도 뛰어났어요. 팔뚝만한 곤충 괴물들이 처음 등장할 때 한 마리인 줄 알았던 게 두 마리, 네 마리로 늘고 그들이 유리창에 붙는 소리가 턱, 턱, 들리잖아요? 정말 오싹한 사운드였어요.

맨홀: 촉수가 마트 내부로 들어와 점원을 끌고 나갈 때 그의 목이 딱 셔터 아래에서 멈추는 순간이 있어요. 셔터를 닫자니 목이 잘리고 버티자니 촉수가 침입하는 상황은 영락없이 교활한 고문이더군요. *.*

안개: 이 영화는 시종일관 쓰레기차와 X차 사이의 고민이라니깐요.-.-

맨홀: 영화가 진행되면서 바깥의 괴물도 괴물이지만, 갇힌 사람들이 여러 전선을 이루며 대립하잖아요. 그중 화이트칼라 대 블루칼라의 갈등을 그린 대목도 있었는데요. 마트의 나이 든 점원이 발전기를 틀겠다고 우기면서 그걸 막는 데이빗을 을러대죠. 그때 누군가가 “내내 겁먹고 있다가 만만한 과제가 나타나니까 오기가 발동한 거다”라고 데이빗을 달래는데 그 대사가 인상적이었어요.

안개: 맞아요. 절묘한 심리 포착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맨홀: 사람들 사이에 잠재했던 온갖 갈등이 점점 흉한 머리를 치켜드는 이후 상황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죠. 진짜 적은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적을 만들어서 공격하려는 거죠. 엉뚱하지만 전 <괴물>과도 비교하게 되더군요. 괴물에 맞서 떨어진 가족과 재회하려 한다는 목표는 비슷하지만,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보는 시선의 차이가 흥미로웠어요. 싸우는 과정에서 <괴물>의 가족은 거의 완전히 고립된 처지죠. 이해받지도 못하고요. 반면 <미스트>는 어쨌든 이웃이 힘을 모아 이러저러한 노력을 하니까 문제 해결과정에서 사람들간의 소통은 <미스트>가 <괴물>보다 훨씬 활발하죠. 하지만 결말에 드러나는 세계관은 <미스트>가 더 냉소적이었어요.

안개: <미스트>는 유머가 1mmg도 없잖아요.

맨홀: 전 할머니가 살충제로 거대 독거미 죽일 때 웃었는데요. -_-#

안개: 그거 웃으면 방송사곱니다. ^^ 매장 안에서 사람들끼리 격렬하게 대립하는 상황을 보면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떠올렸는데, 후반에 이르면서 조금 묘사가 넘쳤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어요. 그런데 종반 10분을 보고나서는 정말이지 악! 소리가 났죠. 훌륭하게 각색된 마무리였습니다.

맨홀: 제가 기억하는 한 할리우드 장르영화에서 이런 식의 결말은 처음 보는 듯.*.* 소설의 열린 결말을 아주 강렬하게 해석한 셈이죠.

안개: 이처럼 참담한 결말에 견줄 수 있는 영화로 <쥬드>가 생각났는데 두 영화 모두 짙은 탄식을 감출 수 없게 하는 엔딩이었죠.

맨홀: 영화 전체가 ‘서바이벌’을 위해 온갖 고비를 넘다가 끝에 가서 “과연 뭘 위해 살아남았지?” 묻게 하니까요.

안개: 몇달 전 소설가 이승우씨가 <그곳이 어디든>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는데, 정말 그 제목이 이 영화의 상황에 딱 맞는 것 같아요. 농담 삼아, 쓰레기차와 X차 사이라고 했지만 정말 <미스트>는 최악과 최최악 사이에 인물을 데려다놓죠. 차악이란 말도 쓸 수 없는 듯. 종반 직전까지 이 작품을 보면서 고야의 판화 제목처럼 ‘이성이 잠들면 요괴가 눈뜨는’ 상황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보고나면, ‘이성이 눈을 뜨면 세상은 도끼눈을 한다’는 상황으로 가니, 원…. -..-

맨홀: 결말은 확실히 이 영화에 대한 호오를 가르는 도끼가 될 거예요. ^^ 뭐, <디센트> 이후 가장 만족한 호러입니다. 장르적 쾌감만 따져도 그래요. 인물이 꽤 많은데도 딱 필요한 만큼 개성이 살았다는 점, 살 자와 죽을 자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안개: 전 <디센트>보다 <미스트>가 좀더 좋았어요. 처음엔 안 믿는 자(변호사)가 일종의 악역처럼 나오고 그 다음엔 너무 믿는 자(혹은 잘못 믿는 자, 광신도)가 악한처럼 나오는데 다 보고 나면 안 믿어도 너무 믿어도 이성적으로 믿어도 다 말짱 헛거라는 허탈감이 밀려오죠. 에고, 이 영화는 가장 뛰어난 부분에 대해 말할 수가 없다는…. 이 영화야말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제목이 제격이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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