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없는 세상을 꿈꾸며님([email protected])이 입장하셨습니다. 메밀밭의 파수꾼님([email protected])이 입장하셨습니다.
김혜리 “<마이클 클레이튼>은 인물이 짊어진 인생의 짐을 잘 묘사했어요.” 이동진 “스토리가 특별히 흥미롭진 않지만 캐릭터가 그걸 상쇄하고도 남죠.”
휴대폰 없는 세상을 꿈꾸며님의 말(이하 꿈꾸며): 호오, 메밀밭의 파수꾼! 주말에 봉평이라도 훌쩍 다녀오고 싶은 충동이 마구마구 솟네요. ^0^
메밀밭의 파수꾼님의 말(이하 메밀밭): <마이클 클레이튼>과 <열한번째 엄마>를 보고 나니 벼랑 끝에 서서 어린아이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는 외로운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라서요. ^^;; 선배는 슬로 라이프를 주창하는 <안경>에 감화를 받으셨나봐요?
꿈꾸며: 뭐, 직접적으론 그렇죠. -.- 요즘 같아서는, ‘연락이 안 될 자유’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세편의 영화에서 휴대폰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메밀밭: 휴대전화가 영화에 일으킨 변화를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휴대전화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플롯, 화면구성이 많죠.
꿈꾸며: 맞아요. 이번주 영화 세편만 해도 어떻게 풀었을까나…. +_+ 오늘 이야기할 첫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은 주인공 이름이 제목인데요. 이런 경우는 이상하게 한국 관객에게 친숙하지 않고 느낌도 약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메밀밭: <돌로레스 클레이본>? <베로니카 게린>?
꿈꾸며: <데이비드 게일>이라든가 <에린 브로코비치>라든가. 직위를 제외하고 이름만 떼어 부르는 경우가 별로 없는 문화권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팝 음악에서도 이름이 제목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가요는 그런 경우가 적잖아요? 기껏해야, <우리 순이> 같은 식이죠. ^.~
메밀밭: 음, <옥경이>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
꿈꾸며: 성과 이름이 다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죠. ^^ 그럴 경우엔 뭔가 설명적인 단어가 따라붙고요. 이를테면,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이나 <박봉곤 가출사건>처럼.
메밀밭: 인명을 제목으로 붙인 영화는 작은 선언을 하는 셈 아닐까요? 대뜸 관객에게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던짐으로써, “마이클 클레이튼… 그는 누구일까요? 같이 알아봅시다”라고 청하는 거죠. 예전에는 광고 문구도 “마이클 클레이튼 is 조지 클루니” 이런 식으로 많이 썼잖아요.
꿈꾸며: 사실 전 처음에 ‘마이클 크라이튼’으로 들었답니다. -.- 메신저토크 독자라면 기억하실 수도 있을 텐데, ‘이쓰루난데요’(<입술은 안돼요>), ‘로보트 테일러’(로버트 테일러)에 이은 저의 ‘난청 굴욕 사건3’라고나 할까….T-T
메밀밭: 헉, 마이클 크라이튼요? <마이클 클레이튼>은 존 그리샴풍인데요. ^^ 감독 토니 길로이는 ‘본’ 시리즈와 많은 히트작의 시나리오를 썼던 작가 출신이죠. 내용상 이 영화는 그가 각본을 쓴 <데블스 애드버킷>의 제목을 빌려도 큰 지장이 없을 거예요.
꿈꾸며: 딱 그리샴 스타일의 이야기죠. 시드니 폴락 감독의 <야먕의 함정> 같은 영화의 설정과 흡사하죠. 클레이튼은 엘리트 변호사가 아니라 퇴락한 변호사지만…. 어쨌든 영화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특별히 흥미로울 것은 없다고 봤어요. 가장 비슷한 구도의 영화는 시드니 루멧이 감독한 <평결>일 거예요. 전락한 알코올 중독 변호사가 거대 기업(종합병원)을 상대로 맞서 싸우는 이야기였잖아요.
메밀밭: 그러나 <마이클 클레이튼>은 제목이 암시하듯 사건의 전말보다 대기업의 범죄를 폭로하려는 자와 은폐하려는 자 중간에 서 있는 인간이 겪는 갈등상황을 그렸죠.
꿈꾸며: 특별히 흥미롭지 않은 스토리를 상쇄하고 남는 것이 바로 캐릭터죠.
메밀밭: 주인공 마이클 클레이튼(조지 클루니)은 유명 법률회사 소속 변호사지만, 소송팀에서 밀려나 회사의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지저분한 일을 처리하는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죠. 한데, 이 영화의 첫 장면이 모두 퇴근한 호사스런 사무실을 청소하는 미화원의 이미지예요. *.*
꿈꾸며: 인상적인 오프닝이었어요.
메밀밭: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삼류 변호사 마이클 클레이튼뿐만 아니라 회사 대표 바흐(시드니 폴락)도, 대기업 U/노스의 법무팀장(틸다 스윈튼) 같은 엘리트 법조인들도, 따지고 보면 오물 치우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_-
꿈꾸며: 이 영화에서 마이클 클레이튼은 무엇보다 빚에 쪼들리는 인간으로 나오잖아요? 그걸 도입부의 설정 정도로만 깔아두지 않고, 캐릭터의 상황을 이해하는 하나의 핵심으로 활용한다는 게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메밀밭: <마이클 클레이튼>이 제게 호소한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인데요.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을, 선악의 가치만 저울질하도록 던져둔 게 아니라, 그가 이미 짊어지고 있는 인생의 짐을 상세히 묘사했어요. 현실적으로 클레이튼과 같은 선택 상황을 직면한 개인이 홀가분하게 윤리적 신념에만 의거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거라고 봐요. 누구나 하나쯤 핑계삼을 짐보따리가 있죠. 부모가 아프다거나 양육비를 댄다거나 빚이 있다거나. 그런 점을 잘 챙겼다는 점에서 시야가 넓은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꿈꾸며: 그 점이 이 영화가 법정영화라는 좁은 장르 바깥에서까지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일 겁니다. 삶의 방식 자체에 대한 영화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식의 캐릭터 조형술은 요즘 좀 유행인 듯한 느낌도 없진 않아요. <미스터 브룩스>처럼 사건의 해결을 맡은 형사나 변호사가 이혼 소송 중이라거나 빚에 쪼들린다거나 일상의 덫에 걸려 허덕인다는 설정을 함으로써 캐릭터를 두텁게 만들고 동시에 이야기도 입체적으로 만들려는 거죠. ^^
메밀밭: <마이클 클레이튼> 경우는 그것이 무늬에 그치지 않고 영화가 말하려는 본론이었죠.
꿈꾸며: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이라니깐요. ^^ 인명을 제목으로 내세울 자격이 있어요. ^0^
메밀밭: 이 영화의 플롯은 그리 냉철하고 치밀하지는 않아요. 해결책도 안이하고, 대기업이 사주한 두 범죄 중 한건은 치밀한 것에 비해 마이클에 대한 해코지는 좀 대책없어 보였어요.
꿈꾸며: 법률회사가 처한 위치도 무척 애매하죠. 법률회사 사장 바흐는 엮기에 따라서 플롯에서 상당히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는데 결국 부가적인 인물이 되고 말았잖아요. 악의 실체도 한 개인으로 축소시켜 대리만족을 주는 데서 그치는 감이 있고요. 그런데 시드니 폴락은 바흐 같은 배역에 정말 딱이에요. 집요한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아 대꾸하는 첫 장면부터 좋더라고요. ^^
메밀밭: 게임의 법칙을 속속들이 아는 고참의 모습은 폴락의 단골 캐릭터인데 이번에도 훌륭했어요. 마이클이 앙숙인 다른 변호사와 신경전을 하니까 중간에 끼어들어 “그만해. 이 친구는 말종이고 본인도 그 점 알고 있어”라고 마이클을 달래서 척척 대화를 마무리하는 신공. -..-
꿈꾸며: 뭐, “프로끼리 내숭 떨지 말고 얘기하자”는 식의 캐릭터라고 할까요.^^
메밀밭: 또 재미있었던 점은, 인물 모두가 자기는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인식을 드러낸다는 거예요. 심지어 살인 청부업자들까지요. +_+ 그런 일상화된 둔감함의 묘사가 탁월하더군요.
꿈꾸며: 프로페셔널을 달리 말하면 흥분하지 않는 사람들일 거예요. 이 영화 속 모든 사람들이 프로페셔널이죠. 그럴 때 이 영화는 무엇을 위한 프로페셔널이냐, 어떤 결과에 복무하는 프로페셔널이냐를 묻는다는 점에서 매우 윤리적인 작품이죠.
메밀밭: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며 MBC 이상호 기자가 쓴 내부고발자에 대한 글도 잠깐 떠올랐습니다. 실제로 부패한 사람들은, 척 봐도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조직에서 평소 사람 좋다는 칭찬 듣고 의리있다고 존경받는 사람들이라는 구절이었죠.
꿈꾸며: 인심을 사야 부패의 열매를 맛보는 기회를 유지할 수 있거든요. -.- <마이클 클레이튼>에는 깊숙이 인물을 찌르는 인상적 대사들이 종종 있어요. 수십년 같이 일했지만 골칫거리가 된 동료가 죽자 일말의 안도감을 함께 느끼며 “지금 내 기분은 너무 끔찍해서 차마 말 못하겠어”라는 시드니 폴락의 대사도 그랬어요.
메밀밭:. 저는 마이클이 어린 아들과 나누는 대화가 좋았어요. 아들이 동화에서 읽은 이야기를 아빠에게 들려주며 “그 나라에선 아무한테도 정체를 밝혀선 안 돼. 상대가 적일지도 모르니까”라고 말하니까 “여기랑 똑같네”라고 답한다거나, 학교 가는 아들을 배웅하면서 “자, 가서 많이 가르치고 와라” 하는 인사요. ^_^ 알코올 중독으로 동업한 식당을 망하게 한 사촌(아들의 삼촌)을 아들 보는 앞에서 외면한 다음, 마이클이 괴로워하며 아이에게 들려주는 얘기도 좋았어요. “얘야 넌 삼촌처럼은 안 될 거야. 삼촌은 취하지 않았을 때도 너처럼 강하진 않았단다. 넌 누구를 닮았는지 몰라도 강한 녀석이야. 보면 안다.” 부모가 아이에게 의지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죠. 대체로 이 영화는 시나리오 작법에 대한 교훈을 준다고 생각해요.
꿈꾸며: 자, 그 교본의 소제목이라도 들어봅시다. ^^
메밀밭: -_-# 마이클 클레이튼이란 인물은 그 자신의 말이나 행동보다 주변 인물과의 여러 관계로 표현되고 있어요. 아들, 경찰이었던 아버지와 현재 경찰인 형, 블루칼라 가정에서 법조인이 됐지만 결국은 경찰도 변호사도 아닌 자리에 머무르는 마이클의 독특한 사회적 위치 등등.
꿈꾸며: 딜레마에 빠진 인물일수록 그 딜레마를 입으로 표현하는 것은 재미없죠.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로 셰익스피어가 크게 히트친 이후로 말이에요. ^^
메밀밭: 맞아요. 인물의 입에 캐릭터를 통째로 물려주고 다 삼키게 하는 것보다 주변 인물과의 관계로 조각내 소화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죠.
꿈꾸며: <마이클 클레이튼>에서는 심지어 그 인물의 지갑이 인물 대신 말하잖아요. 빚에 쪼들려 텅텅 빈 지갑. 돈이 별로 없으니까 불타는 차 안에 미련없이 던져넣을 수 있었던 게야. ^^
메밀밭: 그리고 그 불타는 비싼 차도 회사차라는. T-T 결과적으로 조지 클루니는 옷이며 차며 전작 속 모습과 별 차이없이 외양은 멀끔하면서도 심리적으로 새로운 연기를 보여줬죠.
꿈꾸며: 자세히 보면 차이가 있긴 하죠. 빈티지와 빈티의 차이까지는 아니더라도요. ^_^
메밀밭: 덧붙이자면 <마이클 클레이튼>은 흔히 중독자나 정신병자라고 불리는 낙오자들과 잘나고 유능한, 말하자면 사회의 CPU(중앙처리장치) 노릇을 하는 엘리트들을 대비시키고 있어요. 양심선언을 하려는 변호사 아서(톰 윌킨슨)는 조울증 환자고, 마이클을 파산시키고 보상할 방법을 몰라하는 사촌은 알코올 중독자죠. 흔히 사람들이 미쳤다고, 정신나갔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사람들이 존경하는 성공한 사람들이 남이 보지 않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통렬하게 보여주더군요.
꿈꾸며: 그런데 그 중독자나 정신병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과거의 CPU이기도 하다는 거죠. 그게 아이러니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음모론을 다루는 영화에서 진실을 파헤치는 인물들은 흔히 그렇게 설정되긴 하죠. <컨스피러시>의 멜 깁슨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잖아요. <지구를 지켜라!>도 그랬고요.
메밀밭: 하지만 <마이클 클레이튼>의 인물은 좀더 보편적이죠. 파티나 강연회장에서 연설을 하고 박수를 받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삶을 방기하고 있는지, 굴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여줘요. -_- <마이클 클레이튼>은 사건을 마무리한 뒤 혼자 택시에 탄 조지 클루니 얼굴을 엔딩 크레딧 내내 보여주는데요.
꿈꾸며: 결말에 관한 이야기는 리뷰에 쓰기 위해 아끼렵니다. 라스트신 얘기 안 하고 어떻게 이 영화의 매력을 말하겠어요. ^^
메밀밭: 그럼 제 소감만 말할게요. 대개 영화가 끝나면 관객은 버림받은 느낌을 갖잖아요? 적어도 전 그렇거든요.
꿈꾸며: “다 봤으면 그만 가봐”라는 느낌을 주는 영화들이 있죠. 특히 고도로 관습적인 영화들.
메밀밭: 영화가 던진 화두와 여운을 혼자 곱씹어야 하는데 영화는 우리 곁을 훌쩍 떠나버리니 외로워지죠. 그런데 만감이 교차하는 주인공의 얼굴을 계속 보여주는 이 영화의 후주는 그런 갑작스런 고독감을 덜어주더군요. 그래서 배려처럼 느껴졌습니다.
꿈꾸며: 넵! (서둘러 입막음)
메밀밭: 웁웁, 이거 놔요. 동네 사람들아, 선배가 후배 목 조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