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을 찍은 유권자들을 비난하는 인터넷 여론을 보면 당혹스럽다. 한국사회에 ‘대중의 우매함’을 규탄하는 엘리트주의자들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디 워> 사태에서 보듯 ‘많은 사람들의 선택에는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그 이유를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너는 대중이 우매하다고 생각하는 먹물엘리트주의자임이 틀림없어’라고 낙인찍는 것이 평균적인 한국인의 정서가 아니었던가.
나는 대중에 대해선 별스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고, 다만 한 사람이 어떤 문제에 적절한 견해를 표현하려면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공부도 좀 하고 관련된 사람들의 의견도 청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가 이런 최소한의 ‘노력’없이도 그들이 쓸모있는 소리를 할 수 있다는 얘기라면 그 옹호는 그릇된 것이다. 그러나 그건 대중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종종 지성의 부족함이 아니라 문제를 단순하게 환원하는 부적절한 용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이명박 지지자의 문제점을 질타하는 이들이 그들이 비난하는 ‘대중’보다 더 수준 높은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이명박의 당선은 긍정적이진 않지만, 2007년 대선의 문제는 그 하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명박 시대 이후 한국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런 예상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 역시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행태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참여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다는 것은 하나의 사실이자 현실이며, 이런 일이 있었을 경우 정권교체의 순기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런 복잡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이명박과 그를 뽑은 유권자를 비난만 하는 것도 문제를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가령 최근 인터넷을 달구었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에 대한 담론을 생각해보자. 아직 집권도 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는 대한의사협회의 정책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이 문제에 다소 애매하게 언급했을 뿐인데, 누리꾼들은 이미 진료비가 수천만원씩 나오는 미래사회에 대한 공포소설을 써대고 있었다. 당연지정제 폐지문제는 참여정부 시절부터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던 얘기이며, 설령 정동영이 당선됐다 하더라도 추진될 가능성이 있는 정책이었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는다. 이러한 담론은 사회문제를 이성적으로 고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혁 로망스’를 유지하고 존속하는 데 쓰일 뿐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에 따르면, 로망스는 현실적 모순에 대한 상상적 해결책으로, 어떻게 나의 적이 ‘악’으로 인식될 수 있을까 하는 강압적 질문에 대한 상징적 대답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개혁 로망스’의 세계에서 한국의 모든 사회문제는 수구세력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공세 속에서 탄생했다고 이해된다. 그들이 ‘대중의 우매함’을 말할 때 그 ‘우매함’은 별스런 지성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저 단순한 도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우매함’을 의미한다. 지난해 5월에 있었던 기자실 폐지문제에 대해 누리꾼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생각해보라. 찬반 모두 일리있는 입장이었음에도 그들은 ‘개혁적 정부’와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자들’의 구도로 사태를 파악했다. 그것은 반기업 정서를 퍼뜨리는 좌파 정권만 종식시키면 한국 경제가 살아날 거라고 믿는 조중동의 믿음에 못지않게 단순했다.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수구세력’에 해당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사회문제는 그것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서울시장 시절 이명박이 버스 노선 개편을 추진했을 때 교통연대라는 단체는 퇴진 운동도 불사한다고 선언했고 수많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그들을 지지했다. 정책 결정이 민주적이진 않았지만 버스 노선 개편 자체가 ‘악’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수많은 노무현 지지자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추진된 행정 수도 이전 문제는 모든 종류의 반대자들을 묶어 ‘수구 기득권 세력’으로 매도하지 않았던가. 이 코미디의 정점은 훗날 정책이 정착된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개혁은 그런 식으로 해야 한다”고 이명박 서울시장을 칭찬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특별히 버스 노선 개편을 이명박이 ‘악’이라는 논거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이명박 당선에 대한 책임을 국민이 지는 것이 원론적으로 올바르다면, 참여정부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개혁성향 유권자가 나누어지는 것도 원론적으로 올바르다. ‘개혁 로망스’를 벗어던지고 사안별로 한나라당과 다른 방식으로 섬세한 담론을 펼치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이른바 ‘개혁’세력은 2007년이 아니라 2012년에도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만 그들의 비극이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비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