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고 던질 농담을, 죽자고 덤비며 말하는 상황은 민망하다. 이종격투기 챔피언인 폭력 남편(박상욱)에게 링 위에서의 한판을 제안하는 하은(도지원)의 도전기 <펀치레이디>가 그렇다. 남편과는 눈도 못 마주치는 아내에게 하이킥과 길로틴초크를 구사하는 남편을 리얼하게 묘사한 첫 시퀀스. 이를 목격한 딸이 악에 받친 욕설을 퍼붓자 머리를 향해 재떨이를 던진다. 이건 씁쓸한 농담도 아니고 현실의 아픈 반영도 아니다. 여자들의 고된 운명에 대한 영화적 묘사라고 믿는 심각한 오해일 뿐이다. 사태는 점점 심각해진다. 악마 같은 남편과 대결하다 링 위에서 죽는 첫사랑을 본 하은은 얼떨결에 남편에게 대결을 제안한다. 놀이방을 만들기 위해 낡은 도장을 인수한 수현(손현주)은 지도를 부탁하는 하은을 어쩌다보니 받아들인다. 집에서 쫓겨난 딸과 손녀에게 신세지는 하은의 철없는 어머니(김지영)는 알고보니 병을 숨기는 처지다. 21세기 미련상의 강력 후보감 하은이 매서운 여전사로 변신하는 계기는 모두 재미없는 우연과 오해들이다. 손현주의 좋은 표정과 도지원의 악착스러운 노력이 애처롭게 의미를 잃고, 차라리 웃고 싶다는 관객의 바람도 처참하게 외면당한다. ‘세상을 향한 (그녀의) 통쾌한 한방’이라는 카피문구에서 시작한 줄거리는 누가 봐도 코미디 이외에는 받아들여질 방도가 없는데, 그걸 모르는 건 제작진뿐이었던 모양이다. 텍스트를 풍요롭게 하는 비유의 기본은 과장과 생략. 그러나 제아무리 훌륭한 비유도, 정색한 진술로 받아들여지면 무시무시하게 빈곤해진다. 한참은 잘못 찾은 번지수의 비애. <펀치레이디>의 교훈이다.
한참은 잘못 찾은 번지수의 비애 <펀치레이디>
글 오정연
2007-10-24
누구나 링 위에선 고독하다는 비유를 생생한 묘사로 확인할 수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는 전적으로 관객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