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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맘대로 찍어보고 싶었다” <라이방> 감독 장현수

장현수 감독의 신작 <라이방>을 제작한 신화필름의 사무실은 방배동 카페골목에 자리잡고 있다. 한때 번창했으나 한물간 느낌이 역력한 그 동네에서 조금 구석진 곳에 ‘귀족’이라는 고풍스런 이름의 카페가 있는 빌딩 3층, 궁색해보이는 사무실 문은 열려 있고 장현수 감독이 반가운 얼굴로 맞는다. 영화사가 분명한데 변변한 포스터 한장 걸려 있지 않은 사무실 풍경은 <라이방>에 나오는 택시회사 사무실을 연상시킨다. 옆에 서 있는데 누군지 몰랐다가 감독의 소개로 인사를 나눈 <라이방>의 주연배우, 조준형씨와 최학락씨의 외모도 영화배우에게 있음직한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두 사람은 <라이방>의 택시기사 준형과 학락, 그대로의 모습으로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인다. 고급 인테리어를 갖춘 요즘 영화사 풍경과 너무 다른 묘한 장면이 영화 <라이방>이 전해준 푸근함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장현수 감독의 이번 영화는 올해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전주에서 들린 풍문은 그가 너무나 뜻밖의 영화를 완성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본 몇몇이 <라이방>의 솔직담백한 느낌을 입에서 입으로 전달했다. 전작들과 달리 스타도 없고, 영웅주의 신화도 없는 이번 영화를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양이를 부탁해>나 <나비>가 흥행에서 겪은 어려움을 <라이방> 역시 면하기 어렵겠지만 감독은 상업성에 얽매인 전작들이 애써 지우려했던 진심을 고스란히 화면에 투영했다. 개봉일정 때문에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전에 <본투킬> 촬영을 들어가야 했던 흥행감독 장현수는 이번 영화를 “정말 맘대로 찍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라이방>은 현재의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스타가 없는 건 그렇다쳐도 1년간 배우들과 함께 살다시피하며 연습하고 45일간 연극 무대에도 올린 다음 촬영에 들어갔으니 어떤 제작자나 배급사가 나설 수 있었을까. 독립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정직함과 패기의 영화 <라이방>을 만들면서 장현수 감독은 대체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라이방>을 만들면서 ‘의외’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전작들과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계기라기보다 오래 전부터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자연스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늘 여러 가지 구애를 받으면서 영화를 찍었다. 굳이 택시기사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간단히 말해서 내 맘대로 해보고 싶었다. 또다른 이유는 <라이방>의 주연을 맡은 세 연기자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그들이 아까웠다. 다들 뛰어난 연기력을 갖고 있지만 사교성이 부족해서 좋은 역을 못 맡아왔다. 소재가 처음 넘어왔을 때부터 세 친구를 생각했다.

<라이방>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98년 12월이었다. 배우 최학락씨가 시나리오를 들고 와서 해보는 게 어떻겠는가 상의를 했다. 이듬해 1월5일 주연배우 셋을 다 만나서 찍기로 결정했다. 당시엔 자가용 운전사 3명의 이야기였는데 구체적인 건 다 버리고 세 남자의 이야기라는 골격만 취하기로 했다. 시나리오부터 다시 써야 했다. 배우들에게 다른 요구는 안 하고 아주 큰 요구를 하나만 내걸었다. 조준형은 조준형답고, 김해곤은 김해곤답고, 최학락은 최학락다워야 된다는 것. 본인의 모습을 진실되게 보여주는 게 이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동안 힘들었다. 오랫동안 연기하던 사람에게 자기 모습대로 하라는 요구만큼 어려운 게 없었다. 그때부터 갈등이 시작됐다. “너같이 하라는데 왜 못해” 하며 다그쳤다. 거의 매일 10명 넘는 배우들과 리허설을 했고 그러면서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영화를 찍기 전에 연극으로 무대에 올렸는데.

부산에서 연극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부산대 앞에 소극장을 오픈하면서 올릴 연극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라이방> 시나리오에 연극적 요소가 많이 있으니까 이걸 희곡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회 공연이 다 다른 연극이었다. 이야기만 같고 매번 애드리브가 엄청나게 들어갔다. 99년 11월부터 45일간 공연했는데 그전에 준비한 걸 합치면 1년 정도 연습한 셈이다. 연극하면서 나온 애드리브가 배우들의 자연스런 모습을 만들었다. 연극에서는 애드리브를 허용했지만 촬영하면서는 애드리브가 거의 없었다.

구애받지 않는 영화, 내 맘대로 찍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대학 때는 참 좋은 생각을 갖고 영화를 시작했던 거 같다. 당시엔 당돌하지만 누가 뭐래도 내가 만족할 영화를 한편 만들어야지 했는데 충무로에 오래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변해갔다. <걸어서 하늘까지>에 액션이 조금 들어 있으니까 자꾸 그쪽으로 몰아가더라. 매번 그런 영화를 만들면서 5번째 영화도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이게 뭐야 싶더라. <친구> 만든 곽경택 감독이 인터뷰한 거 보니까 “지금 아니면 못 만들 거 같았다”고 했던데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니면 못할 거고 나이가 들면 더 겁이 많아질 거 같았다. 언젠가 상업영화 5개 만들고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한 적 있는데 흥행참패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잘한 일 같다. 5번째 영화를 전처럼 만들어서 성공해도 다음 영화를 이런 식으로 못 만들 테고, 실패해도 못 만들겠지. 아마 성공하면 더 큰 성공을 향해 달려갈 테고 실패하면 <라이방>을 만들 정도의 자본도 못 구했을 것이다.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많이 보니까. 더 나은 흥행을 위해 부리나케 뛰어다니는 남들 모습이 많이 도움이 됐다.

대학 때 가졌던 영화에 대한 생각이 충무로에서 현장경험 하면서 많이 바뀌었다고 느끼는 건가.

그렇다. 대학 때는 지금 생각해봐도 순수했으니까. 충무로에서 몇년 지내면서 어느날 보니까 겉치레만 남고 내 마음속에 있던 생각들이 소멸해버렸다. 연출부, 조감독 생활하면서 점점 소모돼서 나중엔 내가 뭘 하는지 잘 모르게 돼버린다. 내가 조감독할 때만 해도 멜로영화가 많았는데 멜로영화가 그렇지 않나. 갈등을 증폭시키고 음악은 잔뜩 집어넣고. 모든 걸 과장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다보니 사람이 공허해진다. 뭔가 남을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게 죄스럽다. 왜 이러고 있나 싶고. 아무리 잘 속여도 진실이 안 나오는 영화는 알 수 있다. 정말 진솔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도 충분히 감동이 올 텐데 그렇게 과장할 이유가 뭐가 있지, 그러는 거다.

<남자의 향기> 끝내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한 건가.

아니다. 아주 오래된 일이다. <걸어서 하늘까지> 개봉하던 첫날, 한 관객이 영화 끝나고 눈물을 주체못하고 나오다가 주연배우 정보석이 극장 앞에서 멀쩡히 서 있는 걸 보고 당황하던 기억이 난다. 스크린에서 죽었던 사람이 웃고 서 있으니까 속은 기분이 들었을 만하다. 돌아보면 내 영화의 주인공은 매번 죽었다. 하긴 그때는 멋있게 죽여달라는 남자배우들도 많았다. <투캅스>에 최민수가 출연하지 않은 것도 멋있게 죽는 장면이 없어서라지 않나. 영화적이라는 말이 어느 시점부터는 나쁜 말이 된 거 같다. 정지영 감독의 <블랙잭>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 적 있다. 아주 영화적인 이야기에, 영화적인 캐스팅에, 영화적인 연출이 합쳐졌는데 관객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화적이란 게 그리 좋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도 없고 이야기도 극적인 요소가 적어서 제작과정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제작비 문제도 쉽지 않았을 텐데.

개인 투자자로부터 모은 4억원으로 시작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작으로 5억원 지원을 받았고 비디오 판권료로 1억원을 받았다. 스탭은 촬영, 조명이 모두 데뷔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번 영화는 처음부터 다른 제작자들 안 만나고 시작했다. 제작자를 설득할 상업적 보장이 없기에 아예 접촉을 안 했다. 그냥 사람들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다.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모습을 어떻게 잘 그릴까만 생각했고 진짜 택시기사들이랑 찍은 것처럼 보이는 게 목표였다.

전작들에 비하면 극적 요소가 거의 없어서 완전히 달라보이지만 한편으론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여전하다. 그런 인물에 끌리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사랑도, 우정도 거칠고 험하게 사는 사람들 속에서 보여지는 게 값져 보인다. 길거리를 지나다가도 선남선녀가 있는 모습을 보면 오래 못 갈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여자는 더 멋진 남자를 원할 거고, 남자는 더 예쁜 여자를 원할 거 같다. 하지만 못생기고 내세울 것 없는 남녀는 오래 갈 거 같다. 예전에 선우완 감독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기는 거지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신나고 잘할 수 있다고. 그런 분이 김수현이 쓴 <모래성>을 연출했는데 상류 가정의 이야기를 하니까 그렇게 고역이었다더라.

<남자의 향기> 이후 3년 만에 찍은 영화다. 3년간 충무로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단적으로 감독으로 데뷔하는 과정이 많이 달라졌다.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나.

긍정적이다. 내 경우엔 비교적 빨리 데뷔를 했지만 그래도 지금과 비교하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감독되기 전까지 기다림이 사람을 많이 지치게 한다. 자기가 품었던 생각은 소진되고 현실적응력만 남는다. 그렇게 5∼6년 일하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영화인지 판단도 안 되고. 현장에서 연출부나 조감독으로 감독에게 뭔가 조언을 하면 “너 감독할 때 그렇게 해”라는 말만 듣고 나중엔 뭔가 꼭 필요한 조언 같은 것도 안 하게 된다. 그렇게 오래 있다보면 자기가 없어지고 남을 닮아간다.

<라이방> 만든다고 할 때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100명이 반대해도 아내가 밀어줬기 때문에 용기를 얻었다. <걸어서 하늘까지> 만들 때 조감독이었던 아내는 이번 영화를 만드는 데 가장 큰힘이 됐고 이렇게 하는 게 옳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영화의 마지막을 베트남으로 끝냈다. 어떻게 보면 비약일 수 있는데.

시나리오 쓸 때부터 그런 지적이 있었다. 왜 하필 베트남이냐는. 그건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행복해지려면 버릴 거 버려야겠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부양해야 된다는 의무, 딸을 성공시켜야 된다는 책임감, 이런 거 버렸을 때 더 큰 행복이 있더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일상으로 돌아오는 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아마 1만명 중 1명 정도를 제외하곤 베트남으로 떠나지 못할 테지. 하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한, 작은 용기를 내자는 게 결론이었다. 물론 베트남 가서도 돈없이 행복하진 않겠지. 어쨌든 그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자면 이 나라에선 안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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