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음
이프 유 원트님(이동진 [email protected])이 입장하셨습니다. 음악남녀님(김혜리 [email protected])이 입장하셨습니다.
음악남녀님의 말(이하 음악): 오늘은 음악영화 <원스>와 곽경택 감독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인베이젼>에 관한 소감을 덧붙이겠습니다. <원스>를 보고 나서 자꾸 머리에 맴도는 노래가 있어요. 양희은씨의 <옛날에 옛날에>라는 곡인데요. “옛날에 옛날에 사랑을 했는데 그 사랑이 사랑일까 내가 몰라 물었더니 사랑이 아니란다.” 이런 노랫말이죠.
이프 유 원트님의 말(이하 이프): “옛날 한 옛날에 얼간이 살았는데…”로 시작하는 노래는 생생히 떠오릅니다만. 제 대화명도 <원스>에서 받은 감동을 그대로 무릎 꿇고 올리는 오마주입니다. 여주인공이 밤거리에서 부르던 노래의 제목이죠. 영화 속 노래들이 다 좋지만 특히 그 곡이 그리도 가슴에 꽂히더이다. 기본적으로 <원스>의 음악과 같은 포크음악은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어필하죠. 저는 브라이트 아이스나 데이먼 앤드 나오미의 음악과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자가 주 멜로디를 부르고 여자가 코러스를 넣는 화음 방식의 단아함은 모하비 스리랑 흡사했고요. 다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입죠. ^^
음악: 그렇군요! <원스>는 더블린 거리의 가수(글렌 한사드)와 체코에서 이주한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마르게타 이글로바)의 만남을 그렸는데, 픽션보다 에세이에 가까운 뮤지컬영화였어요. 사실, 뮤지컬하면 SF, 호러 장르와 더불어 넓은 의미의 판타지영화로 인식하잖아요. 갑자기 식탁 위에 올라가 노래를 부른다거나 하는 관습은 현실의 법칙을 잠깐 정지시킨다는 영화와 관객의 묵계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거니까요. 그런데 <원스>는 판타지가 아닌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희귀한 예외예요.
이프: 정말 놀랍게 사실적이더군요.
음악: 지나가는 행인들이 영화 찍는 줄 몰랐는지 카메라랑 배우 사이에 막 끼어들더라고요.
이프: 두 사람이 절절하게 소통하는 광경을 바로 눈앞에서 관객이 목격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죠.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항상 노래를 부르거나 듣고 있죠. 지나가는 엑스트라조차.^^
음악: <원스>에서 이야기의 핵심은 음악적 성공 스토리도 아니고 짝짓기도 아니에요.
이프: 이건 정말 연애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안 이뤄지는 것도 아니여.
음악: ^^; 클라이맥스래야 고작 데모 테이프 녹음하는 장면이고요.
이프: 그런데 그 클라이맥스가 정말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거. ^^
음악: 아일랜드가 배경이기도 하지만 <원스>를 보면서 알란 파커 감독의 영화 두편이 그리워지더라고요.
이프: <커미트먼트>, 그리고?
음악: <페임>. 서툴게 출발해 화음을 완성해가는 모습이나 부모의 순박한 후원이 특히 비슷해요.
이프: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다룬 음악영화는 많지만, <원스>처럼 서사와 음악이 어떤 절실하고도 긴밀한 끈으로 만나는 영화는 정말 드물어요.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머물지도 않고, 그렇다고 뮤지컬처럼 장르적으로 과시되지도 않잖아요.
음악: 음악으로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방식이 자연스러워 문턱이 거의 없죠.
이프: 음악과 서사가 서로 부드럽게 손을 잡고 멋진 2인무를 추는 느낌이랄까요.
음악: 그런 자연스러움은 두 인물의 관계 묘사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통상, 연애나 거기 준하는 관계가 성립되기까지 나오게 마련인 탐색전- 애 엄마라거나 남편이 고국에 있다거나 하는 설명- 이 따로 없는데도 어색하지 않았어요.
이프: 사실 이 영화에서 뭐 속시원히 해결되는 일이 없잖아요? 그런데도 두 사람은 서로의 삶에 위로가 되고 음악은 그 둘의 삶의 이유가 되죠. 이 영화가 보여주는 위로가 딱 현실에서 가능한 정도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삶에서 그 이상 뭐가 더 있겠어요.
음악: 첫 만남에서 여자가 먼저 접근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죠? “아무도 안 듣는 밤에만 자작곡을 부른다”는 남자에게 “내가 듣고 있잖아요?”라고 대뜸 반박하죠.
이프: 남자쪽이 연애는 몰라도 결혼 상대로는 좀 대책없는 편이라면 여자는 양쪽 모두 괜찮을 것 같다는.
음악: 그런데 저는 그처럼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속마음을 열어 보이는 장면이 의외로 현실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끔 그런 경험을 하거든요. 버스에서 가방을 들어준 아저씨가 이어폰을 끼고 있는 제게 “뭘 듣냐?”고 물어서 한참 음악 이야기를 한 적도 있고 병원 대기실에서 옆사람에게 갑자기 속내를 털어놓을 때도 있었고.
이프: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원래 가족에겐 깊은 이야기를 더 못하는 법이니까. 그게 단계가 심화되면 비누하고 대화하는 상황이 오죠, “많이 여위었구나.” <중경삼림>처럼. ^^
음악: 스쳐가는 사람은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의미있는’ 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비밀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거겠죠. 그래서 뜻밖에도 진실의 순간을 공유하는 거고.
맞다. 네비게이터와 대화하는 사람도 많다던데. 앗! 우리 배가 또 산으로 가고 있어요!
이프: 메신저토크호는 헤어초크의 <피츠카랄도>처럼 산으로 갈 때 재밌다는. ^^ 그런데 영화 속 두 사람이 아주 잘 어울려 보이는 것에는 두 사람이 뮤지션을 연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 실제 뮤지션이라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을 거예요.
음악: <입술은 안돼요>의 경우와 달리 실제 음악인을 캐스팅했는데, 말씀하신 대로 그 이유는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음악인의 삶을 안다는 점이었겠죠. 원래는 킬리언 머피가 하려고 했다는데, 지금 상상하면 이상하죠?
이프: 머피도 멋진 배우지만, 그가 했다면 이 영화의 신비스러우면서도 생생한 느낌은 결코 얻지 못했을 듯. 어찌 보면 음악다큐멘터리 같은 면마저 있잖아요. 어떤 영화를 보면 감독이든 배우든 그들의 일생에서 딱 한번밖에 만들지 못하는 영화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원스>가 그랬어요. 감독과 두 배우의 재능이 아니라- 물론 재능도 있지만- 그 재능이 마술적 순간에서 신비롭게 만나 기이할 정도로 아름답게 포착된 경우라고 할까요.
음악: 음악을 다룬 영화를 볼 때면 곡 하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시퀀스가 가장 짜릿하게 느껴집니다. 예컨대 <아마데우스>에서 죽어가는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악기 파트별로 살리에리에게 채보시키는 장면이 그랬죠. <원스>에서는 CD플레이어에 넣을 건전지를 사러 나온 여주인공이, 밤길을 걸으며 이어폰에서 들리는 음악에 가사를 얹어 부르는 장면이 절창이었어요.
이프: 모든 ‘예술가영화’가 마찬가지죠. 심지어 <바베트의 만찬> 같은 음식영화에서도 요리를 세심하게 만들어 식탁에 올리는 대목이 짜릿하잖아요?
음악: 그런 면에서 글쟁이들이야말로 참으로 비영화적인 피사체들이에요. 생산하는 스펙터클이래야 고작 펜으로 사각사각 아니면 자판으로 또각또각. 수십년 전에는 파지를 구겨 내던지는 박력이라도 있었지.
이프: 진짜, 저는 파지 막 구겨서 던지는 것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는데, 그것도 한번 못해보고…. -.- 대신 컴퓨터 모니터를 내동댕이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그건 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음악: <원스>는 슬프면서도 기쁜 오묘한 ‘음정’으로 끝나서인지, 돌이켜 생각할수록 호감이 갑니다.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만 보면 <사랑>은 거의 <원스>의 반대말이죠. “한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이듯, “초등학생 때 첫사랑은 평생 사랑”이라고 말하니까요.
이프: 그렇죠. <사랑>의 판타지는, 사랑에서는 피학적인 쾌감을 지향하고 폭력에서는 가학적인 쾌감을 지향한다는 점이 참 기묘한 느낌을 줬어요. 조폭이 나오는(<사랑>의 주인공은 조폭은 아니지만 하는 일은 비슷하죠) 한국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폭력을 휘두를 때는 무지막지한데, 사랑에서는 어쩔 줄 모르는 숙맥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예가 많아요. 남자끼리는 거침없는데 여자와의 관계는 한없이 조심스러운 조폭을 로맨틱하게 그리죠. 마초이즘의 양면과 같은 판타지라고 생각해요.
음악: 그런 이야기에서 사랑은 주인공이 폭력을 쓰는 원인이 되고, 그 인과관계는 거의 절대적이죠. 인물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다른 선택의 여지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프: 저는 이 영화의 모티브가 일정 부분 피천득의 수필 <인연>을 떠올리게 한다고 생각해요. 인호와 미주는 모두 세번 만나는데 세 번째 만남은 아니 만나느니만 못했다는 거죠.
음악: 순진한 청년-아름다운 소녀-애달픈 사랑-조직폭력-죽음으로 구성되는 한때 유행한 뮤직비디오를 좀더 높은 수위의 표현과 고급스런 만듦새로 극장에서 2시간 동안 본 것 같다는 소감도 있었습니다. <달콤한 인생>을 상기시키는 전환이 나오고….
이프: 결말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방식으로 흐르죠. 진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려는 한국 남성감독들의 공식이 있어요. (전학 온) 소년은 (혹은 전학 온) 소녀에게 한눈에 반했다. 그런데 둘이 어떤 계기로 헤어져 소식이 끊겼다. 세월이 흘러 우연히 다시 만났는데 둘 사이엔 피치 못하게 헤어져야 할 어떤 이유가 다시 생긴다. 대단원으로 가는 과정에서 남자는 과거의 약속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애쓴다….
음악: 사실 그런 식의 남녀관계는 ‘혈연’에 근접하죠. 가족주의가 연상돼요. <사랑>의 인호도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당한 폭력에는 불같이 대항하면서 자기가 모시는 회장에게 따지러 온 여자들에겐 간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해요. <사랑>에는 듣기에 다소 고역스런 대사들이 있어요. “한 그릇 했다”는 둥 “오랜만에 드시는 것 같다”는 둥 여성을 음식에 비유하는 표현이 많죠. 미주를 구하려다 살인미수로 구속된 인호가 재판에서 강간 사실을 증언하겠다는 미주에게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 밝히지 말라면서 “나한테는 그게 문제다” 하는 대사를 할 때는 좀 놀랐어요.
이프: 전 사실 이 영화에서 강간에 대한 폭력적 판타지를 은밀히 충족시켜주는 부분이 있어 위험하다고 봤어요. 치환(김민준)이 미주를 강간하는 장면에선 그가 악마적인 캐릭터임을 드러내야 한다는 필요를 인정한다 해도 촬영이나 대사의 톤에서 은밀하게 그 상황을 즐기게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거죠. 팬티를 벗겨내는 숏이라든지 치환이 자신의 손가락에 침을 묻히는 장면이 그렇죠. 집요하게 강간을 먹는다는 행위에 비교하는 대사들도 그렇고요. 그가 그런 말도 서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악당이라는 점과 그런 악당이 그런 대사를 극중에서 계속 내뱉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는 거죠.
음악:사랑의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인호의 삶이 서서히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은 영화의 관심사는 아니었어요.
이프: 배우들의 연기는 대부분 좋았습니다. 부둣가 로케이션도 좋았고요.
음악: 곽경택 감독은 배우를 멋지게 잡아주는 감독이죠. 조명과 앵글에 많은 신경을 써서 배우의 표정과 움직임을 잘 살렸어요. 특히 남자배우들에겐 같이 일하고 싶은 파트너로 꼽힐 것 같아요.
이프: 예를 들어 장동건에게 <친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잖아요. 사실 이 영화에서 주진모의 연기는 <친구>의 장동건을 떠올리게 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상당히 호연했다는 생각입니다.
음악: 곽경택 감독의 대사는 감각적이고 유머도 뛰어나죠. 특히 큰 육체적 고통과 신체의 훼손을 보여준 다음 경상도 남자스럽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무덤덤한 대사를 툭 던지는 방식을 자주 써요. ^^“니 학교 안 가나?” “저번주에 짤맀다”라든가. 사실 머리가 깨지도록 싸우고 서너 음절 정도의 대사를 주고받는 걸 보면 과연 현실일까 싶어요.
이프: 대사가 짧고 무뚝뚝할수록 진심이 담겨 있다고 믿는 쪽이죠. 극 초반 고교 시절 인호가 ‘본드’로 불리는 상우와 싸우다 병에 찔리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 그때 상우는 갑자기 병으로 가슴을 찌르면서, 살의를 그대로 담아 죽으라고 주문처럼 말하죠.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선 화해하는 장면이 생략된 채 병실에서 찔린 일의 뒤처리를 놓고 둘이서 돈 얘기를 친구처럼 나누는 게 나와요. 저는 그런 연결 방식 자체에 남자들의 관계에 대한 감독의 판타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말이 길면 구차하다는 것, 남자끼리 친구끼리는 미안하고 말고 그런 말을 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 왜냐하면 ‘우리는 친구니까’.
음악: 그렇기에 이번 영화가 절절한 멜로드라마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들 궁금해했죠. 여성과의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프: 사실 사랑을 과감하게 내세운 이 영화에서조차 생생해 보이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아니라 남자들끼리의 관계잖아요? 남녀관계는 매우 도식적이고 신화적으로만 묘사되고 있고요. <사랑>의 연출은 매끄러워요. 그런데 그 연출력이 아니라 그것으로 그려내는 영상과 이야기가 많이 걸린다는 거죠. 전 사실 곽경택 감독의 홀수 영화를 좋아해요. <억수탕> <친구> <똥개>였죠. <억수탕>에는 한 어린아이가 공중목욕탕에 와서 엎드리면 때밀어주는 아저씨가 아주 힘들게 밀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보다보면 그 아이가 무척 얄미워지죠. 그런데 끝까지 보면 그 아이가 그 아저씨의 아들이거든요. 그 순간 느껴지는 푸근한 인간미 같은 것이 곽경택 감독 영화에 있었는데 <사랑>에서는 그런 장면을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무척 아쉬웠어요.
음악: <인베이젼>은 잭 피니의 소설 <바디 스내처>를 돈 시겔, 필립 카우프먼, 아벨 페라라에 이어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이프: 세편 모두 재미있었는데 <인베이젼>은 어떤가요?
음악: 아쉽지만 네편 중에 가장 처집니다. 니콜 키드먼, 제레미 노섬, 대니얼 크레이그 같은 배우들이 낭비된 셈이에요.
이프: 기본적으로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이야긴데, 왜 그렇게 되어버렸죠?
음악: 공포와 의심, 서스펜스를 살리지 못하고 보통의 스릴러처럼 만들어졌어요. 절정이 자동차 추격전이니까요. 외계 바이러스가 인간의 육체를 탈취하는 <바디 스내처> 이야기의 흥미로운 부분은, 기억이나 생각까지 똑같이 복제되면서도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그 ‘무엇’만 빠진 존재로 인간이 탈바꿈한다는 점이죠. 그런데 <인베이젼>의 신체강탈자들은 그냥 좀비처럼 그려졌어요.
이프: 설정의 뉘앙스를 잘 살리지 못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죠.
음악: <바디 스내처>를 각색한 영화들은 매카시즘, 에이즈 등 당대 사회적 이슈의 은유라는 평을 받았죠. <인베이젼> 역시 이라크 전쟁과 뉴올리언스의 재해를 누차 언급해요. 그런데 문제는 첫째, 오직 대사로 그런다는 것, 둘째 언급은 하되 정작 술어가 빠져 있다는 것. 말하자면 그 문제들에 대한 영화의 의견이 없다는 거죠. “인간은 한심하다”는 정도죠.
이프: 다루긴 다뤄야겠는데, 어떻게 다룰지 몰랐나보다. ^^ 시각적인 측면은 어떤가요? 그 사이 특수효과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니까요.
음악: 피부에 보풀이 일고 CG로 그려진 혈구들이 나오고 바이러스는 구토로 전염됩니다. 긴박감을 주기 위해 빠른 편집을 했는데, 제대로 붙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나 니콜 키드먼은 아주 아름답습니다. 기억할 만한 대사도 분명 있고요.
이프: 아하, 메모했군요. ^^
음악: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물이 저항하는 니콜 키드먼을 이렇게 타일러요. “왜 거부하는 거지? 당신이 언젠가 숲의 나무처럼 살고 싶댔지? 우리처럼 변화하면 ‘타인’은 없어지고 사람들은 완벽하게 서로 연결돼. 정신과 약 처방과 뭐가 달라?”
이프: 허허. 거의 <매트릭스>적 대사군요. <트루먼 쇼>도 생각나고요.
음악: 그러나 전체주의에 대한 보편적 비판에 그치죠. 이런, 명절을 앞두고 오늘은 너무 많은 험담을 했네요.
이프: 음… 악! 소리 나는 남녀인가요.